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나는 성폭력 피해자지만, 가해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홍승완 기자입력 : 2021-07-15 17:04
친오빠에게 성폭행 피해, 돌아온 건 부모님의 꾸지람…청원 사흘 만에 18만명 동의 매년 늘어나는 친족간 성범죄, 2016년 500건에서 2018년 578건으로 증가 가족이라는 특성상 신고 어렵지만 공소시효는 10년 불과... 커지는 공소시효 폐지론 전문가 "가정폭력은 보통 안 보이는 경우가 많아…제3자 역할 중요"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초등학생 때부터 수년간 성폭력을 일삼은 친오빠와 여전히 한집에서 살고 있다고 밝힌 피해자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이 사흘 만에 18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며 파문을 낳고 있다. 피해자는 성폭행을 신고했지만, 친오빠로부터 추가 가해를 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성폭행 피해자인 제가 가해자와 동거 중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이날 오후 3시 기준 18만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현재 글 내용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타고 퍼지고 있어 국민청원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자신을 서울에 사는 19세 여학생이라고 밝힌 글쓴이 A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친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성추행은 점점 대담해져 성폭행이 됐다"고 밝혔다. A씨는 "집이 리모델링할 때 친오빠와 같은 방에서 자던 중에 성추행을 당했다. 손을 뿌리치거나 화내면 오빠와 어색해질 걸 우려해 조용히 자는 척했다. 그 뒤로도 수십번 추행을 당했다"고 했다. 모르는 척 넘겼던 추행은 성폭행으로 이어졌고 참다못한 A씨는 2019년 6월 피해 사실을 처음 경찰에 알렸다.

하지만 이후로도 친오빠의 성폭력은 멈추지 않았다고 A씨는 주장했다. A씨는 "올해 2월에도 친오빠에게 추행을 당해 화를 냈지만, 부모님은 오히려 '네가 오빠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아 그렇다. 오빠 한 번 안아주고 그래라'라며 오히려 자신을 꾸짖었다"고 했다. A씨는 2년간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병원과 친구 집, 고시원 등을 전전하다 부모 뜻에 따라 여전히 친오빠와 같은 집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서부지법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친족간 성범죄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가해자가 가족이라는 특성상 범죄가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 또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릴 경로도 제한돼 반복적으로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그래픽=우한재 기자]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친족 관계에 의한 성폭력 범죄 접수 및 처분 현황' 자료를 보면, 검찰이 접수한 친족 대상 성폭력 범죄자는 △2015년 520명 △2016년 500명 △2017년 535명 △2018년 578명 △2019년 525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친족간 성범죄는 암수율(드러나지 않는 범죄 비율)이 높아 실제 발생한 범죄는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친족간 성범죄자 대부분이 무혐의·불기소와 같은 '솜방망이' 처분을 받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친족간 성범죄자에 대한 구속비율은 △2015년 27% △2016년 25% △2017년 25% △2018년 20% △2019년 14%로 매년 감소 추세다. 친족간 성범죄자 5명 중 1명만 구속된 셈이다. 또 친족간 성범죄 사건 중 약 30%는 기소유예, 혐의없음, 각하 등 불기소 처분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행법상 친족간 성범죄 공소시효가 최장 10년에 그친다는 점도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친족간 성범죄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바깥에 알리기 어렵고 가해자로부터 독립한 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신고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친족간 성범죄 피해자 중 절반 이상이 피해 발생일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관련 상담소를 찾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2019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 및 상담 동향분석'에 따르면, 친족간 성범죄 피해로 상담소를 찾기까지 걸린 시간이 10년 이상인 경우는 87건 중 48건(55.2%)에 달했다. 5년 이상 10년 미만인 경우도 12건(13.8%)이었으며, 피해가 가장 많은 시기는 7~13세인 어린이 시기(33.3%)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 개정을 통해 친족간 성범죄 공소시효를 폐지해 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친족간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모임 '공폐단단'은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현재 13세 미만에 대한 성폭력 범죄 등에 대한 공소시효는 폐지됐으나 그 외 모든 친족간 성범죄 피해자는 공소시효를 적용받아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다. 피해자가 사건 이후 피해를 인식해 고소하려 해도 공소시효로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친족간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를 요구했다.

전문가는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은폐가 쉬운 만큼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조직강화국장은 "(친족간 성범죄) 피해자는 가족으로부터 분리가 돼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시기에 형사 처벌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또 몇십 년이 지난 뒤에 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가정폭력은 안 보이는 경우가 많아 주위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신고를 해 드러내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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