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지난 지금 봐도 앞서 있는 이불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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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기자
입력 2021-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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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부터 10여년간 발표된 ‘소프트 조각’과 ‘퍼포먼스 기록’

  • 오는 5월 16일까지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

‘아토일렛 Ⅱ‘, 1990, 퍼포먼스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 이불(57)의 ‘시작’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 봐도 앞서 있었다. 20대의 이불은 작품과 퍼포먼스를 통해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 다양한 메시지를 던졌다. 억압된 틀을 깨부수는 예술의 위대함은 참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서울시립미술관(관장 백지숙)은 이불의 개인전 ‘이불-시작’을 오는 5월 16일까지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에서 개최한다. ‘이불-시작’은 작가가 초기 활동을 시작했던 1987년부터 10여 년간 집중적으로 발표했던 소프트 조각과 퍼포먼스 기록을 중심으로 한 전시다.

서울시립미술관 2020년 전시 의제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준비된 이번 전시에서는 이불 작가 초기 활동의 ‘퍼포먼스 기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초로 공개되는 드로잉 50여점과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재제작한 참여형 조각 1점, 퍼포먼스 비디오와 사진기록 70여점, 조각과 오브제 10여점이 소개된다.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이불의 작품은 신체의 안과 밖, 남성 중심의 모더니즘 유산, 한국의 근대사와 지배 이데올로기 등을 관통하며 포착된 상징을 모티프로 삼아, 아름다움·추함·삶·죽음·정신·몸·빛 그리고 어두움처러 충돌하는 의미를 동시에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시작’은 현재 작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전시실 1은 작가 이불의 ‘소프트 조각’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존의 조각 전통을 탈피하기 위해 소프트한 재료와 함께 인체의 재현 방식을 실험하던 대학교 재학 시절 작품 관련 기록과 드로잉이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1988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이고 2011년 다시 제작한 ‘무제(갈망)’ 연작과 ‘몬스터: 핑크’를 포함한 조각 3점은 사람의 살처럼 부드럽고 꿈틀거리는 불완전한 존재를 재현한다.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1990, 서울과 도쿄에서 12일간 퍼포먼스, ‘제2회 일·한 행위예술제‘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이어 수많은 ‘퍼포먼스 영상’이 동시에 상영되고 있는 전시실을 만날 수 있다. 거대하고 어두운 전시실을 영상들이 밝히고 있다. 이불은 1988년 ‘갈망’부터 1996년 ‘I Need You(모뉴먼트)’까지 총 33회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실연했다. 최소의 편집으로 보존된 12점의 영상 기록과 함께 시대적 풍경을 현재화하는 요소로 ‘바람’이 제시되는 이 전시실에서는 이불의 퍼포먼스가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부터 약 5년간 이불은 셀 수 없이 많은 전시와 행위 예술 축제에 참여하며 전시와 퍼포먼스를 병행한다.

그의 퍼포먼스에는 근대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방독면, 군화, 그리고 부채와 같은 소품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원피스를 입은 소녀, 하얀 소복에 긴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 색동 한복을 입은 황후와 같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는 맨몸으로 억압에 저항한다.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이불의 퍼포먼스는 일관되게 남성 중심의 미술사와 남성 중심 사회가 구축해온 권위·위계·경계를 흔들며, 이불만의 독특한 서사를 펼쳐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시실 3은 ‘기록’에 관한 전시다. 이 전시실에서는 사진 기록 60여점, 미공개 드로잉 50여점, 오브제와 조각 10여점 등 풍부한 작품과 자료를 통해 이불의 퍼포먼스를 더욱더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다. 30년 전에 있었던 사건과도 같은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이 빼곡하게 전시된 이 공간은 완결된 사건과 역사에 대한 ‘기록’으로서 퍼포먼스의 의미를 환기한다.

로비에 설치된 작품 ‘히드라’는 1996년 처음 소개된 풍선 모뉴먼트를 2021년 버전으로 재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부채춤 인형, 왕비, 여신, 게이샤, 무속인, 여자 레슬러 등 복합적인 여성 이미지로 분한 작가의 초상이 인쇄되어 있고, 구조물에서 사방으로 연결된 펌프를 관객이 직접 밟아 바람을 불어넣어 풍선을 일으켜 세우는 참여적 조각이다.

오는 4월 중에는 이불의 초기 작품을 연구하는 에세이, 사진기록과 자료 등이 수록된 450여 페이지의 모노그래프가 출간된다. 출판물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퍼포먼스 중심의 초기 작품을 통해 작가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3층에 위치한 아트서점 더레퍼런스에서 구입할 수 있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그동안 ‘풍문으로만’ 떠돌던 이불 작업의 모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초창기 이불 작가의 활동을 복기하면서 작가의 현재 작업은 물론이고 지나간 시대의 문화적 자원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이불의 작품은 여전히 앞서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고 감탄했다.
 

‘히드라‘, 1996/2021, 천 위에 사진 인화, 공기 펌프, 1000cm(높이)x약700cm(지름)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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