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세유표-43] 백기완, “애국가 노랫말 반드시 바꿔야”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입력 : 2021-02-20 07:00
주체성 '실종', 퇴영성, 지나친 심정적 지조주의 꼬집어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영원한 청년 영원한 평화통일 우국지사 백기완 선생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대학교 병원 입원 도중 별세했다. 향년 89세.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오전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훨훨 그렇게 자유롭게 날아가셨으면 좋겠다"는 말로 고인을 보냈다.

평생 딱 한 번 날개짓을 하면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자유로우며, 모두가 더불어 살맛 나는 세상이 펼쳐진다는 북녘땅 장산곶매의 전설, 백기완 선생을 애도합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백기완 선생의 글에서 황석영 선생이 정리한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처럼 살다가셨다.

필자는 백기완 선생의 별세 소식을 들은 직후 넋이 반쯤 나간 사람이 되었다. 2박 3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인의 남기신 글월을 배독(拜讀)했다. 드디어 오늘 새벽2시 소름 돋도록 놀랍고 눈물 나도록 반가운 문장을 발견했다.

글은 글에서 나오고 책은 책에서 나온다. 지난 2년간 필자가 애국가를 톺아보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대목은 이렇다. 애국가의 선율과 작곡자에 관한 글들은 많으나 누적 십 수억의 입들이 근 백년 간 가장 많이 읊어왔던 운문인 애국가 노랫말에 대해선 선행연구는커녕 짤막한 비평조차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충과 갈증을 백기완 선생의 진귀한 문장이 가뭄에 장대비처럼 해갈시켜 주셨다.

『역사비평』 1994년 5월호에 백기완 선생이 게재한 ‘분단억압에 맞선 민중의 의지와 정서가 담겨야’를 발췌해 간략히 소개하겠다.

◆이런 애국가는 마땅히 없애버리고 다시 지어야 한다

오늘의 애국가는 우리 항일투쟁의 주체적 줄기가 제대로 어리어있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제를 쳐부수고 새로 세우고자 하는 새 나라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이른바 새 알짜가 예술적으로 빚어지고 있는 흔적이 한눈금도 없는 점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잘 아는 바 우리가 겪었던 일제 식민지시기는 총칼의 지배착취였으며, 이에 따라서 우리네 항쟁의 주체적 줄기는 마땅히 전투화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 단계였다. 그런데 이 애국가 노랫말에 따를 것이라면 우리가 전투적으로 싸워서 다시 세우고자 하는 새 나라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하느님이란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우리 겨레가 곧 하느님 또는 하늘이란 투로 그 뜻을 새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 하느님이란 관념적 실재이지 역사적 실재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어쩌구 하는 것은 반제항일의 역사적 주체를 관념적으로 텅 비게하는 관념 조작이요, 나아가 제국주의와 싸워 이겨온 우리 역사의 주체적 줄기를 왜곡 파괴하는 정서적 도착증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투의 노랫말로 된 <애국가>는 참된 애국가일 수가 없다.

더구나 <애국가> 노랫말의 온 흐름을 꼬치꼬치 뒤져보더라도 새로 세우고자하는 새 나라의 옹근 모습, 이를테면 제국주의와 대립되는 새 나라의 모습이 예술적으로 빚어진 대목이 한 군데도 없다. 이 점에서 오늘의 애국가는 역사진보 그것의 매듭인 역사적 실질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그 둘레를 심정적으로 맴돌면서 아울러 애국 그 자체를 추상화한다고 할 것이니 이는 마땅히 없애버리고 새롭게 꾸며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두 번째로 손꼽은 것은 그 노랫말의 퇴영성이다.

예를 들어 이 <애국가>는 첫판부터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것은 생성의 조화를 읊은 경지가 아니다. 도리어 생성의 세계를 퇴영적으로 강조한 말투로서 매우 패배주의적 심상을 드러낸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겠다.

일제 때 일본군가를 보면 “원수를 갚지 않고서는 돌아오질 않고, 일본한테 떨지 않는 나라는 쳐부수리라(군함행진곡)라고 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나라를 짓밟고 만주를 침공하면서 ‘일본 사나이들이여 대륙으로’ 이렇게 독전을 하고 있다.

이때 이에 대항할 참된 우리 겨레의 의기는 어떠했으며 또 그것을 어떻게 채질해야만 했을까.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 아니라 우리들의 피눈물이 마침내 동해바다를 발칵 일으키고 우리들의 양심은 백두산 그 드높은 뫼뿌리보다 더 높이 푸른 하늘을 나부껴~ 이런투로 달구어댔어야만 그것이 바로 그대 우리네 해방의 정서와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렇게 그렇게 되어 있지 아니하는 오늘의 <애국가> 노랫말은 반드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세 번째로 오늘의 <애국가>노랫말의 잘못은 지나치게 심정적 지조주의라고할까 절개 같은 것만을 돋보이게 하고 있는 점이다.

보기를 들어 애국가 3절엔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이렇게 되어 있다. 이것은 물론 자연이란 물상을 대입하여 노래를 꾸미는 우리네의 전통적 시심의 한가닥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한 나라를 지키고 다시 찾는 싸움이란 이제껏 있어왔던 봉건왕조의 지배체제를 국수주의적으로 지키자는 것은 아니다. 발전하는 역사와 함께 새롭게 일구는 창조의 세계가 아니면 안된다.

때문에 애국심을 강조하려 안다면 단순한 지조, 절개에 호소할 게 아니라 이제껏 조국을 지켜온 피눈물의 역사, 그 연면성의 조국에 대한 내일과 그것에 대한 희망과 정열이 지조와 절개에 앞서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다만 일편단심만 내세운 것은 무엇일까. 지긋한 우국주의자의 심정일망정 짓밟힌 나라를 다시 찾아 새롭게 세워야만 사람답게 살 수가 있는 사람들의 정서를 모은 것이 아니라고 손가락질할 수가 있겠다. 그러므로 이런 애국가는 마땅히 없애버리고 다시 지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새 애국가라면 무엇보다도 오늘의 분단억압과 싸우는 민중의 의지와 정서를 예술적으로 반영한 것이라야만 할 것이요, 나아가 싸워 이룩하고자 하는 세상, 침략과 억압이 없는 세상,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세상, 너는 못살고 나만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너도 일하고 나도 일을 해 모두 고루 잘사는 세상, 아니 우리 겨레만 질 사는 세상이 아니라 세계의 인류가 다 함께 맑고 밝게 같이 잘사는 세상을 어기차게 달구고 울러대는 위대한 비나리(희망)라야 않을까.

그렇다. 우리들은 이제 새로운 애국가, 우리만 즐겨 부르는 애국가, 진짜 해방으로서 통일을 일구어낼 노래를 하나 새로 만들어내야겠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역사진보를 이룩하는 문화적 예술의 표현일 것임을 믿고자 한다.(1)* 

◆◇◆◇참고문헌

(1)*조동걸, “특별기획:통일조국의 국가를 생각한다 ”분단억압에 맞선 민중의 의지와 정서가 담겨야“ 『역사비평』 1994.5, 56-72쪽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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