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연쇄중단 없다더니…오락가락 대출규제에 실수요자 혼란만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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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근미 기자
입력 2021-08-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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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옆집 어머님은 늘지 않는 소득과 늘어나는 물가 세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대출을 생각했습니다. 아랫집 이모는 딸 대학교 학자금 융통을 위해, 윗집 아버님은 무주택자를 벗어나기 위해 집을 구입하며 대출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무슨 법을 어겼나요?”

정부가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겠다며 유례없는 가계대출 죄기에 나선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정부의 대출규제를 비판한 한 청원자의 푸념이다. 이 청원자는 “정부 입장에서 대출 총량에 대한 걱정은 이해한다”면서도 “정부의 개입은 필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그 해결책을 이리 단순하게 결정해 시행할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정부발 ‘대출절벽’ 소식에 금융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곧 가계대출이 막힐 것을 우려한 차주들이 너나없이 선제적으로 마이너스통장 발급과 신용대출을 받고 보는 이른바 ‘패닉 대출’에 나선 것. 금융권에 따르면 대출 축소 소식이 처음 전해진 지난 20일 이후 은행권 신용대출 증가규모는 전주 대비 6배, 마이너스통장은 8배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실 가계대출 규제 시그널은 일찌감치 있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하반기 가계대출 증가세를 3~4%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2금융’을 타깃으로 내세웠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은행권 대출 문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관련 수요가 2금융권으로 확산된 만큼 기관 자체적인 대출 규제 강화에 나서달라는 것.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에도 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추가 규제가 본격화된 것이다. 

특히 이번 혼란은 금융당국이 자초한 측면이 높다. 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취급 중단 소식이 전해진 이후 당국은 입장자료를 통해 “자체 수립한 가계대출 연중 목표치를 과도하게 초과한 일부 금융회사들 차원의 움직임”이라며 이 같은 움직임이 여타 금융회사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사태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여타 은행들까지 대출 중단 예고에 나서면서 당국의 이 같은 발언은 무색하게 됐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강도 높은 대출규제 속에서도 '실수요자'의 자금공급에는 어려움이 없도록 하겠다는 기조를 일관적으로 피력해왔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이뤄진 은행권 대출 축소 움직임은 상환 여력이 충분한 고신용 실수요자들에게조차 자금 공급에 악영향을 미칠 여지가 커졌다. 정부당국의 가계대출 강화 시그널과 실수요자는 피해가 없을 거라던 공수표가 더해져 금융시장에 혼란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갈지자식 정책기조가 계속될수록 금융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항상 그렇듯 금융권에서 가장 큰 공포는 '불확실성'이다. 차주들의 기대와 정부정책이 엇갈릴수록 그 충격이 더해져 정책 효과 약발 역시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27일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가계대출 관리 과정에서) 실수요자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겠다"고 밝혔지만 현 시점에서 이를 온전히 믿고 따를 차주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아주경제 금융부 배근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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