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팽팽한 ‘차별금지법’ 줄다리기···이번엔 국회 문턱 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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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 기자
입력 2021-06-2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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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첫 발의된 차별금지법, 번번이 국회 문턱 못 넘어

  • 민주당, 차별금지법 발의···여론은 찬성·반대 극명히 엇갈려

  • 다수 국가는 차별금지법 시행 중···UN, 한국에 도입 권고하기도

이 법은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하며, 차별을 예방하고 실질적 평등을 구현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함을 목적으로 함.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또 발의됐다. 차별금지법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국민 청원은 각각 10만명으로부터 동의를 얻으며 의견이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계와 학계 등 전문가 사이에서도 차별금지법 도입 여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려 이번에는 차별금지법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회에 또 등장한 '차별금지법' 이번엔 통과될까
23일 국회에 따르면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범여권 의원 23명이 ‘평등에 관한 법률안’(차별금지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골자는 고용, 재화 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공급 서비스 등을 이용할 때 성별, 장애, 나이, 종교, 성적지향 등 어떠한 사유로도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 법안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모든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 의원은 “모든 영역에 있어서 어떠한 사유로도 차별을 금지 및 예방하고 그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해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이 다시 주목받은 이유는 최근 올라온 한 국민청원 때문이다. 지난달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는 동아제약 면접에서 성차별 피해자로 알려진 김모씨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 여성인 김씨는 동아제약 면접에서 군대에 관해 부적절한 질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청원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지 15년이 지났으나 아직 차별금지법이 없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때마다 국회는 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평범’을 빼앗아간 국회는 직무유기를 멈추고 이제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청원은 10만명에게 동의를 받아 법제사법위원회가 심사 중이다.
 

[그래픽=우한재 기자, whj@ajunews.com]
 

이미 차별금지법을 마련한 국가들은 한국의 차별금지법 부재를 지적했다. 캐나다가 1985년 제정한 평등법은 최초의 차별금지법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유럽연합(EU)은 2000년부터 인종‧성별‧종교‧장애‧연령 등을 빌미로 차별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국제법으로 제정했다. 미국도 인종과 성별을 비롯해 정치적 견해, 연령 등 주마다 다른 차별금지법을 시행 중이다. 이 외 뉴질랜드, 남아공, 아르헨티나, 네팔 등 다수의 나라가 차별금지법을 시행 중이다.

2012년과 2017년 UN 인권이사회는 국가별 정례 인권검토(UPR)를 통해 한국에 두 차례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2007년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나왔다. 하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기지 못했다. 이번 21대 국회에도 지난해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이 계류돼 있다. 당시 차별금지법 발의를 주도했던 정의당은 SNS 등을 통한 반대 운동으로 곤욕을 겪기도 했다.
 
차별금지법 두고 여전히 팽팽한 찬반 줄다리기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촉구 제9차 목요행동 '지금 당장'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들이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차별금지법에 대한 찬반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차별 부분도 폭넓게 다루자는 원칙론에 공감하지만, 입법 단계에 이르기에는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차별에 대해 보수 진영도 확장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미국에선 동성애와 동성혼이 구분되는 사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혼재돼 있듯, 보수 진영 내에서 이 담론이 기독교 관점이 있는 분도 있고 (해서) 혼재돼 있다”고 전했다.

지난 18일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청원이 등장했다. 본인을 30대 초반에 간경화, 간암 등을 겪었다고 소개한 길모씨는 “평등법이 약자들을 위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약자를 도와주는 법이 아니다.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도덕을 파괴하고, 신앙, 양심, 학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건강한 가정과 다음 세대를 망가뜨리는 평등법을 제정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해당 청원 역시 10만명 동의를 받아 법사위가 심사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실시한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는 응답자 10명 중 9명이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인권위는 "차별금지법 논의가 본격화되지 못한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더욱 심화된 혐오와 차별이 가시화됐다. 또한 고(故) 변희수 하사의 죽음까지 목도하는 등 평등법의 부재로 인해 안타까운 고통의 시간이 지속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별금지법 제정은 우리 헌법정신에 기초하여 모든 생활의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하며, 차별을 예방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라는 간절함으로 15년을 기다려 온 국민의 준엄한 요청”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대선 출마를 선언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은 지난 16일 본인의 SNS를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 국회 청원이 10만명을 돌파했다. 기쁜 소식이다. 진정한 선진강국으로 가는 길에 '차별하는 사회'는 양립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차별금지법 도입을 두고 의견이 팽팽하다. 전국 대학의 1912명 교수가 모인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교수 연합’은 지난 16일 “모든 사람의 인권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잘못된 행동조차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폐해를 주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동성애 행위 자체는 존중받을 수 없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힐난했다. 또한 “종교기관 예외 조항조차 없애겠다고 하는 것은 노골적으로 신앙과 양심의 자유조차 침해하겠다는 주장이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비롯한 법‧인권 전공 교수 248명은 “차별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인권 문제다.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차별금지 사유와 차별금지 영역을 넘어 포괄적으로 차별을 금지하는 기본 법제가 필요하다”며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에 차별 행위의 구체적인 유형, 차별 시정을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차별 시정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조치 등을 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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