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미디어 공공성을 지킬 새로운 기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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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
입력 2021-06-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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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태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

[김경태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 사진=한국방송협회 제공]

방송통신발전기금(이하 방발기금)을 아시는지요? 올해의 경우 무려 1조4000억원이 넘습니다. 목적은 대한민국의 방송과 통신의 진흥입니다. 이를 위해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들과 통신사들이 돈을 모아 정부에 관리를 맡긴 공적기금입니다.

이 기금과 관련한 간단한 질문 두 개를 드리겠습니다. 이 돈에서 우리나라 지역방송을 지원하는 금액과 개도국의 방송통신을 지원하는 금액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많을까요? 정답은 개도국입니다. 대한민국 50개 지역‧중소 방송의 지원에 책정된 예산은 올해 고작 40억원입니다. 반면 개발도상국에는 그 3배가 넘는 130억원을 지원합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정보통신, 방송의 혁신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기금에서 940억원을 책정했습니다. 그렇다면 260만 등록 장애인들을 위한 방송제작에 지원하는 돈은 얼마일까요? 61억원입니다.

대한민국의 방송과 통신의 진흥은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방송과 통신 복지의 증진을 의미합니다. 지역과 소득수준, 장애의 유무 등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필수적인 방송과 통신 서비스를 보편적으로(universal) 누릴 수 있도록 만든 기금이 방발기금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쓰임새가 본래 취지와 다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이 기금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대략 8대2로 나눠서 운영·관리하는 까닭입니다.

이른바 요즘 유행한다는 ‘투블록 가르마’도 아니고 왜 8대2로 나눴는지는 그 기준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방발기금의 용도 18개가 규정된 법에는 오히려 과기정통부의 고유 업무인 통신 분야는 2개뿐이고, 나머지 16개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적합해 보이는 방송 내지는 방송통신 분야입니다. 즉, 비율로 보면 2대8이 맞는 것 같은데 이게 뒤집혀 8대2로 가르마를 타게 된 것은 두 부처가 조직과 업무에 따른 ‘자의적 나누기’의 결과로 보입니다. 당연히 지역방송과 장애인 방송 같은 국민들의 복지는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방발기금은 이 같은 자의적 운영 말고도 심각한 문제점이 또 있습니다. 국민들의 방송과 통신 복지 증진에 책임감을 갖고 역할을 분담해야 하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인터넷 포털이 방발기금에 한 푼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들도 마찬가집니다. 거대 복수 채널 사용 사업자(MPP)인 CJ ENM도 방송광고 점유율이 KBS를 넘어선 지 오래됐지만, 방발기금에는 돈을 내지 않습니다. 모두들 방송 통신 이용자인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가장 많은 돈을 챙겨 가면서, 그 국민들의 복지 증진을 위한 기금에는 단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현재 국회에는 방발기금과 관련한 개정안이 24건이나 올라와 있습니다. 기금 징수의 대상과 기준이 10건, 용도와 운용에 관한 개정안이 11건에 이릅니다. 하지만 24건이라는 숫자가 보여주고 있듯, 땜질식 개정이 아니라 기금 관련 법률안 전체를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방발기금 자체가 2000년에 시작된 것으로, 그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방송·통신 매체 환경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방송이 독점이어서 특혜가 되던 시절에 적용됐던 이른바 ‘독점 지대의 공적환수’라는 논리를 이제 더 이상 방발기금에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방송과 통신이 진흥될수록 더 많은 금전적 이득을 보는 인터넷 포털과 OTT, 거대 MPP 등이 수혜자 원칙에 따라, 더 많은 이득을 볼수록 더 많이 부담하는 비례의 원칙에 따라 방발기금을 부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민의 방송·통신 복지가 제대로 지켜지고 충족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대립적인 관점들이 적극적으로 표현되고 급속히 확산되는 디지털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더 이상 중립성, 불편부당성, 객관성의 고수를 금과옥조로 통용하는 매스미디어 시대가 아닙니다. 게다가 가짜뉴스, 거짓 정보가 횡행하는 시대에 무비판적 중계방송을 하는 것은 공영성 방송의 자세가 아닙니다. 따라서 첨예하게 부딪히는 사회의 주요 이슈들에 대해 시대정신과 관점을 투영해 내는 적극적 공영성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방송이 담당해야 할 공영성의 개념은 시대 변화 속에서 바뀌어가고, 그 무게는 더욱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책무를 제대로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방발기금을 넘어선 새로운 재원(財源)이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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