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했던 1980년대 뉴욕서 유머 잃지 않은 ‘릭 프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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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기자
입력 2021-03-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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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트 빌리지 대표작가의 국내 최초 전시…4월 24일까지

지하 전시장 전경. 가운데 있는 작품이 ‘S.O.S’(1985)다. [사진=리안갤러리 서울 제공]


“1980년대 미국 뉴욕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는 내가 겪었던 베트남 전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건물 대부분이 불타거나 비어있었죠.”

작가인 최동열 웨이브아이 대표가 본인이 경험한 이스트 빌리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곳은 실직과 높은 범죄율로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벼랑 끝에 선 작가들은 최악의 조건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쌓아 올렸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리안갤리러 서울에서 개막한 릭 프롤 개인전 ‘Cracked Window’는 작가의 1800년대 회화 작품 14점을 선보인다. 국내 갤러리에서 릭 프롤 개인전이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릭 프롤은 뉴욕 이스트 빌리지 미술계가 부상하던 1980년대에 장-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등과 활동했다. 그는 바스키아의 오랜 친구이자 마지막 어시스턴트로 영감을 주고 받으며 독창적인 스타일을 완성했다.

당시 이스트 빌리지에서 이들과 교류했던 최 대표는 “건물 주인이 임대료를 받을 수 없자, 보험료를 받으려고 집을 불태우는 경우가 있었다. 다른 지역의 임대료가 1000 달러였다면, 이스트 빌리지는 200 달러 혹은 공짜로 잘 수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릭 프롤은 자신의 환경을 작품에 그대로 녹여냈다. 불타는 집, 깨진 유리병 등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당시 어디 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창문틀과 깨진 유리창을 재료로 사용했다. 작품의 틀로 남아 있는 깨진 유리창은 40여 년 전의 암울했던 현실을 오롯이 전했다.

리안 갤러리 지하 벽면을 가득 채운 대규모 작품 ‘S.O.S’(1985)에도 냉혹한 현실이 반영됐다. 이 작품은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으로 있을 때 제작됐다. 러시아와 미국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냉전 시대다.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한 여인이 파괴된 브루클린 다리가 있는 허드슨 강 주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바퀴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묘사가 인상적이다.

전쟁 같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릭 프롤은 유머를 잃지 않는다. 만화 같은 그의 그림은 착한 마녀가 쓰는 마법 같다. 괴기스러운 얼굴, 칼, 잘린 손 등이 전혀 거북하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작가가 쓴 다채로운 색은 작품을 계속 바라보게 만들었다.

195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현재까지 고향에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1980년 뉴욕 쿠퍼 유니언(Cooper Union)을 졸업한 그는 1983년 뉴욕 피에조 일렉트릭 갤러리(Piezo Electric Gallery)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이스트 빌리지의 할 브롬 갤러리(Hal Bromm Gallery)(1985년) 개인전에서 대규모 대표 회화 작품들을 전시했다.

2018년과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그룹전 ‘이스트 빌리지 뉴욕: 취약하고 극단적인’에서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구겐하임미술관·시카고 현대미술관·래리 알드리치 현대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시는 4월 24일까지.
 

Rick Prol_Saint Agony_1983_Oil on canvas_167.5 x 137.5 cm [사진=리안갤러리 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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