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 월스트리트와 중국의 '밀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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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선 중국본부 팀장
입력 2021-06-0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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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가 공룡 "중국과 사랑에 빠졌다"

  • '메기효과' 노리는 中··· 글로벌 금융회사 '러브콜'

  • 은퇴후 걱정에···'투자'에 눈 뜬 14억 중국인

  • 美中 갈등 속 정치적 리스크는 우려 대목

미중 관계[사진=로이터]


"월가 공룡들이 중국의 '부(Wealth)'에 이처럼 가까이 다가간 적은 없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월스트리트가 중국과 새로운 사랑에 빠졌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이 표현했다. 지정학적 갈등과 경제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나날이 가속화하고 있지만 글로벌 금융회사들에게 중국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중국 금융시장 개방이 속도를 내며 ‘더 그레이트 월스트리트’로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 그레이트 월스트리트는 만리장성(더 그레이트월)과 월스트리트 합성어로, 고속 질주하는 중국금융시장을 표현한 것이다.

◆월가 공룡 "중국과 사랑에 빠졌다"

[아주경제 DB]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회)로부터 중국 최대 국유은행인 공상은행과 추진 중인 합작 자산운용사 설립안에 대해 인가를 받았다. 합작사 지분은 골드만삭스와 공상은행이 각각 51%, 49%씩 나눠 갖기로 했다.

은보감회는 지난달 초에도 또 다른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중국 2대 국유은행인 건설은행,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합작 자산운용사 설립안을 인가했다. 

골드만삭스나 블랙록 모두 중국계 대형 국유은행과 손잡은 것은 이들이 수십년간 쌓아온 현지 영업망을 적극 활용해 중국 부자들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물론 세계 최대 자산 규모를 가진 공상은행은 소매고객 수만 6억8000만명으로, 미국 인구의 두 배에 달한다.

사실 글로벌 투자 ‘큰손’들의 중국 금융시장 진출은 2019년 말부터 이어졌다. 그해 12월 유럽 최대 자산운용사 아문디가 현지 중국은행과 합작해 설립한 합작 자산운용사는 은보감회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중국 당국이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과반 이상 지분 보유를 허용한 최초 사례였다. 아문디는 현재 20여종 금융상품을 출시해 중국에서만 수십억 달러 자산을 굴리고 있다.

합작 방식 외에 직접 현지 자산운용사에 지분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JP모건이 지난 3월 중국 초상은행 자산운용사 지분 10%를 4억1000만 달러(약 4544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최근 중국인의 펀드 투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빠르게 커지는 중국 뮤추얼펀드(공모펀드) 시장도 글로벌 투자 큰손이 군침을 흘리는 분야다. 블랙록이 지난해 8월 외국계로는 최초로 100% 지분 소유의 공모펀드 운용사 설립을 허가받은 후, 뉴버거만·피델리티·얼라이언스번스틴· 슈로더 등 외국계 투자회사들의 공모펀드 라이선스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모건스탠리도 최근 중국 현지 파트너사인 화신증권과 합작 설립한  ‘모건스탠리화신 펀드회사' 지분율을 기존의 49%에서 85%까지 늘리며 대주주가 됐다.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중국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에도 이미 외국계 투자기업들의 손길이 뻗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인공지능(AI) 로봇이 사람 대신 투자 컨설팅을 해주는 것으로, 선진국에선 이미 보편화됐다.

미국 자산운용사 뱅가드가 지난해 4월 중국 알리바바 산하 금융회사인 앤트그룹과 합작해 로보어드바이저 플랫폼 '방니터우(幫你投)' 서비스를 출시한 게 대표적이다. 이용자 수는 이미 100만명을 돌파했으며, 운용자산도 2월 말 기준 69억 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메기효과' 노리는 中··· 글로벌 금융회사 '러브콜'

중국 금융시장 개방에도 속도가 붙으며 더 많은 월가 공룡을 유혹하고 있다. 미·중 갈등 속에 중국 지도부는 지난해부터 45조 달러의 자국 금융시장을 본격적으로 개방해 더 많은 미국·유럽 기업들이 중국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월 외국인이 100% 지분을 가진 선물·생명보험회사 설립을 허용했다. 이어 4월부터는 외국인의 자산운용사, 증권사 지분 제한도 완전히 철폐했다.

여기엔 선진 금융 노하우를 배워 자국의 낙후된 금융 인프라를 개선하려는 중국 지도부의 의도가 깔려 있다. 특히 최근 중국도 고령화사회가 도래하면서 연기금 고갈 우려가 커져 투자 수익성을 높여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아문디 중화권 책임자 중샤오펑은 FT를 통해 “중국이 외국계 자산운용사와 은행을 풍부한 경험, 선진 프로세스,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춘 새로운 시장 플레이어로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과의 경쟁으로 자국 금융회사의 체질을 강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하려는 일종의 메기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은퇴 후 걱정에··· '투자'에 눈 뜬 14억 중국인

오늘날 중국 경제의 고속 발전 속에서 자산이 빠르게 불어난 중국인들이 '투자'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중국 자산운용 시장은 성장 궤도에 올라탔다. 이미 정체기에 접어든 미국·유럽 자산운용 시장과 비교된다.  

중국 광다은행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중국 자산운용 시장은 122조 위안(약 2경1180조원)에 달한다. 이 규모는 2025년까지 210조 위안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에서 급증하는 억만장자가 월가 공룡들이 노리는 주요 고객이다. 현재 중국 억만장자 수는 이미 미국을 뛰어넘었다. 중국 부자연구소인 후룬연구소가 올초 발표한 올해 글로벌 부호 명단에 따르면 중국 내 억만장자는 1058명으로, 미국(696명)을 압도했다.

최근 들어 중국인들의 투자성향이 공격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인 저축의 대부분은 예금 아니면 부동산 투자에 집중됐다. 골드만삭스는 2020년 말 기준으로 중국 가계자산의 60%가 부동산에 매여 있고, 24%는 현금과 예금 형태로 있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최근 공모펀드 투자 열기에서 보여지듯, 중국인의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중국인 투자자산이 2030년에는 70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며, 60%가 증권·펀드 등 비예금 상품에서 운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엔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대두되며 은퇴 이후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수전 찬 블랙록 아태지역 책임자는 FT를 통해 "중국 내 은퇴 위기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심각하다"며 중국인들이 미래를 위해 저축해야 한다는 투자심리를 갖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중 갈등 속 정치적 리스크는 우려 대목

하지만 중국 금융시장 진출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다. 각종 정치적 리스크가 산재해 있는 게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국 내 급변하는 정치 규제환경이 대표적이다. 알리바바그룹의 금융회사 앤트그룹이 지난해 11월 세계 최대 규모가 될 뻔했던 기업공개(IPO)를 닷새 앞두고 갑작스레 중단한 것도 중국 공산당이 규제를 이유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중국 토종 기업도 이러한데, 외국계 기업이 불안에 떠는 것도 당연하다.

언스트앤영 자산운용 담당 파트너 리처드 그레이는 FT를 통해 "중국 금융시장 진출의 가장 큰 위험은 정치적 환경 변화”라고 꼽았다. 그는 "만약 규제를 어기면 수익을 본국으로 송금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거나, '당신이 만든 뭔가를 강제로 팔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레고리 워런 미국 모닝스타 애널리스트도 "중국은 무시하기에는 너무 큰 시장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뭐가 혹시라도 잘못될까'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정부 입장과 규칙이 하룻밤 사이에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중 갈등 고조 속에 양국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미·중은 코로나19에서부터 홍콩·신장위구르 인권, 대만 문제까지 전례 없는 지정학적 갈등을 빚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예 중국을 ‘미국의 주요 경쟁자’로 규정했다.

미국 정가에서도 월가의 중국 진출을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도 최근 “21세기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를 놓고 미·중이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월가가 그 어느 때보다 중국과 긴밀히 통합되고 있는 건 미국의 가장 큰 취약점"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해 포린폴리시에 "골드만삭스를 위해 중국 금융시장을 개방하는 게 왜 미·중 무역협상의 우선순위여야 하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미·중 디커플링 위기 속에서 굳이 중국에 월가 공룡들이 진출할 필요가 있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 미·중 무역협상에서 미국기업의 중국 접근성 확대에 초점을 맞췄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노동자 중심의 무역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월가 공룡들의 중국시장 진출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중국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구미 기업이 미·중 갈등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엄청난 유연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며 "오늘날 정치 환경 속에서 (과거와 달리) 그들이 미국의 대중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게 제약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달 27일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중국과의 관계 질문을 받은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미·중 관계를 “믿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분명히 우리가 협력하는 분야도, 대립하는 분야도 있다”며 "적절한 방법으로 그것을 찾아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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