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김우중과 베트남 그리고 코로나19 백신

하노이(베트남)=김태언 특파원입력 : 2021-06-10 10:00

김우중 회장이 대우그룹이 베트남 진출을 본격화하던 1990년대 당시 도무어이 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대우세계경영연구회 제공]


"당신의 나라(베트남)에 한국을 건설해 주겠다."

대우그룹 창업자인 고(故) 김우중 회장의 말이다. 90년대 초반, 그는 아직 수교조차도 맺지 않았던 베트남에 방문해 고위관료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배트남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베트남 경제관료들에게 투자유치의 희망을 심어주며, 동시에 한국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심었다.

김우중 회장이 작고한지 500여일이 넘었다. 한국에서는 샐러리맨의 신화, 세계경영의 시작, 분식회계의 오명 등 여전히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베트남에서 만큼은 그에 대한 평가는 한결같다.

베트남 최대기업이자 ‘베트남의 삼성’으로도 불리는 빈그룹의 창업주 팜녓브엉 회장은 최근 한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억만장자가 됐음에도 자가용 비행기를 왜 사지않느냐’는 질문에 김우중 회장의 일화를 설명하며 그처럼 검소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또 김우중 회장을 가장 존경하는 기업가 중 한명이라고도 덧붙였다. 빈그룹이 가장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빈패스트 사업장도 전신은 대우자동차 베트남 공장으로 김우중 회장이 베트남에 뿌린 씨앗 중 하나다.

베트남 정·제계는 김우중 회장의 사후에도 여전히 그에 대한 신망을 보내고 있다. 요즘 베트남 젊은세대는 한국의 지도자하면 단연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을 떠올리지만, 개혁개방이후 베트남을 이끌었던 이른바 ‘올드보이’들에게 김우중 회장은 고맙게 여기는 정도를 넘어 진정한 동반자이자 의인(義人)으로 치켜세울 정도다.

 

지난 5일 베트남 백신기금 출범식이 열린 가운데, 팜빈찐(오른쪽) 총리가 관계자들에게 공로패를 전달하고 있다.[사진=베트남통신사(TTXVN)]


최근 베트남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백신 기금을 두고 현지 교민사회에서 논란이 많다. 베트남의 코로나19 4차 지역확산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다 빠른 코로나 백신 도입을 위해 베트남 정부까지 나서 한국 등 외국기업들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탓이다.

우리 기업들은 상당히 불만이 많다. 가뜩이나 기업입장에서는 코로나19로 사업 환경이 좋지 않은데 직원 전수검사비에 이어 코로나 백신비용까지 부담하라는 것이 너무 부당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베트남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직원들을 고용해 내수를 창출하고 또 세금까지 꼬박꼬박 내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입장에서 충분히 화날만한 상황이다.

사실 그간 베트남이 해도 너무한 구석이 많았다. 현지에서 생활하다보면 각 기업들의 무수한 불만사항을 듣게 된다. 세금 외에도 각종 위생·소방관련 비용, 명절 또는 각종 기념일 등으로 방문해 기업들에게 요청하는 비용, 행정처리 지연에 따른 비용 등 사례들은 수도 없이 많다. 심지어 투자유치 시 약속했던 공단 내 폐수처리장마저도 공단시행사가 아닌 입주기업에게 부담시켜 한 한국기업은 지난해 총리실과의 대화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베트남한인연합회가 나서 현지 교민들을 대상으로 코로나 백신기금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중 눈에 띠는 질문은 3·4번 항목이다. 먼저 3번 항목인 ‘베트남에서 본인의 코로나 비용을 내고 백신을 접종하겠나’는 질문에 중간집계 결과, 찬성 비율은 82.9%를 나타냈다. 반면 4번 항목인 ‘본인과 베트남인 1인비용을 포함해 2인비용을 내고 백신을 접종하겠나’는 질문에는 찬성 51.7%와 반대 48.7로 비등한 상황이다. 백신 1회분 추가가 가계경제에 크게 부담이 되지 않겠지만, 일반 교민의 입장에서도 그간 베트남에 생활하면서 얼마나 불만이 많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이곳이 같은 동남아인 필리핀이나 미얀마였다면 설문조사 결과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리핀의 경우 이미 국가가 방역관리에 실패해 지난해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고 미얀마는 작금의 사태를 비춰봤을 때 더 이상 말할 필요성이 없어진다. 아마도 현지 교민들은 설문조사를 차처하고서라도 사업철수냐 유지냐 생존을 논고 존폐기로에 섰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한국 국적의 교민들이지만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은 한국이 아니라 베트남이라는 점이다. 우리도 이곳에선 베트남의 일부분이다. 기업의 주재원이든 현지 자영업자든 모두 이곳에서 이익을 창출해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베트남이 백신을 빨리 구하지 못해 경제 상황이 악화된다면 주변국의 교민들과 같은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베트남 진출 이후 인도네시아, 라오스 등 공장 이전을 두고 고심을 거듭했던 한 제조기업의 법인장은 베트남의 부정부패는 나아지고 있는데 반해 다른 동남아 국가는 더했으면 더했지 베트남 보다 절대 낫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베트남 이외에 딱히 다른 대체지역은 없는 것 같다며 결국 당분간 베트남에 있기로 했다고 전했다. 여전히 제2의 제조업 기지로 베트남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한 일면이다.

김우중 회장은 평소 수행비서에게 '100원을 벌면 30원을 베트남에 써야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초장기 기업의 사회적책임이나 노조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 그는 상대적으로 베트남 내 노조에 관대했고 사회 환원을 중시했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후 하노이 중심부에 있는 대우호텔이 매각됐을때도 베트남인들이 이름만큼은 바꿔주지 말라는 요청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기도 하다.

베트남 당국의 봉쇄가 이어지면서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다. 혹자는 그동안 수많은 편견과 불신이 켜켜이 쌓여왔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이참에 고압적인 베트남 정부의 체질을 개선해야한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김우중 회장이 도이머이 초창기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베트남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그럼에도 우리는 베트남인들이 바라보는 부자국가의 국민이며, 현지에서는 구매력이 비교가 안되는 수준에 살고 있다.

내년이면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세월의 부침 속에 올드보이들은 사라졌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 양국의 관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바닥난 세수로 베트남이 궁핍한 시기에 우리가 먼저 나서서 베트남을 돕는다면, 차후에라도 그 고마움을 상기하지는 않을까. 언젠가는 그 무뚝뚝한 베트남 공무원들도 우리를 향해 웃어주는 날을 기대해보면서 말이다.


 

베트남어판으로 출간된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사진=베트남넷(VietnamNet) 온라인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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