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넌 도대체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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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편집국장
입력 2021-06-0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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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으로 上場 총알배송 나간 쿠팡맨, 그러나 몰랐던 것이 더 많은 친구

  • "한국 벤처 생태계의 쾌거" 찬사에 '국적 논란'까지 좌충우돌 이슈몰이

  • '흑자전환 희망' 쐈지만 '압도적인 1등'은 갈 길 멀어 투자 평가 박할 수도

  • 애매한 1등 지위로 도전하는 미국 상장…흥행 실패하면 부담 커질 듯

안녕, 쿠팡. 아니, 이젠 'Hi, Coupang'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축하해. 우리에게 친숙한 네가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미국 자본주의 전쟁터에 직접 간다니, 정말 대단해. 늦었지만 다시 한번 축하 축하. 토종기업같이 친숙한 네가 세계 뉴스시장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는 좀 놀랐어. 내 친구가 언제 저렇게 컸지? 너무 친숙해져 네가 있음을, 너라는 존재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 코로나19가 창궐해 전 세계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선 더욱더 말이야.

◆한국 유니콘 기업의 쾌거?

그런데 말이야, 솔직히 조금 섭섭하기도 해. 왜 우리 주식시장을 이용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거 말이야.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야. 너의 성공을 보면, 우리 그릇이 조금 초라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야. 큰물에서 놀아야 더 크겠지. 그냥 내 배만 아픈 거겠지.(ㅎㅎ)

우리 경제 총수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한마디 하셨네. "우리 유니콘 기업의 쾌거"라고. 매번 하는 얘기지만, '벤처·창업 생태계 강화'도 새삼 다짐했네. 부총리께선 요즘 빚 내서 코로나 호흡기 지원하는데 바쁘실 텐데, 다 네 공(功)이다. 시어머니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우리나라에서의 사업을 바탕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할 정도로 우리 벤처생태계가 커졌다"고 추켜세웠네.

근데, 권 장관의 발언은 다른 데로 튀어, 네가 조금 민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워낙 '뿌리'에 민감하잖아. 그래도 "미국 델라웨어 소재의 쿠팡 본사(쿠팡LLC)가 100% 지분을 가진 한국 지사의 미국 증시 상장"이라며 콕 집어서 얘기할 필요까진 없을 텐데. 아무래도 홍 부총리가 칭찬으로 선수 치니 주무 장관으로서 좀 머쓱해서 그랬던 건 아닐까?(ㅎㅎ)

너의 대주주는 알려진 대로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잖아. 손 회장의 다른 주머니 비전펀드 주요 주주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고. 족보 참 복잡하네. 그래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신고서(S-1)엔 '한국 기업'이라고 썼네. 그나마 고맙네. 한반도에 만들고 이곳에서 운영하는 한국 기업이지. 이미 지구 전체가 한 몸뚱이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돈의 뿌리 찾기가 무슨 대수라고.
 

 

그래도 이번 족보 털기로 다시 생각해 본 건 하나 있어. 내 친구 쿠팡은 분명히 이 나라에 2만5000여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연간 1조원의 인건비를 쓰지. 일자리를 만들어 사회에 이바지하는 기업이어서 그저 고마울 뿐이다. 한데, 인건비는 고용주로서 일을 시킨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잖아. 온전히 우리 국민에게 기여한다고 말하려면, 세금도 내야겠지. 개인적으론 내게 필요한 물건을 한나절 만에 갖다주니, 고맙긴 해. 그러나 이것만으론 뭔가 2% 부족하다고나 할까.

◆전 세계 대세라는 플랫폼 내 친구

개인적으로 플랫폼 기업을 그렇게 호의적으로만 보진 않아. 일상은 분명히 편해졌지. 대신 사람 사는 세상, 뭐 그런 건 좀 각박해진 것도 같아. 좁은 땅덩어리에 인구도 적은 나라에서 플랫폼 기업으로 전 세계를 호령한다는 얘기도 솔직히 조금은 미심쩍고. 플랫폼 기업 성공 사례가 언어와 인구수에서 절대 우위인 나라에서 나오는 이유가 그런 거겠지.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처럼 말이야.

아마존은 흑자를 내는 데 8년 걸렸다지? 넌 법인 설립 기준으로 8년째 영업 적자네. 기업은 어쨌든 이익을 내야 터 잡은 나라에서 세금도 내지? 지난해인가 법인세를 조금 냈다는 얘길 듣긴 했어. 그런데 너의 자회사가 이익을 내서 생긴 거지. 쿠팡 자체는 여전히 외부 자금 수혈 없인 돌아가지 못하는 회사네.
 

 


이번 미국 상장도 더 큰 시장에서 자금을 더 끌어오기 위해서지. 솔직히 우리 시장에선 네가 필요한 자금을 다 대주기 어렵잖아. 예리한 안목으로 네게 종잣돈을 댄 손 회장도 이젠 슬슬 결산서가 필요한 시점이고. 돈이라는 게 어디 묻어만 둔다고 불어나는 건가? 초기 투자에서 적당히 이익을 시현하고 새로운 항해에 나서야지. 사우디 국부펀드도 눈에 쌍심지 켜고 있을 텐데.

그런데 말이야. 네 롤모델이라는 아마존은 8년 만에 이익을 냈는데, 넌 왜 그런 거지? 우리나라의 높은 인구 밀도를 잘 활용해 당일 로켓배송이라는 좋은 아이디어를 냈고, 추진력도 대단한데 말이야. 알려진 바론 로켓배송 하느라 만든 물류시스템에 돈이 많이 들어갔다지? 정말 그것이 이유야? 플랫폼 기업은 무엇보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한다고 하던데.

근데, 시장점유율 차이가 아직 크구나. 아마존과 알리바바는 이미 본국에서 40%를 넘어 머지않아 절반 이상을 점유할 거라던데, 넌 15% 정도네. 아!, 애매하네. 국내 1위 점유율이긴 한데, 아직 15%라니. 규모의 경제라는 게 그런 거잖아. 가두리에 일정 규모가 만들어지면 뭘 팔아도 되는 뭐 그런 거. 넌 아직 그런 상황이 아닌가 보네. 내 눈엔 온통 쿠팡맨만 보이던데, 이 숫자는 좀 의외인걸.

물론 너의 성장세는 국내 경쟁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긴 해. 작년만 하더라도 "적자 보전받는 기업과는 경쟁할 생각이 없다"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최근(2월 25일) 조영제 롯데쇼핑 e커머스 사장을 잘랐네. 대그룹에선 이런 경질 인사가 많지는 않은데, 신 회장께서 화가 많이 나셨나 봐. 누군 로켓 타고 배달 다니는데 느려터진 성과에 배가 많이 아프셨나.

게다가 요즘 국내 e커머스 시장 전체가 말 그대로 핫하지. 아마존이 우리나라 공략을 본격화한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기존 유통회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맞아 보이네. 누구도 예상하지 못 한 코로나19로 디지털 전환을 서둘러야겠고, 치고 올라가는 쿠팡맨도 짜증 나는데, 아마존까지. 사실 이 문제는 쿠팡 네게도 꽤 신경 쓰일 대목 같긴 해.

◆내가 밀어준 힘으로 미국 돈 더 끌어와 동남아를 친다?

어쨌든 내가 열심히 쿠팡맨에게 도움을 청한 덕에 네가 미국에서 파티를 열 수 있다니 다행이야. 타이밍은 좋은 것 같아. 매출 증가율 91%.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온라인쇼핑 성장률이 19%(통계청) 정도인데, 경이로운 숫자군. 무엇보다 흑자 전환 가능성도 보이네. 2018년만 하더라도 연간 7억9000만 달러 마이너스였던 잉여현금흐름(FCF)이 2019년 -5억3000만 달러, 2020년엔 -1억8000만 달러로 줄었네. 흑자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역시 극적이야. 주식시장에서 돈을 대는 사람들은 가능성과 희망을 중요하게 보잖아.
 

 

 

그러니 네 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겠지. 33조원부터 60조원까지. 조금 박하게 보는 사람들은 네가 한국에서 1등이긴 한데,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처럼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네. 사실 플랫폼 회사들은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최고 가치로 평가하잖아. 투자자들도 결정하는 데 망설여지겠어. 똑똑한 내 친구 쿠팡은 다 계획이 있겠지? 아마도 그것이 네가 좀 더 빨리 세계 시장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어.

이미 시장의 절반을 잡아먹은 알리바바(중국)와 아마존(미국)의 본거지에선 승산이 별로 없겠지. 높은 경제성장률로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동남아 나라들은 네 입장에선 홈그라운드처럼 친숙하게 느껴질 테고. 여러 소식지를 보니, 동남아에서도 각국 토종 e커머스 회사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네. 방심은 금물이야.

실제로 너는 상장신고서(S-1)를 통해 10억 달러를 기업 운영(기술 관련 전략적 투자 포함)에 쓰고, 인수·합병(M&A) 등의 투자에는 쓰지 않겠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네. 조금 신경 쓰이네. 해외보다는 국내 정비를 먼저 하겠다는 얘긴지?

미국 시장에서 네 가치를 조금 박하게 평가하더라도 아쉬워할 건 없어. '우리 유니콘 기업의 쾌거'라든가, '우리 벤처 생태계가 커졌다'고 숟가락 얹기에만 바쁜 우리 행정가들보다는 낫지 않겠어? 참, 너는 국내에서 사업자금을 조달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나?(ㅎㅎ)

"쿠팡, 넌 도대체 누구니?"

곧 미국에서 열릴 쇼케이스를 기대해 볼게. 글로벌 스타 손정희 회장의 후광도 있고,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자본시장으로만 흐르는, 조금은 기형적인 경제 상황에서의 미국 상장은 네겐 좋은 찬스인 것만은 분명해. 근데, 미국 자본시장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지? 다시 고개를 든 긴축 발작 분위기는 걱정이지만, 동남아 시장 접수를 위한 너의 도전을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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