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발목 잡힌 경제] 전광우 "차기 정권 손댈 1순위는 '국민연금·노동'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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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최신형 정치사회부장, 정리=박경은 기자
입력 2021-07-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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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대담] '경제원로' 전광우가 본 韓 경제

  • "시장 자율기능 인정하며 부작용 줄여줬어야"

  • "ESG, '블랙록·바이든·코로나'로 핵심이슈 돼"

  • "재정지출 최대원칙, 선택과 집중...논쟁 안돼"

  • "이재용 역할 필요한 시점...전향적 판단 필요"

[대담=최신형 정치사회부장, 정리=박경은 기자] "부동산 가격 등 경제 문제를 규제나 통제로 잡겠다는 정부 접근 자체가 문제다."

'경제원로'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연구원 사무실에서 진행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 전반에 전체주의적인 마인드가 엿보인다고 진단했다.

전 이사장은 특히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실책인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과 부동산 정책을 언급, "정부가 경제 문제점을 통제함으로써 해결하려는 마인드가 강하다"며 "정부가 기본적인 시장의 자율 기능을 인정하면서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쳤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전 이사장은 내년 3월 대선을 통해 출범할 차기 정부가 이를 교훈 삼아 경제 정책 기조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 이사장은 또 향후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설명하며 "국민연금을 비롯해 노동개혁 등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장은 고통과 부담이 따르지만 국가의 미래와 다음 세대를 위해 바른 일이라고 한다면 해야 하는 것이 개혁"이라며 "두 개혁 모두 다음 정부가 꼭 해야 한다고 본다"고 거듭 피력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과 사면 얘기가 거론되는 데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얘기"라며 동의 의사를 밝혔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연구원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시장 이기는 정부 없다' 되새겨라"

-한국 경제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혔다는 지적이 많다. 동의하나.


"현 정부 들어 소주성 정책 등과 관련한 문제점이 지속해 제기됐다. 우리 경제가 가진 여러 문제점을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려고 접근했던 것이 큰 문제점이다. 시장만능주의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시장의 자율기능을 인정하면서 부작용을 줄이는 조화된 정책을 펼치는 게 바람직했다. 부동산 문제만 봐도 그렇다. 주택가격이 어떻든간에 우리 시장경제 시스템하에서 가격은 시장 경쟁을 통해 결정된다. 그게 때로는 효율적인 범위를 벗어나 쏠림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무리한 경우 정부 역할이 필요한 때도 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을 규제나 통제로 잡겠다는 접근 자체는 전체주의적 마인드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 4년여 경험으로 비춰볼 때 다시 한번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 표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다음 정부가 어떤 정책 기조를 세울지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 실책을) 교훈 삼아 고민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연금을 비롯해 노동개혁 등 구조개혁에는 손도 못 댔다.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매우 심각하다. 국민연금개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연금 구조를 보면 미래 세대에 덤터기를 떠넘기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낸 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받는다. 그게 지속 가능한가. 조금 내고 많이 받는 시스템이 어떻게 지속 가능하냐는 얘기다. 연금이 제대로 운용되려면 내는 돈과 받는 돈을 적절히 조율해야 한다. 연금개혁의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연금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얘기다. 누가 좋아하겠느냐. 현 정부가 선거 공약에 (연금개혁을) 넣었지만 하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2050년 기금이 바닥났을 때 젊은 세대들이 소득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내게 될 것이다. 소득의 3분의 1가량을 세금으로 내게 될 것이라는 통계도 있다. 보통 세금 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부담이 가는 구조라는 뜻이다. 연금개혁은 다음 정부가 꼭 해야 한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연구원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MZ세대 생각한다면 연금·노동개혁해야"

-'한국판 하르츠' 개혁인 노동 경직성 타파도 당면 과제인데.


"사실 현 정부가 하길 바랐던 게 연금개혁과 노동개혁 두 가지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생각한다면 연금개혁은 반드시 해야 한다.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해야 할 것은 노동개혁이다. 노동개혁을 해야 창의적이고 과감한 투자도 이뤄지고 민간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나올 수 있다. 노동개혁 역시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였을 때 오히려 기업의 추가 고용 여력이 생긴다. 이런 부분이 부족하니 국내 투자에 대한 매력도도 떨어졌다. 민간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러 규제 개혁에도 나서야 한다. 정부가 다 잡고 주도해야 한다는 철학에서 벗어날 때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높아지면 비정규직 노동자부터 사다리를 걷어차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경제 이슈에서 좋은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트레이드오프(이율배반적 경제관계)가 있다는 얘기다. 순이익이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고용 유연성을 높이면 해고가 쉬워지는 측면이 있기는 하겠지만, 어느 정도 해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채용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그렇게 발전한 것이다.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두운 면도 있다. 그런 부분을 보완하는 게 맞다. 보완책 중 하나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다."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나.

"'오리지널 뉴딜'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100년 전 얘기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펼친 때는 1930년대로, 지금과는 경제패러다임 자체가 다른 때다. 당시엔 하드웨어 투자가 중요했다. 도로와 발전소 건설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혁신이 이뤄지는 때로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정부가 어떻게 민간 전문가보다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겠느냐. 정부는 전문가들이 잘 뛸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민간이 잘 뛸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놔주는 것을 넘어서 걸림돌을 치워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해야 한다. 당장 고통과 부담이 따르더라도 국가의 미래와 다음 세대를 위해서 바른 일이라고 했을 때 하는 게 개혁이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연구원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이재용 역할 필요한 시점...전향적 판단 필요"

-ESG가 최근 들어 재차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20여년 전에 유엔 책임투자원칙(PRI)에서 처음 쓴 이후 국내에서는 내가 사용한 게 최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2009~2013년 국민연금 이사장을 지내던 시절 기금운용본부에 ESG팀을 만든 바 있다. 내부적으로 '장기투자자로서 환경 문제,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등을 감안해 투자 원칙을 세우자'라는 컨센서스(합의)가 있었다. ESG가 최근 더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코로나19 사태 등 영향을 받았다. 이른바 'BBC' 때문에 '메가 트렌드'로 떠올랐는데 BBC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코로나19 세 가지를 합친 용어다. 블랙록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업 투자의 핵심 기준으로 ESG에 얼마만큼 충실한 기업인지를 파악하겠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파리기후변화 협약에 재가입했다. 또 사람들이 코로나19 사태로 환경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큰 문제가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 세 가지를 생각해보면 ESG가 잠시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개념이 아니라 장기간 핵심 어젠다, 핵심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논의 과정에서 세밀한 문제가 있겠지만 이런 문제일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재정지출의 가장 큰 원칙은 선택과 집중이다. 국가 재정으로 현금을 지원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피해를 많이 본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게 맞는다. 중위소득 절반 이하에 있는 시민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맞다. 이런 부분을 정치이슈화해서 (논쟁)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가석방 요구도 뜨겁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서는 사면이든 가석방이든 이뤄져야 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 정치·경제의 큰 변화 속 뚜렷한 메시지는 국가의 경제력이 안보력과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경제 문제와 외교·안보 문제는 분리되지 않고 같이 가는 문제다. 우리 국가의 미래 생존력은 핵심 전략 산업에 대한 한국의 경쟁력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이 부회장 부재로 전문경영인이 투자를 망설이는 동안 잘못하다간 삼성이 반도체 산업에서 대만의 TSMC와 다른 기업 사이 샌드위치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시대적 특성을 감안한다면 이 부회장이 역할을 하게 해줘야 한다. 삼성전자가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도 장소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경영인으로서는 그런 결정이 크게 부담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시점이다. 법적으로 가석방이든 사면이든 공정하게 하면 그게 맞는 얘기다. 경제적으로, 또 외교·안보적으로 나라를 더 튼실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전향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연구원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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