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거짓 해명에 무너진 사법부 신뢰

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입력 : 2021-02-21 15:09

[임병식 위원]


사회를 지탱하는데 신뢰는 얼마나 중요한 자산일까. 언론학자 파하드 만주는 <이기적 진실>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1954년, 사회학자 밴 필드는 이탈리아 남부에 도착했다. 북부는 잘 사는데 남부는 왜 가난한가? 아홉 달에 걸친 관찰 끝에 내놓은 결과는 ‘신뢰’였다. 그는 남부 주민들 사이에 만연한 불신을 가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신뢰도가 낮다보니 생산성은 낮았다. <뒷걸음질 치는 사회의 도덕 기반>은 그 결과물이다.

믿음이 강한 공동체는 결속력도 강하다. 그런 사회는 소통이 원활하고 정보 유통도 빠르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안다는 말이 있다. 믿고 왕래하다보니 속사정까지 훤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울력, 두레, 품앗이는 교환 노동이다.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노동 방식이다. 이번에 도와주면 다음에는 내가 도움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된다. 그렇지 않다면 헛걸음할 이유가 없다. 신뢰가 있는 공동체가 잘 사는 건 당연하다.

신뢰는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있다. 신뢰도가 높은 지역 주민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사망률이 낮았다. 불신 사회에선 긴장과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 반면 신뢰가 높으면 긍정적 에너지가 넘칠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은 신뢰를 ‘사회 자본’을 구성하는 핵심 자산으로 봤다. 공자도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언급하며, 믿음이 무너지면 개인이든 국가든 존립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거짓말 논란은 사법부 불신을 촉발했다. 두 차례 해명과 사과에도 불구하고 불신은 확산되는 양상이다. 김 대법원장은 19일, “부주의한 답변으로 실망과 걱정을 끼쳐 사과한다”고 했다. 임성근 부장판사 사의를 반려한 것에 대해선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 법과 규정을 고려한 판단이었다”고 했다. 또 “헌법적 사명을 다하겠다”는 말로 비등한 사퇴 압박을 일축했다.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어이없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김 대법원장 때문에 법원 신뢰가 추락했음에도 여전히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녹취록에서 김 대법원장은 “툭 까놓고 얘기하면 (여당이) 탄핵하자고 설치고 있는데 사표를 수리하면 무슨 이야기를 듣겠냐”고 했다. 사법부를 정치권력에 예속시켰다는 비난을 듣기에 충분한 발언이다. 그런데도 국회에는 거짓 해명했고, 이후 ‘불명확한 기억’, ‘부주의한 답변’이라며 머뭇거리고 있다.

대법원장도 거짓말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거짓말이 불가피했다면 대법원장으로서 솔직한 사과는 당연하다. 그런데 일반 범죄자들처럼 구차한 변명을 늘어놨다. 더구나 국회가 탄핵할 때까지 내버려둔 것은 직무유기다. 흠결이 컸다면 대법원에서 자체 처리하는 게 바람직했다. 민주당은 ‘헌법적 가치 위배’를 탄핵 근거로 삼았다. 그렇다면 대법원 자체적으로 파면도 가능했다. 그런데 입법부에 넘김으로써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고 있다.

일선 판사들이 탄핵을 순수하게 보지 않는 이유다. 최근 인사는 이런 시각에 힘을 싣는다.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한 재판부는 옮기고, 우호적이라고 여겨지는 재판부는 잔류시켰다는 말이 나온다. 인사를 통해 재판에 개입하려한다는 합리적 의심이다. 앞으로 해당 판사들이 정권에 우호적으로 판결할 가능성은 별개다. 의심받을 소지가 있는 인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신뢰는 훼손됐다.

그런데도 김 대법원장은 “사법개혁 완수”를 입에 올렸다. 낯익은 화법이다. 조국 사태 초기 조국은 “검찰개혁 완수”를 들먹이며 버텼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또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는 점에서 둘 다 같다. 후배 법관, 변호사회, 대한법학교수회, 서울대 77학번 동문, 사법연수원 15기 동기까지 사퇴를 요구하는 마당이다. 물론 사퇴는 핵심 쟁점이 아니다. 어쩌다 대법원장마저 거짓말 대열에 합류하게 됐는지 현실에 대한 직시다.

법정에선 위증죄를 무겁게 처벌한다. 거짓말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재판 결과에 악영향을 미친다. 거짓말로 누군가 인생이 바뀐다면 사법 신뢰는 무너진다. 재판부가 위증 사범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는 이유다. 최근 중학생 제자를 성폭행하고도 자신이 당했다며 위증한 여교사는 3년 실형과 함께 법정 구속됐다. 정경심씨와 이재용 부회장도 중형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모두 위증죄가 결정적이다.

우리 사법부 신뢰도는 바닥이다. 지난해 OECD 회원국 가운데 39위(27점)로 꼴찌다. 1위 덴마크‧노르웨이(83점)에는 한참 못 미친다. 회원국 평균(54점)에는 절반 수준이다. 김 대법관 거짓말과 법관 인사는 사법부 신뢰에 적지 않은 과제를 남겼다. 법정에서 위증과 판결 불복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조심스럽다. 대법원장 거짓말 논란은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아직도 녹취 행태를 문제 삼는다면 본질에서 한참 비켜났다.



 
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montl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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