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미·중 공급망 경쟁…우리 기업들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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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기 기자
입력 2021-07-2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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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던 시기,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한국의 외교 전략을 놓고 자주 언급되던 말이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도입,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여 등 굵직한 외교 현안을 놓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을 탔다.

당시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 양쪽 모두를 선택한 외교 전략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역사가 판단할 일이다.

 

미·중 경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문제는 한국 정부가 겪었던 이 딜레마를 최근 국내 기업들이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각종 나비 효과로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진 게 시발점이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공장이 멈추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각국 정부가 후속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를 ‘인프라’로 규정하는 등 핵심품목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국내 산업계는 미국이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 등 4대 핵심품목에 대한 공급망 강화 전략을 발표한 것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안보와는 상관없이 경제적인 차원에서만 고려하면 된다.

그러나 국가 안보를 비롯한 다양한 외부 환경에 따라 기업의 경제적인 이익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네덜란드 기업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중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명분은 ‘국가안보 우려’로 알려졌다.

미국이 이처럼 자국 내에 공급망을 확보하는 등 추후 돌발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해 자국 산업을 지키고, 일자리 창출을 통해 국가 경제를 부흥하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대규모 시장인 중국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 중심으로 공급망이 재편되는 흐름에 놓인 채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삼성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은 미국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미국 주도 공급망에 참여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들은 모두 중국과의 관계를 놓겠다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에 따른 불이익은 있을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기업으로서는 공장 건설 등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면서 그에 따른 기대수익 등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도 지난달 반도체, 배터리, 백신 등 국가전략기술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지원방안을 발표하는 등 각국 정부가 미래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산업군 육성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앞다퉈 산업계 육성에 나선다는 것은 이를 통해 앞으로 국가적인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기업들이 언젠가는 ‘선택의 시간’을 마주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산업부 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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