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교회, 기복 신앙 힘 잃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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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고문
입력 2021-02-0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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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④ 오강남 교수 <下>

 

 



내가 오 교수와 처음 만난 것은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하던 2001년경이다. 오 교수는 그때 현암사에서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펴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기독교에 대해 새로운 개안(開眼)을 하는 느낌을 받고 동아닷컴에 칼럼을 썼다. 이 칼럼을 읽은 오 교수가 서울에 왔을 때 신문사로 찾아와 처음 만나게 됐다. 그 뒤로 나는 종교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그에게 전화나 메일로 자문(諮問)을 했다. <예수는 없다>는 2001년 5월 초판이 나온 이래 개정판까지 42쇄를 찍은 장기 베스트셀러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보면 정통 기독교인 중에는 오 교수의 안티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기독교 계통의 어느 목사가 ‘하느님 보호해주심으로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고, 설사 감염되더라도 성령의 불로 깨끗이 낫게 되리라’고 장담했는데 그 사람도 코로나에 걸렸어요. 트럼프처럼요. 오 교수가 최근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교회’라는 글에서 ‘교회에 모여서 코로나를 낫게 해달라고 합심 기도를 하는 그 집회 때문에 코로나가 더 확산된다’고 지적했던데요. 하느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은 건가요? 
“전광훈 목사 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기도나 종교 행사와는 관계가 없고, 방역이 중요합니다. 마스크를 쓰느냐, 손을 잘 씻느냐, 혹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막을 수 있는 거지, 기도한다고 안 걸리는 게 아닙니다. 코로나가 ‘저주냐, 축복이냐’ 하는데 저주도 아니고, 축복도 아닙니다.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서 저주도 되고 축복도 된다고 봅니다. 코로나를 기도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모이면 점점 퍼지고 이건 저주가 돼요,
예수님은 "참된 예배는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고, 한두 사람이 모이는 곳에도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함께 모여 예배를 할 수 없다고 야단인데, 비대면으로 조용히 예배 드리고, 이런 기회에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 속의 얼나를 찾는다면 축복이겠지요. 내 속에서 우러나는 미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 혹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 얼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 글에서 코로나 이후 소위 기복(祈福)신앙, 유대교의 율법으로부터 내려온 인과응보 사상이 힘을 잃을 것 같다고 했는데요.
“하느님이 착한 사람에게 상 주고 나쁜 사람에게 벌 준다면 ‘코로나에 걸린 사람은 죄를 지어 그렇게 됐고, 걸리지 않은 사람은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그렇다’는 게 되죠. 코로나 걸린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것입니다. 세월호에서 죽은 순수한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인간이 겪는 행복과 불운을 신의 상벌(賞罰)로 가르는 것은 오늘날 먹히지 않는 사상입니다. 그걸로 사람을 협박하면 안됩니다. 달라이 라마가 <종교를 넘어>라는 책에서 “인간이 잘해서 나중에 극락 간다, 못해서 지옥에 떨어진다, 이런 식의 협박이나 회유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면 속에서 좋은 일을 하면 즐겁고 나쁜 일을 하면 스스로 고통이 되는 것을 감지하는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티베트불교의 성지 포탈라궁 앞에서. [사진=오강남 제공]


-오 교수가 한국에서 신흥종교가 번성한 데는 정감록 비결의 영향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데요. 이제는 국립공원이 된 계룡산에 옛날엔 불교, 기독교 계통 신흥종교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여기도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풍수설이 전해지고 비결서에 새 왕조의 터전으로 지목되면서 신흥종교들이 모여들었다는 거지요. 왜 기독교계 신흥종교들까지 십승지지를 찾아갔을까요.
“한국의 신흥종교는 대체적으로 혼합종교적(syncretic) 특색을 가집니다. 이것저것 필요하다면 다 받아들이지요. 예를 들어 절에 삼신각이 들어와 있다든가, 기독교에서 새벽 예배를 드린다든가 하는 것은 한국 샤머니즘적 요소가 들어온 것이라 봅니다. 정화수 떠놓고 장독대 앞에서 빌던 치성의 연장이죠.”
-한국 교회가 일제시대, 6·25 전쟁을 겪으면서 급성장했고, 서울에는 궁전같이 크고 화려한 교회들도 많은데요.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한국 교회는 복 받고 부자 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머리 둘 곳이 있는데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으리으리한 건물을 짓고 거기서 예수님을 찾는 것은 모순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한국 기독교 상당수는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황금을 섬기는 맘모니즘(mammonism)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 하면 대형교회를 떠올리기가 쉬운데, 내가 아는 몇몇 작은 교회의 목사님들은 참 존경스러워요. 교회를 나오는 사람이든 안 나오는 사람이든 아이들을 통학시켜주고, 어려움을 도와주지요. 상당수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제왕과 같죠. 천국에 가도 그보다 좋은 대접을 받긴 힘들 겁니다.”
-개신교 신자들이 다른 종교에 대해 대체로 배타적이죠. 왕왕 불상 훼손 행위를 저질러 사회적 물의를 빚는데요. 다석 사상은 기독교 유교 불교에다 노장 사상까지 들어가 있으니 정통 기독교 신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통 기독교인들이 거부감을 갖는 것은 사실이죠. 종교학을 창시했던 독일인 막스 뮐러가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한 말을 들려주고 싶군요. 여러 종교를 뒤섞고 혼합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내 종교라도 어떤 위치에 있는 건지, 어떤 가르침을 배우려고 하는 것인지, 서로 비교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스 큉은 '종교 간 대화가 없으면 종교 간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 간 평화가 없으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화를 해서 네 종교가 어떤 것인가, 내 종교가 어떤 것인가 알아야 합니다. 요즘은 타종교라는 말도 안 쓰고 이웃 종교라고 합니다. 이웃 종교가 서로 상생하고 도와주는 길벗으로서 살아가면 서로 좋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힘쓰게 됩니다.”

동서양 종합한 독창적 종교 사상 

‘종교 없는 삶’의 저자 필립 주커먼(Phil Zuckerman)은 '오이즘(Aweism·경외주의)'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종교를 넘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신기한 눈으로 보는 삶의 태도다. 캐나다와 미국의 알래스카 주에서는 태평양에서 자란 연어들이 자신이 태어난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어 사냥꾼인 물개나 곰이 목을 지키는 위험한 여로다. 밴쿠버에 있는 오 교수의 집 옆으로도 태평양으로 통하는 개울이 있는데 10월이면 알을 낳기 위해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들을 만날 수 있다.
암컷들은 목숨을 걸고 수천km 떨어진 고향을 찾아와 알을 낳고 죽는다. 그러면 수컷들이 알을 부화시키고 따라 죽는다. 오 교수는 이것을 아하이즘(Ahaism)이라고 바꾸어 부른다. 봄에 파란 새싹이 땅을 뚫고 올라온다든가, 겨울에 앙상한 가지에서 꽃이 핀다든가 그런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서 대우주의 움직임이나 신비스러움을 발견할 때 ‘아하’하고 감탄하는 것을 ‘아하이즘’이라고 한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깨달음을 얻었을 때도 ‘아하’ 하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것을 아우른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기적인 것은 없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신은 어느 쪽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는가. 오 교수는 종교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산 밑에서는 약간의 나무와 꽃들이 보이지만 올라갈수록 멀리 호수와 넓은 들판이 보인다. 그 때 ‘아하!’ 하게 된다. 새로운 발견이다. 종교는 어느 면에서 ‘아하! 경험의 연속’이다.
“옛날에는 깨달음을 얻었다든가 심층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가뭄에 콩 나듯 했어요. 왜냐면 그때는 98% 이상이 문맹이었어요. 심층종교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앉아서도 미국, 유럽 유명한 교수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하이즘’ 혹은 심층에 접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 겁니다. 그러니까 ‘심층종교의 민주화’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항아리에 담겨 있다 1600년만에 이집트 사막에서 발견된 도마복음. 이집트의 고대어인 콥트어로 기록돼 있다.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농부가 밭에서 발견한 항아리 속에서 도마복음이 출현했습니다. 오 교수님은 도마복음 해설서도 썼는데요. ‘오강남 복음’이라고 혹평하는 목사들도 있더라고요. 도마복음은 기독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4세기경 니케아 공의회에서 승자가 된 아타나시우스 주교가 승리의 여세를 몰아 4복음서 외에는 모두 폐기처분 하라고 명령했는데, 나그함마디에 있던 사원에서는 나중에 다시 찾아보려고 그랬는지 항아리에 넣어서 땅에 묻었어요. 그러다가 1600여년이 지나 1945년에 발견되었는데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의 어록 114개만 기록되어 있어요. 행적에 관한 것은 없어요. 예수의 수난이라든가,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에 관해서도 없습니다.
도마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깨치라’고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은 ‘믿으라 믿으라 믿으라’ 그러잖아요? 그리고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도마는 믿지 못하는, 의심하는 도마(doubting Thomas)라고 나옵니다. 요한복음에 대비되는 도마복음은 믿음(pistis)이 아니라 깨달음(gnosis)을 강조합니다. 사람이 깨달아야만 거기에서 종교가 줄 수 있는 참된 청복((淸福)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도마복음의 특징입니다.
나의 ‘도마복음’ 풀이에 다석을 몇 번 인용했습니다. 도마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을 가리켜 자기 땅이 아닌 땅에서 노는 아이들과 같다고 했습니다. 땅 주인이 와서 땅을 되돌려 달라고 하니 그 아이들은 땅 주인이 보는 데서 자기들의 옷을 벗고 땅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합니다. 다석도 삶을 ‘놀이’로 보았습니다. ‘우리는 묶고 묶이는 큰 짐을 크고 넓은 ‘한데’에다 다 싣고 홀가분한 몸으로 놀며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종당에는 이 몸까지도 벗어 버려야 한다. 다 벗어 버리고 홀가분한 몸이 되어 빈탕 한데로 날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도마복음은 ‘홀로’를 강조하는데, 다석도 해혼하고 홀로 되심을 실행했다고 봅니다.
도마복음과 4복음서는 상당 부분 겹치지만 겹치는 부분도 의미를 달리합니다. 예를 들어 4복음서에서 양이 우리를 빠져나와 길 잃은 양이 되지 않습니까? 불쌍한 양이 되어서 예수님이 양을 안고 다시 우리로 들어온다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도마복음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길 잃은 양이 아니라, 99마리의 양들과 달리 너무 특출하기 때문에 거기에 그대로 섞일 수 없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스스로 그 무리를 탈출해서 자기 나름의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용감한 양입니다. 그래서 양을 찾았을 때 예수님이 ‘나는 아흔아홉 마리보다 너를 더 귀하게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도마복음은 용기를 가지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를 강조합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엘레인 페이젤스(Elaine Pagels) 교수는 도마복음 전문가인데, ‘도마복음이 만약 폐기 처분되지 않고 기독교 전통의 일부로 남아있었다면 지금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가 훨씬 쉬워졌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합니다.
도마복음에서 하는 예수님 말씀이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제 책 제목을 ‘또 다른 예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문 마지막에 ‘도마복음이 기독교와 불교를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99마리 이탈한 한 마리 양은 자유로운 영혼

-오 교수가 ‘교회를 지배하는 신학은 암흑시대라고도 하는 중세와 근대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하면서 ‘교회를 개혁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고 신학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아까 말한 대로 무엇보다 신관(神觀)이 바뀌어야 하는 거예요. 하늘 위에 계셔서 낮고 천한 인간을 보시면서 잘한 사람은 칭찬하고 못한 사람은 벌주고 나중에 죽어서 잘한 사람은 천당 보내고, 못한 사람은 지옥 보내고, 이런 식의 신관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걸 가지고 교회를 유지하는 방식은 아직까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통할지 모르지만 유럽 같은 데서는 안 되잖아요.
지금 젊은이들은 ‘나는 종교적이 아니다. 나는 영성적이다’하는 말을 씁니다. ‘전통적인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내 속 깊이의 영적인 영성에 주목하고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고 나를 찾겠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기독교의 신관과 성경관 역사관이 통째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21세기에 맞는 패러다임에 입각한 그런 기독교가 탄생해야지요. 그것이 제가 말한 심층종교적 요소를 받아들인 기독교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이 류영모 함석헌 선생이 지향한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종교 사상가인 레프 톨스토이의 초상


-다석 류영모의 기독교관을 보면 톨스토이가 상당히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요.
“톨스토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다석은 독창적이라서 어느 한 사람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명상해서 발견한 것을 독창적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소크라테스 괴테, 이런 사람들보다 어느 면에서 더 위대하다고 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사람들은 서양에서 태어나 서양 사상만 가지고 생각했어요. 공자나 노자는 동양 사상만 가지고 생각했고요. 다석은 동양 서양 한국까지 다 알아서 종합적인 사유를 했고, 특별히 한국말을 가지고 자신의 독특한 신학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빈탕 한데’라든가, ‘가온 찍기’라든가.
특히 하느님을 말할 때, 우리는 하느님이 계신다고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하느님이 ‘있다’고는 말하지 못해요.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신이 절대적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 없어요. 그렇다고 없다고 말하려니 그것도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노자의 경우는 ‘무’라고 하지만 류영모 선생은 둘을 합해서 ‘없이 계신 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는 불교의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말과 비슷한데요. 한문보다는 얼마나 우리한테 착 들어맞는 말입니까.”
-다석 류영모의 종교 철학과 사상이 표층종교적인 신학을 개혁하는 데 빛이 될 수 있다고 보는지요?
“그럼요. 류영모 사상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거기에 자극 받아서 새로운 설명 방법이 나와야죠. 새로운 세대에 의미 있는 방법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해석해주는 겁니다. 함석헌 선생은 ‘껍데기를 붙들고 있는 정통 기독교는 역사의 골목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한국에서 지금은 근본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얼마 안 가서 근본주의는 지탱할 수 없을 겁니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면 그 전 10년 사이에 종교인구가 300만명이 줄어들었어요. 어느 목사가 한국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교회 1만개 정도는 없어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넷 예배를 본다지만 교회에서 떨어져 있으면 헌금을 덜 하게 되니 종교는 앞으로 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는데 어쩌다 세계 각국의 종교를 비교연구하면서 때로는 개신교를 비판하는 길로 나가게 됐는지 궁금하군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30리를 걸어서 경북 안동읍 교회에 갔습니다. 바로 위의 형님이 서울에 있는 교회학교를 다니다 방학 때 내려와 종교와 성경에 대해서 얘기하니까 관심이 커졌어요. 그래서 중학교를 교회학교로 갔습니다. 중학교 1학년, 2학년까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흥미로웠는데 3학년 때 터는 의문 투성이였습니다. 종교에 대해서 뭔가 새롭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와중에 고등학교 때 루돌프 볼트만의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라는 조그마한 책을 읽었습니다. 유동식 교수가 번역한 그 책을 읽으면서 종교를 좀 더 객관적으로 알아보겠다는 마음에서 종교학과를 택했습니다. 그 당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분위기는 주로 서양 종교사상이나 종교철학을 가르쳤습니다. 거기서 대학원을 마치고 캐나다 유학을 가서 보니 그 학교는 서양종교와 동양종교를 반반씩 가르치고, 동양종교를 전공으로 하면 서양종교를 부전공으로, 서양종교를 전공으로 하면 동양종교를 부전공으로 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으로 나갈 때 세계종교를 가르칠 수 있는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그때 인도의 승려 용수(龍樹·150년경~250연경)의 중관론(中觀論)을 연구한 세계적인 학자 T. R. V. Murti 교수의 강의를 1년 들으면서 종교 이해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노장사상과 선불교를 공부하고 화엄 철학에 관한 학위논문을 쓰게 됐습니다. 기독교 교적을 자진해서 정리하고 나니 종교에 대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독자가 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죠. 그것 때문에 여러 가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새로운 시각을 발견했다는 사람들도 생기죠.”

종교 높이 오를수록 멀리 보인다

밴쿠버는 여름에는 덥지 않고 겨울에는 춥지 않은 동네다. 겨울이 되면 낮에는 7도, 여름에는 낮에 더울 때가 25도고 30도를 넘어가는 일이 없다. 겨울에는 비가 많이 온다.
“화상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밖에 비가 오고 있습니다. 그 대신 4월부터 10월 초까지는 한국의 초가을 같은 청명한 날씨입니다. 단점을 찾자면 여기는 일자리가 별로 없고 집값이 비싸지요. 그런데 밴쿠버 교민들 중에 여기가 999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천(1000)당에서 한 끗 모자란다고….”
오 교수는 서재의 블라인드를 걷으며 마운드 베이커의 산자락을 보여주었지만 서재 밖의 원경(遠景)은 줌 화면에 잡히지 않아서 아쉬웠다. 아들 셋에 손자는 네 명. 자손에 모두 ♂만 있다. 며느리 둘이 모두 한국계인데 북미에서 태어나 오래 살다 보니 평소에도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셋째 아들은 아직 결혼을 안 했는데 여자 친구가 중국계 싱가포르 출신이다. 공교롭게도 외할아버지가 한국계다. 두 남녀가 아마 한국계 DNA에 끌려서 가까워졌을 수도 있다.
내가 “50대 중반 무렵의 오 교수님을 처음 만난 것 같은데 지금 팔순에 접어들었죠”라고 묻자 “내년이면 80”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생에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말해주시죠. 이 답변을 끝으로 국제 화상 인터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쓴 책의 대부분은 제가 먼저 쓰겠다고 한 것은 거의 없어요. 어디서 부탁을 해서 쓰거나 연재를 한 것을 모아서 쓰거나 한 거죠. 지금도 여기저기 출판사에서 요청이 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책 쓰는데 바쳐야 할까요. 제가 쓴 책 중에 영어로 번역하고 싶은 책이 몇 권 있습니다. 여력이 있으면 그걸 번역하려고 생각 중이죠. 여기저기 강연 요청이 있는데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한 번도 못 갔습니다. 올 10월에는 한국 종교 발전 포럼이라고 하는 모임에서 강연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때까지는 상황이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골프도 열심히 치려고 합니다. 코로나 끝나면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물 흐르듯이 사는 게 제 라이프 스타일입니다.”(인터뷰어 황호택 논설고문·정리=박하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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