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르고 쉽게]⑦ 나도 '결정장애'?…습관처럼 쓴 이 말, 누군가에겐 큰 상처

전성민 기자입력 : 2021-07-26 00:05
차별 없는 세상 향한 첫걸음은 '차별어' 알기…사회적 약자ㆍ특정 대상 부정ㆍ경멸하는 언어 여의사ㆍ미망인ㆍ유모차 등 비대칭ㆍ관습적 표현도…차별 감수성 끌어올릴 다양한 정책 필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미형 국어문화원연합회 회장, 신효은 중학교 국어교사, 전성민 아주경제 기자,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사진=‘차별어·혐오 표현 관련 전문가 좌담회’ 캡처]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언어'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통신과 TV 등 각종 매체에서 신조어가 넘쳐나고, 외국어 남용도 비일비재하다. 소통의 역할을 하는 언어가 파괴되면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 격차는 더 심해졌다.

국민을 계도하고, 소통에 앞장서야 할 정부나 기관·언론도 언어문화 파괴의 온상이 됐다. 공중파를 비롯한 언론의 언어 파괴는 말할 것도 없다.

신조어와 줄임말, 외국어 사용으로 '새로운 표현'과 '간결한 표현'은 가능해졌을지 몰라도 이를 모든 국민이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다. '쉬운 우리말 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쉬운 우리말을 쓰면 단어와 문장은 길어질 수 있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더 쉽게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는 모든 백성이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계승해 국민 언어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의 보도자료와 신문·방송·인터넷에 게재되는 기사 등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지는 이 노력에 힘입어 우리 주변에 만연한 외국어와 비속어·신조어 등 '언어 파괴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13회에 걸쳐 연재하기로 한다. <편집자 주>


당신은 차별이 보이시나요?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가 쓴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보통의 경우 차별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각자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차별 감수성’도 다를 수밖에 없다. 본인이 어떤 의도를 갖고 말을 하지 않더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하나의 예로 우리는 지금도 ‘결정장애’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지은이는 책 속에서 “토론회 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 결단을 내리자는 말을 하던 중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다”며 “토론회 후 참석자 중 한 분이 ‘그런데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라고 조용히 물었다”고 적었다.

습관적으로 장애라는 말을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게 된다. 책을 읽은 후 ‘결정장애’라는 말이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차별을 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차별어에 관해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본지는 지난 20일 ‘차별어·혐오 표현 관련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회의 방식으로 진행된 좌담회에는 김미형 국어문화원연합회 회장, 신효은 중학교 국어교사,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이 함께했다.

◆ 차별어는 무엇이고 어떤 말들이 있을까?

차별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은 차별어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김슬옹 원장은 “차별어란 사회적 약자 또는 특정 대상을 직·간접으로 부정하고 무시, 경멸하거나 공격하는 단어·구·문장 등의 언어 표현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편견과 고정관념 등도 해당한다.

김미형 회장은 “어느 하나를 배타적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들어 있는 언어가 차별어”라며 “어떤 뜻으로 말을 만들었는지, 어원적으로 차별이 들어있는지 등 다양한 차별어가 연구 대상이 돼야 한다”고 짚었다.

차별어는 △노골적 차별어, △비대칭 차별어, △관습적 차별어, △다의적 차별어로 분류할 수 있다.

‘노골적 차별어’는 차별 의도가 언어 형식이나 내용으로 가시적으로 드러나 누구나 차별어로 인식하는 비속어나 혐오 표현을 말한다. 차별 의도가 명백하고 그것이 언어의 형식과 내용으로 분명하게 드러난 비어나 속어, 모욕어, 직접적 언어폭력에 해당하는 어휘들이 여기에 속한다. 욕설과 ‘~충‘ 같은 은어성 유행어들이 속한다.

‘비대칭 차별어’는 표현 자체는 차별을 담고 있지 않지만, 다른 어휘와의 관계에서 차별의 특성을 드러낸다. 여의사, 여류 작가, 여기자, 남간호사 등이 있다.

김 회장은 “과거에는 여자를 학교에 많이 안 보내 여중, 여고라는 말이 생겼다. 현재는 달라졌다”며 “남녀를 꼭 구분해야 할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남학생, 여학생처럼 여자와 남자를 함께 쓰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짚었다.

‘관습적 차별어’는 ‘미망인’, '집사람'처럼 역사적으로 또는 사회적 관습으로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는 차별어로, 보통은 차별어인지 모르고 쓰는 경우가 많다.

‘다의적 차별어’는 비차별적 의미와 차별적 의미가 함께 있는 다의어로 특정 맥락에서 차별어로 규정되는 어휘들이다. 특정 맥락에 따라 차별어인지 아닌지 판별되는 맥락 의존성이 강한 어휘들로 발화 주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이런 차별어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경기도에 있는 공립 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신효은 교사는 지난 7월 8일부터 14일까지 학생 270명(1학년 120명·2학년 30명·3학년 120명)을 대상으로 '차별어 및 혐오표현 사용 실태'에 관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신 교사는 “대부분의 학생이 무엇이 차별어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결과가 나와 충격을 받았다”며 “‘잼민이’ 같은 초등학생을 비하하는 용어 등이 있었고, 남녀 성차별 관련 용어도 전혀 인식을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조사 결과를 전했다.

중요한 점은 이런 차별어에 대한 인식 부족은 비단 학생들만이 아닌 일반인 전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차별어 및 혐오표현 사용 실태 설문 조사’에 참가한 한 학생의 글 [사진=신효은 교사 제공]


◆ 보이지 않는 차별어, 좀 더 보이게 할 수는 없을까?

차별어와 혐오 표현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차별어 관련 분야에서 다소 뒤처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 원장은 “일본에서 일찍이 차별과 관련된 사항이 사회적 쟁점이 된 것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늦게 쟁점이 되고 있다”며 “일본에서 관련 연구가 많이 진행됐지만, 우리나라에서 나온 연구 성과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국어문화원연합회, 세종국어문화원 등이 차별어를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각자가 ‘차별 감수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위에서 예로 든 ‘결정장애’처럼 이것이 차별어인지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

신 교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이 평생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어휘에 대한 교육을 더 늘려 학생 스스로가 ‘내가 차별어를 쓰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신 교사는 “유모차 대신 쓸 수 있는 유아차 같은 대체어를 정하고,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라고 짚었다.

김미형 회장은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평생 교육 등을 통해 차별어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라며 “국립국어원 등에서 차별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차별어 관련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때가 있을 텐데,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김슬옹 원장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차별 표현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며 “차별하고 차별받는 사회가 바로잡히기를 바란다”라고 간절히 희망했다.

‘차별어 및 혐오표현 사용 실태 설문 조사’에 참가했던 한 학생의 글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길이 담겨 있다. 

“평소 많이 쓰는 단어에 차별이나 혐오의 의미가 담겨 있는 걸 몰랐는데 충격적이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제라도 쓰지 말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뜻을 알고 쓰냐는 말을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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