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전기차 충전요금을 왜 우리가?" 전기도둑과의 전쟁 나선 아파트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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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기자
입력 2021-06-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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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차 보급 늘자 공용전기로 무단충전하는 '전기도둑' 기승

  • 아파트 입주민 커뮤니티엔 얌체충전족 고발글과 도전 감별법 올라와

  • 충전 갈등의 근본 원인은 충전 인프라 부족 탓이라는 지적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24만명이 가입한 전기차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최근 아파트 단지 주차장 전기 콘센트에 파란색 선의 플러그가 꽂혀있는 모습을 봤다. 같은 아파트 입주민이 자신의 전기차를 비상용 충전기로 충전하고 있던 것이다. 비상용 충전기는 충전소가 없어 위급할 때만 쓰는 용도로, 가정용 220V가 설치된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비상 상황이 아닌데도 아파트 내 공용전기로 충전하는 경우, 전기차 차주들은 이를 도전(盜電·전기도둑)으로 간주한다. 회원이 해당 현장을 사진으로 찍은 뒤 커뮤니티에 올리자 명백한 절도 혐의라며 112에 신고해야 한다는 답변이 달렸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전기차 보급 대수가 13만대를 넘어서면서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느는 가운데 무단으로 공용 전기를 끌어다 쓰는 도전 행위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광주에서는 한 20대 남성이 아파트 단지 상가 주차장에서 자신의 전기차를 충전하다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사진=전기차 동호회 온라인 커뮤니티]
 

아파트 입주민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도 도전 행위를 지적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종시의 한 아파트 입주민은 주차장에서 무단 충전 중인 차량 사진을 입주민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 올린 뒤 "개인에게 전기세가 과금되는 장치가 아닌 비상용 충전기로 공용전기를 이용하는 행위는 다른 입주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왜 개인이 충전한 전기차 요금을 입주민이 공동으로 부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 글을 본 다른 입주자도 "최근 관리비에 공동 전기료가 많이 나오는 이유가 도전 행위를 일삼는 이들 때문이었느냐"며 비판에 가세했다.

전기차 충전기는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용 충전기, 차주가 휴대하며 전기차 전용 콘센트에서 사용하는 이동형 충전기, 배터리 방전 시 응급용으로 220V 전압을 사용하는 비상용 충전기가 있다. 이 중 이동형 충전기는 전자태그(RFID)가 부착돼 있어 차량 소유주를 인식해 일반 콘센트에서도 개인에게 과금되는 형태로 충전할 수 있다. 문제는 비상용 충전기다. 이는 전자태그 인증 없이도 공용 전기를 끌어다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연기관 차에 비유하면 기름을 훔치는 이른바 '도유 행위'와 마찬가지다.

특히 공용전기를 통한 전기차 충전은 공용 전기요금 증가로 이어져 도전 행위에 대한 입주민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입주민들 사이에 도전 감별법도 공유되고 있다. 인천 송도에 거주 중인 한 입주민은 전기차 이동형 충전기 안내문이 없는 곳에서 충전 중인 차량, 비상용 충전기로 충전하는 차량 등을 도전 행위라고 설명하는 글을 모두가 볼 수 있는 카페 게시판에 올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전기차 충전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자 일각에선 전기차 인프라 확충 속도가 더디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차 100대당 개인·공용 충전기 수는 지난 2018년 55.6기였으나 2019년 51.2기, 지난해 8월에는 50.1기까지 감소했다. 주요 국가들과 비교하면 차이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자동차연구원이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전기차 100대당 충전기 수는 미국 185.3기, 영국 318.5기, 독일 230.4기, 일본 153.1기 등으로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았다.

전기차 충전을 둘러싼 주민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동차연구원은 전기차 수요에 맞춰 충전기를 신속하게 보급할 수 있는 준비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작정 충전기 설비를 늘릴 경우 아파트 등 공용주택 내에 주차 공간이 부족해지고 전기차 충전 수요가 계속해서 높아질지도 불확실하다는 이유에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정부는 내년부터 새 아파트를 지을 때 전체 주차대수의 5% 이상 규모로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요 국가들은 충전기 수를 규정하기보다 추후 충전기를 설치하기 위한 기초 설비 구축을 의무화하는 추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2가구용 주택에 1개 이상의 배선관(전기차 충전기에 연결할 전선이 지나가는 길) 설치를 의무화하고, 다가구 주택의 경우 주차면의 10% 이상에 충전기 설치가 가능한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국가는 10면 이상의 주차장에 충전 케이블용 배선관 인프라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호 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충전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전력 설비 구축부터 의무화한 뒤 주민 간 합의와 보급 상황에 따라 충전기 수를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에 따르면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로 전기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전기차를 충전하는 행위는 도전에 해당해 절도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형법 제346조는 '관리할 수 있는 동력'을 훔치는 것도 절도죄가 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전기 역시 관리할 수 있는 동력이나 관리가 가능한 물건(에너지)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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