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에 모든 가족을 떠나 보내고 혼자만 생존한 신경과학자 ‘윌’.
윌은 인간의 기억을 다운로드 받아 다시 업로드를 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었다.
윌은 아내와 아들 딸의 시체에서 의식을 분리해 저장하고, 그들의 인체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 작업은 복제된 아내와 아들의 몸에 저장된 의식을 업로드.
마침내 창세기적 실험은 성공하고 윌의 가족은 죽음에서 돌아왔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되살려낸 행복도 잠시, 클론이 된 가족들은 조금씩 이상징후를 보이기 시작하고 인간복제 알고리즘을 노리는 거대 조직과 맞서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과연, ‘윌’의 기술은 희망인가 죄악인가?
2018년에 개봉된 영화 '레플리카(Replica)'의 줄거리다.

인간의 의식은 저장되고 이식될 수 있는 것인가? 인공지능(AI)은 과연 인간처럼 의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이는 AI 철학연구에 가장 큰 화두이다. 인류 최초로 AI를 생각한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다. 그는 <영혼에 관하여>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의식이 몸과 분리된 상태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는 오늘날, '인간의 신체와 분리되어 작동할 수 있는 인공적인 지능'의 개념과 지능 전송 기술 개념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몸을 물질과 마음으로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유체계인 유물론적 사유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히포크라테스에서 시작하여 데카르트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중세 전반기 내내 인정받지 못하던 유물론이 중세 말 12~13세기에 재발견되고, 15세기 이후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그 영향력을 회복한 것이다.

근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유물론 사상을 체계화한 철학자는 17세기 영국 경험론자 토머스 홉스였다. 홉스는 사람이 아닌 사물도 인간과 같이 감각을 갖고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지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AI 기술의 출현을 구체적으로 예견했다.

라 메트리(La Mettrie, 1709~ 1751)는 <인간기계론(L'Homme Machine)>이란 저서에서 "인간이란 정교한 기계에 지나지 않다"면서 "인간의 정신도 기계로 제작이 가능하다"고 주장,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슈퍼 AI의 출현을 예견했다. 데카르트가 주장했던 '동물기계(Bete Machine)론'을 인간에게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라이프니츠도 그의 보편수학(Mathesis Universalis)의 원리에 근거, 인간의 사고가 복잡하기는 해도 형식화 할 수 있다고 주장, 의식의 프로그래밍 가능성을 내비쳤다.

강 AI가 인간처럼 의식체계를 갖출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바로 이런 유물론적 인간이해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은 뉴럴 엔지니어링(Neural Engineering)의 발전과 함께 더 높은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고는 인간의 의식이 물리적 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믿는다. 사고를 형성하는 뉴런 시스템을 분석해서 프로그램으로 만들면, 이성을 재창조하거나, 복제, 이전할 수 있다는 확신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AI 기술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는 단순히 계산과 문제 해결을 돕는 약 AI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 같다. 특이점이 도래해서 AI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고 강 AI나 슈퍼 AI가 출현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상상과 우려를 함께 하고 있는 AI의 미래다. 이런 초 AI는 인간과 같은 인격을 갖출 수 있을까, 아니면, 인간을 넘어서 신적 수준의 인격체가 될 것인가?
 
효심이 낳은 기계식 컴퓨터

"이제 그만 하시고 주무시죠." 아들이 걱정스레 말한다.
"그래. 조금만 더 하면 끝나. 먼저 자렴." 아버지는 오늘 밤에도 책상에 앉아 많은 세금계산을 하고 있다.
"그래, 이렇게 만들면, 아버지를 도울 수 있겠는데!" 아버지를 걱정하던 아들, 파스칼은 마침내 신기한 기계장치를 발명해냈다.

효자로 소문난 스무 살 청년 파스칼은 프랑스 오트노르망디에서 세금액을 재분배하는 일을 도맡았던 아버지를 돕기 위해 1642년 인류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를 발명하였다. 이 기계는 톱니바퀴를 이용하여 덧셈과 뺄셈만 가능하도록 만든 연산장치이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곱셈과 나눗셈은 덧셈을 반복하거나 뺄셈을 반복해 해결했다. 파스칼의 계산기 시제품은 50여차례가 넘는 개선을 통해 완성되었고, 1645년에 프랑스 총재에게 전달되었다.
 

파스칼의 기계식 계산기 설계도[자료=위키피디아]


파스칼이 발명한 계산기는 그 후 300년이 넘도록 전 세계에서 수많은 기계식 계산기의 발명을 촉발하였다. 1671년에는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가 곱셈과 나눗셈까지 할 수 있는 단계계산기를 만들었다. 이 계산기는 이진법을 이용한 다양한 알고리즘의 기초 개념을 통해 오늘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념의 기초를 만들었다.

1822년, 찰스 배비지는 종이에 구멍을 뚫어 프로그래밍하는, 오늘날의 컴퓨터와 가장 유사한 장치를 고안했다. 컴퓨터 입력방법의 기초를 제공했으며, 연산과 데이터의 저장을 발견하고, 어셈블리어의 개념을 정립했다. 이런 오랜 계산기 개발의 역사는 1971년 비지컴사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탑재한 계산기 발명으로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인공 생명체의 탄생

산업화가 한창이던 18세기에 들어 과학자들은 생명체의 외관이나 단순한 동작만을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생명체를 재창조하는 수준의 오토마타 연구를 시작했다. 이러한 연구는 생명체의 정체성을 기계와 차별화하기 보다는 이들의 유사성을 발견, 생명체의 움직임 속에 결합된 시간의 흐름까지 재현하고자 하는 열망이 담긴 것이었다.
 

보캉송의 소화하는 오리 설계도 [자료=위키피디아]


이와 같은 새로운 개념의 기계 생명체를 시작한 사람은 프랑스 과학자 자크 드 보캉송이다. 1738년, 그는 400여개의 작은 장치를 고안, '소화하는 오리(Canard Digérateur)' 라는 오토마타를 발명했다. 이 기계는 시간에 맞춰 소리를 내고 헤엄치거나 날개를 퍼덕거리는 등, 실제 오리와 같은 다양한 동작을 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이전의 자동인형보다 더 세밀한 수준의 동작 구현이다.

보캉송의 오리가 AI와 로봇 역사에 기념비적인 발명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기계인형이 물과 음식을 섭취하고 소화해 변을 배설까지 할 수 있는 수준까지 표현, 생명의 원리까지 접근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오리의 배설물은 실제 소화한 배설물이 아닌 빵 부스러기를 푸른색으로 염색했다는 것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이 오리가 섭취와 배설의 전 과정을 생체와 유사하게 과학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이 매우 놀랍다.

보캉송의 오리는 인간이 기계를 통하여 사유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생명유지의 영역까지 구현한 최초의 시도였다. 보캉송의 발명은 기계적인 혁신보다는 그가 가졌던 인문학적인 상상력이 더욱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보캉송은 오리의 발명을 통해 자신의 결함을 극복하는 초월적인 존재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3백년 전, 소설가가 생각해 낸 AI

"기존의 방법대로 한다면 예술적 창작이나 과학적 성취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든 사람이 안다. 그러나 레가도 연구소에 있는 조어장치를 이용하면 그런 작업들이 식은 죽 먹기다. 무지한 사람도 약간의 노력만 하면 철학, 시, 정치, 법률, 이론서를 창작할 수 있다."

이 내용은 걸리버 여행기 3편에 등장하는 공중섬의 수도 '라가도'의 연구소에 자동으로 말을 만드는 조어(造語)기에 대한 설명이다. AI는 많은 소설과 영화에 등장했다. 심지어 로봇의 원형이 그리스 신화에도 나오기는 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AI를 그대로 묘사한 소설이 바로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의 1726년 작 걸리버 여행기다.

라가도 조어 기계는 앞에서 소개한 라몬 유이의 아르스 마그나(Ars Magna)의 이론에 따라 상상된 AI다. 조어기계는 문장을 만들거나 책을 만드는 거대한 컴퓨터다. 스위프트의 AI에 대한 놀라운 묘사는 작가들의 기술적 상상력이 발명가의 실체화보다 앞설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8세기 알파고의 대 사기극

"뭐? 스스로 체스를 두는 인형이라고?"
장막을 덮은 커다란 물건 앞에서 한 남자가 말했다.
"그렇다니까!"
역시, 구경을 온 다른 사람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놀랍게도 그 사람들 앞에 있던 물건은 체스를 두는 인형이었다. 2016년, 2017년 기왕 이세돌과 커제를 꺾으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AI임을 증명한 알파고. 그런데 18세기에도 알파고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 체스를 두는 자동 인형이었다.
 

켐펠렌의 투르크 내부 모습 [자료=위키피디아]


그 로봇은 손에 수연 파이프를 들고 있었고,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책상에는 체스판이 놓여 있었다. 당시 중앙아시아에 살았던 투르크 족처럼 털로 장식된 옷에 터번을 쓰고 있었다. 이에 사람들은 이 인형을 '투르크(The Turk)'라 불렀다.

투르크를 만든 사람은 헝가리 출신 정치가이자 발명가 '볼프강 폰 켐펠렌(Wolfgang von Kempelen, 1734 ~ 1804)'. 그는 증기기관, 워터펌프, 부교 등을 개발하고 말하는 기계까지 발명한 유명한 과학자였다. 켐펠렌 남작은 1769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이 신기한 로봇을 선보였다.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는 이 로봇을 유럽 곳곳에 파견해 체스대결을 청한 모든 왕족과 귀족을 물리쳤다. 이후 남작이 사망하고 1808년, 네포무크 멜첼이 이 체스 로봇을 구입했다.

새 주인이 된 멜첼은 기계인형에 몇 가지 움직임을 더 추가하고 심지어 간단히 말을 할 수 있도록 개량했다. 1809년 쇤부른 궁전에서 나폴레옹에게 선보이기까지 했다. 투르크는 나폴레옹을 보자 손을 들어 경례를 했고, 나폴레옹이 의도적으로 반칙을 하자 팔을 휘저어 체스 말들을 체스 판 밖으로 밀어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또한 '체크'라는 음성까지 나왔다고 한다.

투르크의 인기가 높아지자 일각에서 사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고, 멜첼은 투르크의 내부를 보여주면서 어떠한 속임수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1838년 멜첼이 사망하자 투르크는 여러 주인을 거치다 존 미첼에게 넘어갔고 이후 박물관에 기증됐다가 화재로 소실됐다. 하지만 투르크는 모두 사기였다. 1804년 켐펠렌 남작의 사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체스 로봇 안의 복잡한 기계 장치는 로봇이 올려져 있는 상자이고 그 속에 사람이 들어가 조종했다는 것이다.

비록, 사기로 끝났지만 투르크의 출현은 로봇이 사람처럼 움직일뿐더러 체스와 같은 전략 게임도 하는 높은 지능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했다. 이 투르크와 관련된 상상력은 오늘날, AI기술로 발전되어 체스 챔피언을 이긴 IBM의 딥블루가 되었고,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가 된 것이다.

하나, 투르크 사기는 우리에게 매우 재미난 시사점을 주고 있다. 투르크에서는 사람이 기계를 조종해서 게임을 했다. 그러나 알파고에서는 AI의 판단에 따라 구글 딥마인드의 대만계 엔지니어 '아자황'의 손을 빌렸던 것이다. 아자황은 아마 6단의 실력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 그도 기계에게 조종 받은 것이다. 바둑의 최고 자리에 있는 이세돌을 이기기 위해서.

이렇듯, AI가 인간보다 더 뛰어난 판단을 하는 분야에서 AI가 인간을 조종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우리는 이미 AI의 판단과 지시에 따라 암을 치료하고, 주식투자를 하고, 자동차 운행을 하고 있다. 이러다가 정말로 AI가 인간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닐까? 과연, 그런 세상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AI 인문학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강시철 휴센택 대표 [사진=강시철 휴센텍 대표 제공]

강시철 휴센텍 대표이사 kangshich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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