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정희 서울대 교수 "암호가 데이터를 자유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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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철 기자
입력 2021-11-2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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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터 암호화한 채 분석하는 '동형암호' 선구자

  • 개인정보 노출 없는 코로나19 동선 확인 앱 개발

  • "데이터 활용, AI 알고리즘 만드는 게 수학자 일"

  • 수학연구와 창업 연계 지향…'낙성벤처밸리' 앞장

  • "기술 가치 인정받기 시작"…해외 시장 진출 구상

천정희 서울대학교 산업수학센터장 겸 크립토랩 대표[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마이크로소프트(MS), 네이버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국내 IT대기업이 데이터를 안전하게 활용할 기술을 마련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데이터를 암호화한 채 빅데이터 분석, 머신러닝 모델 학습에 쓸 수 있게 하는 '동형암호'가 유력한 해법으로 꼽힌다. 국제 동형암호 연구의 선구자인 천정희 서울대학교 산업수학센터장(수리과학부 교수) 겸 크립토랩 대표를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산업수학센터를 소개해 달라.

"정부가 4차산업혁명 대응에 수학의 중요성이 크다는 인식에 따라, 자율적으로 연구주제를 설정한 대학 중에 선정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연구센터다. 서울대는 지난 2017년 선정됐다. 교수 15명이 데이터분석, 머신러닝·인공지능(AI), 세 개 연구그룹에서 산업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수학 연구를 하고 있다. 올해까지 연간 10억원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곧 지원 연장 평가를 받는다."

Q. 센터의 주요 성과는.

"동형암호로 스마트폰에 저장된 본인 동선과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고 코로나19 확진자 동선과 겹쳤는지 알려 주는 앱 '코동이(코로나 동선 안심이)'를 개발했다. 서울대·인하대, 경기도·인천시가 공식 채택해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 이밖에도 단일 카메라 기반 자율주행·블랙박스 영상분석과 폐암 병기 진단용 3D 이미징 알고리즘, 의료데이터 기반 심장질환 생존확률지수를 개발했다."

Q. 산업과 수학은 어떤 관계가 있나.

"산업혁명기 이후 도입된 물리학·화학·생물학 등 과학의 정량적인 분석을 정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수학이 했다. 로켓을 쏘아올릴 때의 기계공학, 물리적인 세계의 정확성을 뒷받침했다. 최근 양상은 좀 달라졌다. 데이터를 가공하고 인사이트를 얻는 데이터 시대에는, 그 자체가 수학의 역할이다. 데이터를 맵핑하고 직접 활용하고, AI·머신러닝 알고리즘을 만드는 게 수학자의 일이다."

Q. 산업수학센터의 다른 성과는.

"기본적으로 창업이 산업수학센터의 최대 성과다. 과거엔 센터에서 만든 기술을 (외부에) 이전했는데, 이제 직접 창업을 장려한다. 나도 센터장으로서 모범이 되도록 센터 내 첫 창업을 했고, 두 번째로 현동훈 교수님이 '에이치머신즈'를 창업했다. 세 번째 창업도 준비 중이고 곧 발표될 예정이다. 산업수학센터는 기술개발과 인큐베이팅으로 스타트업을 만들고, 기업은 학계에 축적된 기술을 받아 상용화기술을 쌓아나가는 것, 이런 유기적 협력 트랙을 만들어가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스탠포드대학처럼 올해 초부터 낙성벤처밸리·서울대 협력모델이 추진되고 있는데 우리는 일찍부터 밸리 조성을 시작한 셈이다."

Q. 암호와 수학의 관계는.

"암호화한 데이터를 해독하려면 '비밀키'가 필요하다. 키가 없으면 해독이 어려워야 데이터가 보호된다. 암호를 만들 때 '간단히 풀기가 어렵다'는 게 이론적으로 증명된 수학적 난제를 활용한다. 그래서 가장 오래된 수학인 '정수론'을 기반으로 암호를 설계한다. 고대부터 수천년동안 수학자가 못 풀었던 문제로 암호를 만들어 은행 계좌 예금과 블록체인 암호화폐를 보호할 수 있는 셈이다."

Q. 스타트업 '크립토랩'을 창업했는데.

"2017년 12월 설립했으니 곧 만 4년이다. 직원 30명 중 수학자와 컴퓨터 전공 연구자가 절반 정도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있다. 사람들이 좋은 암호를 더 편리하게 쓸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2016년 '혜안(HEAAN)'이란 동형암호를 개발한 게 직접적인 계기였다. 데이터 보호에만 쓰이던 기존 암호에 비해, 동형암호는 데이터를 활용하면서도 보호할 수 있는 적극적인 역할에 알맞다. 앞으로 이 기술이 더 중요해지고, 우리나라가 데이터 시대를 선도할 동형암호 분야를 주도할 수 있겠다고 봤다."
 

천정희 서울대학교 산업수학센터장 겸 크립토랩 대표[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Q. 크립토랩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나.

"우리의 모토는 'HEAAN frees Data', 즉 '혜안(이라는 동형암호 기술)이 데이터를 자유롭게 한다'이다. 내 동선을 정부에 넘기지 않아도 다른 확진자와 만났을지 확인하고 조심할 수 있는 코동이 앱이나, 통계청 'K-통계 시스템'처럼 기업비밀 때문에 원(raw)데이터를 못 주고 가공된 결과만 주던 국가통계 정보를 온라인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 것도 암호가 데이터를 자유롭게 한 사례다. 정부가 만든 빅데이터센터나 플랫폼의 데이터도 마찬가지고. 10년 뒤 모든 데이터가 혜안으로 암호화해 활용될 수 있게 하겠다. 앞서 2세대 동형암호 알고리즘을 MS와 IBM같은 기업도 우리가 만든 4세대 동형암호(혜안)를 자체 구현해 쓰고 있다."

Q. 사업 협력, 투자유치 성과는.

"혜안 암호기술을 네이버클라우드 기반의 시험판 서비스로 공개했다. 컴퓨팅 리소스가 많이 들어 처리속도 한계가 있다는 게 혜안의 문제점으로, 그걸 해결하기 위한 하드웨어 가속기도 개발 중이다. 의료데이터 벤처업체 '에비드넷'과도 손잡았다. 각 병원의 의료데이터를 표준화하고 관리하는 데에 동형암호를 적용하는 마이데이터 과제에 선정돼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2019년 삼성벤처투자에 이어 올해 LG유플러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는데, 삼성 쪽은 동형암호 관련이고 LG 쪽은 양자내성암호(PQC) 투자였다. 2년 전부터 LG유플러스와 함께 통신망에 대한 양자컴퓨터 위협 대응 전략 일환으로 PQC를 적용하는 시범사업을 했고 이제 본격적인 배포 작업 중이다."

Q. 동형암호와 PQC의 관계는.

"한 뿌리에서 나온 기술이다. 정확하게는 PQC 성질을 가진 '격자암호'가 형님이고 동형암호가 동생 격이다. 기저 벡터의 선형 결합으로 다차원 공간에 배열된 격자점 가운데 가까운 것을 찾아내는 행렬연산을 바탕으로 격자암호가 만들어졌는데, 이게 양자컴퓨터로도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걸 알게 됐고 이후 동형암호라는 추가적인 성질, 복호화 없이 계산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Q. 동형암호, 많이 알려졌나.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활용하게 해주는 동형암호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데 아직 사람들에게 낯설게 인식된다. 올해가 머신러닝과 함께 동형암호가 막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라 본다. 코동이같은 앱을 만들어 알기 쉽게 보급하겠다. 최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개인정보보호 기여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이 분야에서 동형암호 기술의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본다."

Q. 내년 이후 계획은.

"단독이든 협력모델이든 글로벌 동형암호 응용 시장으로 해외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주로 미국이 되겠지만. 동형암호 고속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최근 미국 대학에 의뢰한 성능평가시험 중간결과가 나왔다. 혜안이라는 동형암호를 우리가 만들고 특허도 보유했지만 IBM과 MS는 자체적으로 구현하고 있는데, 고속화 기술의 성능평가 결과를 보면 우리가 두 회사 기술 걷어내고 우리 걸 쓰라고 권할 수 있을만큼 이 분야를 제패했다. 해외 벤처투자 시장에서 동형암호 기업이 많은 투자를 받으며 이 분야가 활성화돼 있다. 최근 코르나미(Cornami)라는 동형암호 고속화 하드웨어 업체가 소프트뱅크 주도 투자를 유치했다. 알고리즘 자체를 고속화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이런 곳에 우리 라이브러리를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Q. 정부나 산업계에 바라는 점은.

"아직 국내 공공·민간 조직에선 핵심 기술을 직접 만들어 쓰기보다 기존 것을 가져와 쓰는 데 방점을 두는 측면이 있다. 국내 학계가 많이 발전하면서 수준높은 심층·원천 기술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산업계와 투자업계에서 그런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더 관심을 갖는다면 혁신사례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민간과 공공, 언론계 모두 전반적으로 기술의 진위와 깊이를 적절히 평가할 수 있는 안목도 함께 높아졌으면 한다."
 

천정희 서울대학교 산업수학센터장 겸 크립토랩 대표[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천정희 센터장은 어떤 사람?

천정희 서울대학교 수학연구소 산업수학센터장은 1990년대 카이스트 수리과학과 정수론 석사·박사를 졸업하고 20여년간 학계에서 수학과 정보기술(IT)·암호의 접점을 넓혀 온 수학자·암호학자다. 2003년부터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2013년부터 수리정보과학과장, 2016년부터 산업수학센터장을 맡고 있다. 2011~2015년 서울대 암호학적난제연구단 창의연구단장직을 역임했다. 2016년 개발한 동형암호 '혜안' 원천기술로 사업화를 위해 2017년 설립한 동형암호 스타트업 '크립토랩'의 대표 역할도 맡고 있다. 국가정보원장 표창(2006), 학회 '아시아크립트' 최고논문상(2008), 대한수학회 논문상(2011), 한국정보보호학회 국제논문상(2012), 학회 '유로크립트' 최고논문상(2015), 검찰총장 표창(2017), 이달의 과학기술인상(2018), 청암상(과학상, 2019)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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