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가스 공급 조절로 '유럽 길들이기'?...에너지 위기에 몸값 높아진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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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입력 2021-10-0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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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기후로 인한 신재생 에너지 발전 부진과 국제 유가 급등으로 유럽 지역에 불어오고 있는 '에너지 위기'가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 중 하나인 러시아의 몸값을 높이고 있다.

6일(현지시간) AFP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에너지 화상회의를 열고 "국제 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해 러시아가 준비하고 있다"면서 자국의 천연가스 수출량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러시아는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온 신뢰할 만한 공급국에 대해 연내 천연가스를 포함한 사상 최대 규모의 에너지를 유럽에 보낼 수 있다"면서 "가즈프롬(러시아의 반 국영 에너지 기업)은 우크라이나에 벌금을 내고 '노르트 스트림-2' 가스관을 통해 (천연가스) 공급을 늘리는 것이 더 수익성이 높다고 보지만,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노르트 스트림-2는 발트해를 통해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잇는 해저 가스관으로, 지난 9월 부설공사를 마치고 가동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러시아가 유럽 지역에 천연가스를 수출하던 기존의 가스관은 우크라이나를 지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AP·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의 발언으로 이날 장중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영국과 유럽 지역의 천연가스 가격은 빠르게 안정화했다. 이날 영국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40% 이상 폭등하며 거래를 시작했으나, 이후 9% 하락한 100만 BTU(열량단위)당 2.71파운드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장중 최고가는 연초 대비 400% 이상 오른 가격이다. 영국의 가스 도매요금의 경우 이날 오전 연초 가격(60펜스)보다 약 7배나 폭등한 수준인 단위당 407펜스로 뛰어오른 후 단위당 257펜스로 내려왔다. 

최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영국의 물가 상승 압력 역시 거세진 상태다. 영국의 10년 만기 기대 인플레이션(BEI·브레이크이븐레이트)은 4%에 육박하는 수준이며, 이 여파로 10년물 영국 국채(길트) 금리는 2019년 5월 이후 최고치로 뛰었다. 8월 하순 당시 0.50% 수준이었던 해당 금리는 최근 1%를 넘어서며 두 배나 폭등하자, 일각에선 다음 달 영란은행(BOE)이 물가 안정을 위해 조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관측까지도 나오는 상황이다.

올해 천연가스 가격이 600%나 폭등한 유럽 지역 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유럽의 가스 가격은 지난 8월 중순 세제곱미터(㎥)당 600달러를 찍은 후 줄곧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이 여파로 지난 1일 유럽연합(EU) 통계 당국인 유로스타트는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의 9월 물가가 1년 전보다 3.4% 오른 것으로 집계했다. 이는 2008년 9월 3.6% 상승 이후 가장 가파른 오름세다. 특히, 유로존 최대 경제국이자 과거 전쟁 촉발 경험으로 인플레이션 상황에 민감한 독일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역시 3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4.1%로 집계됐다.

이와 같은 영국과 유럽 지역의 천연가스 가격 폭등 상황은 최근 각국의 환경 규제가 강화하면서 주요 수출국의 천연가스 공급량이 줄어든 데다, 올해 이상 기후가 이어지며 유럽 지역의 풍력·태양력 발전량도 부진했던 탓이다.
 

6일(현지시간)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회의.[사진=AP·연합뉴스]


이에 따라 유럽 지역에선 신재생 에너지의 대체재로 활용하는 천연가스 발전량이 늘어나며 가스 비축량이 빠르게 줄어든 반면, 올해 북반부의 겨울이 빠르게 도래하고 유독 추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각국엔 비상 신호가 들어온 상황이다.

이날 유럽연합(EU)은 회원국 환경부 장관 회의와 유럽의회 토론에서 모두 에너지 위기 대응책을 모색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고 있진 않다. EU 집행위원회는 다음 주 중 에너지 가격 안정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가스 가격과 전력 가격을 분리하도록 EU 전력 규정을 개편하자고 주장하며 EU의 에너지 시장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함께 프랑스 측은 원자력 발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스페인은 EU의 천연가스 공동 구매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천연가스 공동 구매 구상은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 등 서북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반발을 사고 있다.

한편, 러시아의 노르트 스트림-2 사업으로 경제적 타격이 큰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를 비난하며, 러시아 측이 공급량 조절을 통해 천연가스 가격의 폭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의혹에 힘을 실었다.

이는 같은 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역시 지적한 사안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에너지 가격 폭등 상황에서 노르웨이는 자국의 천연가스 수출량을 늘렸지만, 유럽 지역의 최대 공급처(EU 27개국 천연가스 소비량의 43% 수출)인 러시아는 공급량을 늘리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EU 집행위는 현재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량 확대 거부 조치가 가격 상승을 유발하기 위해 의도된 것인지 조사하고 있기도 하다.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장관 역시 이날 FT에서 "유럽의 가스 위기 속 러시아의 역할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으며, 가즈프롬의 시장 조작 여부를 평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면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시도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다만, 러시아는 이와 같은 의혹을 거듭 부인하고 있다. 앞서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최근 가스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서 러시아의 역할은 전혀 없다"고 반박한 데 이어, 이날 에너지 회의에서 푸틴 대통령 역시 최근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러시아와의 가스 공급 장기 계약을 해지한 유럽 국가들의 실수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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