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영의 재팬 플래시] 올림픽의 영광 재현인가, 일그러진 자화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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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입력 2021-07-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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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이 팬데믹에도 올림픽을 강행하는 속사정

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일본 주재 한국대사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원들이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못해 전전긍긍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참석 가능성이 거론되던 상황이었다. 본국 선수와 손님들을 맞이하고 안내하려면 대사관 직원들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필수다. 일본 외무성과 일본올림픽조직위원회(JOC)에 여러 차례 SOS를 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검토중”이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요구가 쏟아졌을 것은 뻔한 일. 집권 자민당이 나섰다.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자민당 외교부회 회장이 지난달 9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에게 주일 외교단의 백신 접종을 요청했다. 이틀 뒤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는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대사관 직원들이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손을 좀 써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와중에 일본은 대만, 베트남 등에 백신 100만 회분을 제공했다. 대사관 직원들은 결국 6월 말이 돼서야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은 올림픽 개최(7월 23일)를 코앞에 두고서까지 일본 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한 단면으로 여겨진다. 올림픽 참가국에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개최국의 도리임을 일본 정부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쿄올림픽의 강행 여부를 놓고 일본 정부는 고심 끝에 ‘안전’과 ‘안심’을 내걸고 개최 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세계는 물론 일본 국내에서도 ‘위험’과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메달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라”는 게 선수단을 보내는 각국의 심정일 것이다.

개막을 보름 앞두고 있는 지금도 개최지인 도쿄의 코로나19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일주일 평균 하루 확진자 수는 500명대를 오르내리고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1500명대에 이른다. 올림픽 개최에 대한 일본 국민 여론도 압도적으로 부정적이다. 아사히신문이 6월 19~20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올림픽을 취소하거나 다시 연기해야 한다는 답변이 62%(개최 찬성 34%)였다. 도쿄에서는 올림픽 개최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일왕도 이례적으로 올림픽 개최로 인한 코로나 확산이 걱정된다고 했다. 오미 시게루(尾身茂) 코로나19감염증대책분과회장은 “팬데믹 상황에서 (올림픽을) 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면서 “(기어이 한다면) 무관중으로 개최하는 편이 좋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올림픽 개최를 강행하기로 했다. 관중 수용도 경기장 정원의 50%까지 최대 1만명 허용으로 밀어붙이기로 했지만, 7월 들어 코로나19 신규 환자가 급증하면서 일부 경기는 무관중을 검토하고 있다. 관중들은 경기장에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박수만 칠 수 있다. 선수들은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하고, 경기장과 선수촌 등 지정된 장소 외에는 갈 수 없다. 88서울올림픽 때부터 선수들에게 배포하던 콘돔도 귀국 시 기념품으로 공항에서 주기로 했다. 지구촌 축제가 아니라 수용소 체육대회라는 한탄이 나올 만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일본 정부는 왜 올림픽을 강행하는 것일까. 우선은 돈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다. 작년에 개최 예정이던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로 한 차례 연기되면서 시설 유지비 등 약 3조4000억원의 비용이 추가돼 총비용 17조원이라는 역대 가장 비싼 올림픽이 되었다. 입장권 수입은 5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중계료와 기업협찬 등으로 적자 폭을 가능한 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취소 시 그동안 올림픽을 바라보며 준비해온 각국 선수들과 세계 스포츠계의 좌절과 비난도 고려했을 것이다.

일본 집권 세력으로서는 올림픽 이후 중의원 해산과 총선이 예정돼 있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을 것이라는 관측도 유력하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미숙한 대처 등으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의 지지율은 계속 추락 중이다. 2020년 9월 집권 당시에는 지지율이 74%에 달했지만, 지금은 절반 수준인 37%까지 떨어졌다(요미우리신문). 스가 정권으로서는 뭔가 모험을 하지 않고서는 판세를 뒤집기 어렵고 그 모험으로 올림픽 강행을 선택했다는 지적이다. 어려운 여건일수록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진다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이 이번 올림픽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런 단기적인 정치·경제적 고려 때문만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좀 더 깊고 넓은 명분은, 올림픽 유치 당시를 돌아보면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일본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2020년 올림픽을 유치하기로 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올림픽보다 지진 복구에 전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는 올림픽 개최가 국민들의 좌절감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지진 복구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여기에는 1964년 도쿄올림픽 성공 신화가 크게 작용했다.

일본은 제2차대전 패전 후 1964년 도쿄올림픽으로 국제사회에 본격적으로 복귀했을 뿐 아니라 국가발전의 중요한 계기로 활용했다. 수도 도쿄를 상징하는 수도고속도로가 건설되고 고속철도 신칸센이 개통됐다. 올림픽을 통해 고도 경제성장의 밑바탕을 마련한 것이다. 일본이 패전 20년 만에 다시 우뚝 일어섰음을 세계에 과시하고 '전쟁을 일으킨 국가'라는 이미지마저 바꿔놓았다. 올림픽 메달 성적도 미국, 소련에 이어 3위를 차지해 일본 국민들의 자부심을 한껏 올렸다. 동양의 마녀라고 불린 일본 여자 배구팀의 결승전은 66.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소설가인 하시모토 오사무(橋本治)는 1998년에 발간된 「OUR TIMES(우리 시대) 20세기」에서 “(1964년) 도쿄올림픽은 전후 일본의 성인식으로, 이후 일본은 비로소 ‘제 몫’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1964년 올림픽으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10년 전후 일본은 어땠나.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으로 상징되는 장기 경제침체와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국가 위상이 추락하고 있음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하계올림픽을 두 번 개최함으로써 올림픽의 영광 재현이 절박했던 것이다.

일본 정부의 절실한 심정은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폐막식에서 극적으로 표현됐다. 차기 개최지인 도쿄를 소개하는 무대에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슈퍼마리오 분장을 하고 깜짝 등장한 것이다. 일본 게임 기업 닌텐도가 1981년에 제작한 슈퍼마리오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일본의 대표적인 캐릭터다. 이후 아베 총리의 인기는 상승세를 탔다. 폐막식 직후 아베 내각 지지율은 62%로, 2년 만에 60%를 넘어섰다(니혼게이자이신문). 1964년 도쿄올림픽의 신화를 재현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의지와 노력에 일본 국민들도 적극 호응하고 나선 것이다. 3년 전 필자가 한국언론 특파원으로 도쿄에서 올림픽 준비상황을 취재할 때만 해도 열기가 대단했다.

그러한 ‘영광의 재현’ 욕구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스가 내각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스가 총리는 지난달 9일 국회에서 올림픽으로 인한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묻는 야당 대표 질문에 뜬금없이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우승한 일본 여자 배구팀에 대한 추억을 늘어놓았다. 그의 동문서답에 장내에 실소가 터져 나왔지만, 그의 표정은 평소대로 진지하기만 했다. 무토 도시로(武藤敏郎) JOC 사무총장은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에서 학생 단체 관람의 별도 계획에 대해 “1964년 올림픽을 본 사람들이 (이를) 일생의 추억으로 갖고 있는 만큼 (2020년) 도쿄올림픽의 의의를 초·중학생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동일본 대지진의 상처를 극복했음을 세계에 과시하면서 영광의 재현을 꿈꾸었던 제2의 도쿄올림픽이 세계인의 걱정거리로 전락한 것은 오로지 코로나19 때문일까. 코로나19라는 전무후무한 악조건에서 치르는 올림픽인 만큼 오히려 역설적으로 일본의 국가 역량과 잠재력을 더욱 과시할 기회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한 일본 언론인의 지적에 적나라하게 압축돼 있는 것 같다. “이번 올림픽은 일본이 그동안 세계에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보여주지 못하고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주는 기회가 돼버린 것 같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의료 보건 강국으로 꼽혀왔지만 코로나19 대응에는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정치, 경제 역시 영광의 재현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위축된 모습이다. 일본의 정치는 야당이 대안세력으로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탓에 활력을 찾기 어렵다. 2009년 처음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던 일본 야당은 2년 뒤 닥친 동일본 대지진에서 여지없이 무능을 드러내는 바람에 정권을 잃고 사분오열됐다. 재집권한 자민당은 야당 분열로 장악한 국회 내 압도적 다수 의석에 안주한 탓인지 당내에 새로운 변화의 기운을 찾기 어렵다.

경제 역시 한때 아베노믹스의 경기 진흥책이 효과를 발휘하는가 싶었지만, 지금은 그 후유증과 그늘을 걱정해야 할 분위기다. 아베노믹스는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개혁할 기회를 외면한 채 시중에 돈만 풀어놓았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지금은 또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확장 재정을 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 진퇴양난이다. 코로나19 탓이 컸겠지만 2020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실질 성장률은 전년 대비 –4.6%를 기록했다.

일본이 올림픽을 앞두고 여러 가지 어려움과 취약점을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일본은 아시아 최고의 선진국이자 안정된 국가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일본 국민들은 위기가 닥치면 정부를 중심으로 잘 단합하고 절제 있는 행동을 보이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이런 일본의 역량이 힘을 발휘하리라 기대한다. 수교 이후 최악이라는 한·일관계에 숨통이 트이기 위해서도, 또 미·중 대결로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서도 일본이 이번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 만에 하나, 이번 올림픽이 그 반대 방향으로 끝난다면 그 후유증은 일본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긴장케 하는 것이다.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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