• "과잉진압·징계 휘말릴까"…권총·테이저건 못 꺼내는 경찰관들
  • 1년간 경찰이 사용한 물리력 4951건 중 권총 사용은 0.3%에 불과
  • 김창룡 경찰청장 "국민 위협하는 행위에 물리력 과감히 행사하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흉기 든 범인을 붙잡아야 할 경찰이 오히려 현장을 이탈하면서 조직 신뢰를 스스로 깎아 먹고 있다. 경찰이 도망친 사이 범인을 제압한 건 피해자 남편이었다. 남편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범인과 육탄전을 벌이는 동안 경찰들은 건물 밖에 머물다 뒤늦게 합류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흡했던 경찰 대응에 비난이 거세지자 경찰청장과 대통령까지 나서 수습한 가운데, 경찰이 제압용 장비 사용에 부담을 느끼고 현장 대응 훈련마저 부실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예견된 사태였단 지적이 나온다.

앞서 지난 15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한 빌라에선 4층 주민 A씨(48)가 층간 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어 온 아래층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문제는 경찰의 대응이었다. 사건 당시 피해자와 함께 있던 경찰은 지원 요청을 한단 이유로 1층으로 내려가 현장을 벗어났다. 1층에 있던 19년 차 경찰도 그와 합류해 빌라 밖으로 이탈했다. 이후 경찰관들은 잠겨버린 공동현관문을 다른 주민이 열어준 뒤에야 빌라 안으로 진입했다. 경찰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흉기에 찔린 50대 여성은 뇌사 판정을 받고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남편과 20대 딸도 크게 다쳤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당시 경찰 2명은 테이저건과 권총, 삼단봉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경찰청이 2019년에 제정한 '경찰관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경찰들은 제압용 장비(테이저건·권총)로 A씨를 제압할 수 있었다. 규칙을 보면 경찰은 △협조적 통제 △접촉 통제 △저위험 물리력 △중위험 물리력 △고위험 물리력 등 대응 기준을 5단계로 나눴다. 당시 A씨는 흉기를 소지한 고위험 물리력에 해당해 경찰이 권총까지도 사용할 수 있던 상황. 하지만 경찰은 테이저건조차 꺼내지 않고 1층으로 내려갔다. 현장에 있던 경찰은 "피를 보는 순간 트라우마가 생겨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일선 경찰들 사이에선 제압용 장비를 사용할 땐 과잉진압과 사후징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어 장비를 쉽게 꺼낼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 6월 몸싸움이 벌어졌단 신고를 받고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으로 출동한 한 경찰은 위협적인 언동을 보인 나이지리아인에게 테이저건을 사용했다가 그의 아내로부터 과잉 진압이라며 국민신문고 민원을 받기도 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무기 사용 면책 특권'을 신설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경찰이 강력범을 제압할 때 무기를 사용하더라도 민사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면책특권을 보장해달라는 내용이다. 20년 차 경찰관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영화에서도 '총기는 쏘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던져서 잡으라고 주는 것'이란 대화가 나온다. 테이저건과 권총은 현장 경찰관들이 사용할 수 없는 장비"라고 꼬집었다. 테이저건과 권총을 사용하기 위해선 수많은 판단을 거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청원인은 테이저건을 한 번만 사용하더라도 4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먼저 △상황 판단이 합리적인가 △무기를 쓸 이유가 충분한가 △안전을 확보한 상태인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등 4가지다. 또 권총을 사용할 땐 4단계 이외에도 범죄자 다리만 조준한다거나 등을 보일 땐 사용할 수 없다는 등의 제약이 추가된다고 덧붙였다. 청원인은 "일선 경찰관들에겐 범인을 못 잡더라도 테이저건과 총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제압용 장비 사용이 엄두 나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사진=경찰청]

실제로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가 지난 5월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8월 1일부터 2020년 7월 31일까지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한 사례는 총 4382건. 이 중 권총을 사용한 건 14건(0.3%)에 불과하다. 이 중에도 4건은 멧돼지가 출연해 주민 안전을 위해 사용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현장 교육을 온라인으로 대체한 점도 경찰의 부실 대응을 키운 꼴이 됐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무도훈련과 지역경찰 초동조치 사례 분석, 위해성 경찰장비 안전교육 등 모든 교육과정을 온라인으로 이수했다. 현장 대응력을 높이는 팀장 훈련과 현장 훈련도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또 현장 인력 조기 확충을 위해 신임 경찰 교내교육 기간은 기존 24주에서 18주로 축소됐으며 현장 실습 이후 심화 교육이 없어 교육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 흉기난동 사건 부실대응 사과하는 김창룡 청장 [사진=연합뉴스]

경찰관들이 총기 사용에 부담감을 느껴 피해를 키우는 상황이 계속되자 총기 사용 권한 경찰관(AFO)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일반 경찰관 중 총기 사용 권한을 지닌 전문경찰관을 양성하자는 내용이다. 치안정책연구소는 "각 지구대와 파출소에 순찰팀당 1~2명의 AFO를 배치하면 일반 경찰의 총기 사용 부담감은 낮추고, 국민 안전을 중요하게 인식한다는 이미지를 제공해 경찰 신뢰도도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경찰 대응에 국민적 질타가 쏟아지자 김창룡 경찰청장은 전국 경찰에 서한을 보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필요한 물리력을 과감히 행사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권총과 테이저건 훈련을 확대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경찰청은 현장 대응력 강화 태스크포스(TF)도 구성해 26일 첫 정식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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