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20년 만의 귀환' 탈레반은 기세등등, 아프간 여성들은 전전긍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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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기자
입력 2021-08-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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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레반 카불 점령 이후 히잡 안 쓴 여성 벽화 사라지고, 부르카 구매 급증

  • 탈레반은 여성 인권 존중 약속했지만…아프간 여성들은 과거 회귀 우려

  • 탈레반 약속 지켜질까? 국제인권단체 "과거와 달라질 건 없을 것"

탈레반 탄압을 피해 공항에서 출국을 기다리는 아프간인들 [사진=AFP·연합뉴스]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점령하며 기세등등하게 귀환했지만, 아프간 여성들은 여성 인권이 회귀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2001년 탈레반이 아프간에서 축출된 뒤 힘겹게 수중에 넣은 여성 권리가 손에 쥔 모래알처럼 사라질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했지만, 전문가는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NBC방송에 따르면 인나 미카엘리 국제 여성인권단체 AWID(개발여성권리협회) 프로그램 디렉터는 "현재 아프간 여성들은 거리에 나갈 수 없고 대학과 직장에도 갈 수 없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야스민 하산 국제 여성단체 이퀄리티 나우 이사도 "지금까지 아프간 여성들은 교육과 정치 분야에서 큰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매우 걱정스럽다"고 했다.
 

아프간 장악 후 첫 기자회견을 하는 탈레반 [사진=AP·연합뉴스]

 
아프간 여성들에게 탈레반 귀환이 두려운 이유는 샤리아법(이슬람 율법) 때문이다. 탈레반은 1996~2001년 집권 당시 샤리아법으로 사회를 엄격하게 통제했다. 특히 샤리아법은 여성에게 유독 가혹했다. 예를 들어 여성에게 교육과 직업을 금지했고 공공장소에서는 부르카(검은 천으로 얼굴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복장)를 입게 했다.

이 밖에도 여성은 강간을 비롯해 여러 범죄에 노출됐고, 강제 결혼도 빈번했다. 아프간 여성에게 탈레반 복귀는 곧 트라우마인 셈이다. NBC는 아프간 주둔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한 5월부터 민간인 사상자가 크게 늘었으며, 이 중 절반 가까이(46%)가 여성과 어린이였다고 전했다.
 

탈레반은 아프간을 장악한 뒤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여성 권리를 존중하겠다며 온건한 자세를 취했다. 여성 인권 탄압으로 악명 높았던 과거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아프간은 벌써 탈레반 입맛에 맞춰 바뀌는 분위기다.

아프간 TV 채널 '톨로뉴스'의 로트풀라 나자피자다 대표는 본인 트위터에 카불에서 한 남성이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 벽화를 하얀색 페인트로 지우는 사진을 올렸다. 벽화는 모두 3개로, 왼쪽 벽화는 이미 하얀색 페인트로 덮여 원래 모습을 완전히 감췄다. 그 옆으로 남성이 덧칠하는 벽화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아직 페인트가 칠해지지 않은 오른쪽 벽화 속 여성은 히잡 대신 왕관을 두르고 두 손을 머리에 올린 채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로트풀라 나자피자다 톨로뉴스TV 대표가 15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사진 [사진=트위터]


이 사진을 본 누리꾼은 "희망찬 여정은 끝났다. 지난 20년 동안 이어진 민주주의는 한순간에 석기시대(Stone Age)로 돌아갔다. 세상은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했다. 창피하다(Shameful)"고 댓글을 남겼다. 이 댓글에는 공감을 뜻하는 '좋아요'가 2600개 이상 달렸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자 뒤바뀐 여성 특파원 복장도 눈에 띈다. 아프간 정부가 항복을 선언한 뒤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는 CNN 특파원 클라리사 워드의 옷차림을 비교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을 보면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기 전 방송에서 워드는 얼굴을 드러내고 빨간색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있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기 전(15일)과 후(16일) CNN 특파원 클라리사 워드의 옷차림이 다르다. [사진=트위터]


하지만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15일에는 검은색 스카프로 머리와 몸을 꽁꽁 감싸고 있다. 이를 본 누리꾼은 탈레반 통치 아래 잔인한 삶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했다. 다만 워드는 자신의 트위터에 "위 사진은 사유지에 있는 모습이고, 아래 사진은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거리다. 나는 예전에도 카불 거리에서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다녔다"며 이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해명했다.

부르카 착용을 강제한 탈레반이 다시 집권하자 부르카를 구매하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인도 매체인 인디아투데이는 "탈레반 귀환으로 아프간 여성들이 부르카를 착용하기 시작하면서 카불의 부르카 가격은 10배나 뛰었다"고 전했다.

가혹한 규제로 여성을 공포에 떨게 한 탈레반이 유화적인 태도로 민심 달래기에 나섰지만, 전문가는 과거와 달라질 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헤더 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여성인권국 공동국장은 "탈레반이 여성 교육과 취업도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이슬람법의 틀 안에서'라는 조건을 달았다"며 탈레반의 모호한 태도를 꼬집었다. 바 국장은 "탈레반 대변인은 꾸준히 여성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어느 때보다 공허하게 들린다. 아프간 여성들은 국제사회에 도움을 구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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