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행] 귀성길보다 한옥길…한옥에 숨은 이야기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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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정 문화팀 팀장
입력 2021-09-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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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했던 이 말을 올해는 외치기 힘들 듯하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확산세가 1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이어지는 탓이다. 귀성에 오르지도 못하리라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가을 내음 맡으며 천천히 걷는 시간으로 가져야겠다. 서울 속에 숨은 한옥길을 걷는다면 그리운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까. 전통 한옥에서 풍기는 내음, 여기에 곁들여진 문화관광해설사의 깊이 있는 이야기가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조선 시대 유교숭상을 위해 공자와 선현을 모셨던 사당인 대성전[사진=서울관광재단 제공]

◆전통 한옥 들어앉은 대학교···성균관 코스

아름다운 우리의 한옥, 그 속에 담긴 700년 역사의 교육 이야기와 함께 현재 우리 생활 속 남은 흔적까지······. 고즈넉한 한옥에서 심신을 달래고 싶은 이를 위한 코스가 어딜까 생각하니 불현듯 '성균관'이 떠올랐다.

성균관대학교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성균관은 지금도 대학과 나란히 공간을 같이 하며 과거의 유서 깊은 이야기를 한옥 속에 가득 품고 있다.

대학교 정문에서 탕평비각과 하마비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서울 문묘(文廟) 터를 마주하게 된다. 문묘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와 서무를 두고 있는 조선 시대 유교 사당으로, 중국 공자(孔子) 등 위대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장소다. 특히 매년 2월과 8월에 지내는 석전대제는 문묘제례약과 함께 국가 행사로 치러지며 이는 아직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물론 우리는 늘 가까운 곳에서 성균관을 접한다. 지갑 속 1000원권 지폐에 성균관에서 학문에 열중했던 퇴계 이황 선생과 그 뒤편에 배경으로 자리 잡은 한옥이 바로 명륜당이다.

명륜당은 단순한 지식뿐만 아니라 유교적 이념도 함께 가르쳤던 유생들의 교육을 위한 강당이다. 명륜당 좌우의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의 기숙사로 그 특성에 맞게 명륜당 건물보다 좀 더 옅은 갈색의 푸근한 느낌을 준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 서늘한 바람에 흔들리는 은행잎에 마음이 절로 평온해진다. 

이외에도 성균관의 도서관인 '존경각', 임금의 대사례(大射禮)용 기구를 보관하던 '육일각' 등 다양한 한옥 이야기에 집중해 듣다 보면 조선 시대 엘리트 유생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인현왕후와 명성황후의 두 왕비의 거처인 감고당이 있었던 감고당길[사진=서울관광재단 제공]

◆나만 몰랐던 북촌 한옥 이야기...북촌 순례길 코스

북촌은 서울 계동과 가회동을 아우르는 대표 한옥 명소다. 북촌 순례길 코스를 걸으며 여러 갈래로 나눠진 골목 사이사이의 고풍스러운 한옥, 그 이면에 숨겨진 북촌의 인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송현동 길자락을 따라 걷다 보면 닿는 감고당길 초입 새로 지은듯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올해 7월 설립된 서울공예박물관이다.

서울공예박물관은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으로, 전통부터 현대까지 총 2만여점이 넘는 공예품과 자료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제별 공예 전시뿐만 아니라 공예 음악 콘서트, 도서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9월부터 제공할 예정이다.

박물관을 지나 이어지는 감고당길은 인현왕후와 명성황후, 두 왕비가 지냈던 감고당이 있던 터다. 현재 감고당은 명성황후 생가 성역화 사업으로 경기도 여주로 옮겨갔다. 감고당이 있었던 길답게 주위로 돌담길이 쭉 이어지며 한옥마을로 인도한다. 주말이 되면 감고당길은 차 없는 거리로 변신한다. 작은 공예 거리상점들이나 버스킹 등 거리공연이 펼쳐지니 참고하여 가보는 것도 좋다.

한옥마을로 향하는 길에 그 시작점을 알리는 듯 우직하게 서 있는 한옥 한 채 '윤보선 가옥'이 보인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가옥이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선출된 윤보선 대통령은 이곳에서 집권 시기에 거주하며 집무를 봤다. 외양은 한옥이지만 상해 임시정부 시절 중국의 양식이 담긴 내부 모습, 그리고 가옥 맞은편에 대통령의 사저를 출입하는 감시용 건물까지, 윤보선 가옥을 둘러싼 이야기가 흥미를 자극한다. 

북촌 일대는 개화파 독립운동가들의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려 했던 성지로, 지금의 정독도서관 자리에는 김옥균과 서재필의 집터를 비롯해 그 맞은편 김홍집 집터, 헌법재판소 위치에 박규수의 집터가 있었다. 해당 위치의 표지석과 집터를 따라 돌아보며 현대 건축물과 한옥 사이, 투사들의 독립 열망이 가득하다. 
 

청운문학도서관 사진 명소 '한옥 속 인공폭포'[사진=서울관광재단 제공]

◆한적한 한옥 책방에서 '물멍'...인왕산 자락 청운문학도서관

도서관 입구부터 정겨운 글씨체의 팻말과 함께 뒤에 보이는 전통 한옥을 마주하니, 마치 시골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서울 도심에서 자연과 한옥이 조화롭게 섞여 있는 공간이 바로 여기구나. 계절의 변화에 따라 형형색색 옷을 갈아입는 듯한 인왕산 자락길 나무 숲과 그 안에 지어진 가옥이 전통 한옥의 운치를 한층 더한 장소, '청운문학도서관'이다.

서울 부암동에 위치한 청운문학도서관은 청운공원의 관리소로 쓰이던 낡은 주택 건물을 개조했다. 전통문화의 향기가 가장 깊게 스민 종로구의 특성을 살려 주변의 수성동 계곡과 인왕산을 함께 품은 종로 최초 한옥공공도서관으로 개발했다. 과연 전통문화를 보존하려는 도서관답다. 한 겹 한 겹 수제 기와로 제작된 한옥 지붕과 연못 위에 떠 있는 한옥 독채 등이 한옥의 섬세한 멋을 자랑한다.

특히 도서관 본관 옆 독채에 들어서 창호문을 열어 바로 보이는 자그마한 인공폭포는 이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사진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마루에 가만히 앉아 폭포수를 바라보는 시간이 참 행복하게 느껴진다. 그간의 시름은 모두 잊은 채 서서히 '물멍'에 빠져든다. 

한옥과 자연의 하나가 된 경치를 좀 더 감상하고 싶다면 도서관과 바로 이어지는 시인의 언덕을 올라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어느 정도 오르다 뒤를 돌았을 때 시선 아래 펼쳐지는 기와지붕들이 눈도, 마음도 즐겁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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