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중대재해처벌법, 산재사망사고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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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21-01-2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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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최수영 연구위원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최수영 연구위원[사진=한국건설산업연구원 제공]

중대재해에 대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노사의 첨예한 의견 대립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 법은 공포 1년 후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부터 적용되고,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간 유예기간을 가지며,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처벌대상에서 제외(중대시민재해의 경우 처벌대상에 포함)된다.

중대재해 예방을 통해 근로자와 일반 시민의 안전권을 보장하겠다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이 법에서 제시한 방법은 특정 그룹에 대한 처벌강화가 거의 유일한 것 같다.

과연 중대재해 발생, 즉 결과에 대해 기업 및 조직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강하게 처벌하면 중대재해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까? 불과 1년 전 산압안전보건법을 전부 개정하여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였지만 중대산업재해는 크게 줄지 않았다.

그리고 중대재해처벌법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것도 아니기에 실효성을 입증하기도 힘들다. 영국이 2007년 ‘기업과실치사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을 세계 최초로 제정하였으며, 호주의 경우 8개 주 중 4개 주만이 형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에 관련 내용(Industrial manslaughter)을 포함하고 있다.

OECD 국가 가운데 사고사망만인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캐나다의 경우 형법상 의무주체에 단체를 포함하고 있어 업무상과실치사에 따라 법인을 처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국내 중대재해처벌법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 처벌에 대한 하한형과 도급인에 대한 의무 조항인 것 같다.

먼저,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개인 처벌에 하한형을 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영국의 경우 개인에 대한 처벌 조항 자체가 없으며, 호주와 캐나다의 경우 처벌의 하한형이 없다. 형법상 처벌에 하한형을 둔다는 것은 처벌대상을 고의범으로 본다는 것이다.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작업 중지, 보상, 회사 이미지 저하 등으로 인해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산재새망사고를 고의로 계획할리 없음에도 말이다.

만약 경영책임자가 악의를 품고 산재사망사고를 계획하였다면, 이는 중대기업처벌법이 아닌 형법 제250조에 따른 살인죄 적용이 가능하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명시된 산재사망사고 발생 시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하한형은 1년 이상이며, 형법 제252조 제1항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그를 살해한 자에 대한 처벌 하한형도 1년 이상이다. 정말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산재사망사고 발생에 있어 살인청부업자와 같은 잘못을 저질렀을까?

다음으로, 이번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도급인에게 관계수급인 종사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시키고 관계수급인 근로자 산재사망 시 도급인의 경영책임자가 처벌받게 된다.

해외사례를 보면, 영국은 도급인과 수급인의 역할이 산업안전보건법 상 명확히 구분되어 있으며, 도급인의 중대한 주의 의무 위반행위가 인정될 경우 기업과실치사법으로 법인 처벌이 가능하다.

호주와 캐나다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상에서 도급관계에 대한 언급이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급인의 경영책임자는 하도급 업체의,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는 누군가의 과실로 발생한 중대산업재해로 인해 징역형을 살 수도 있게 됐다.

건설사업의 경우 한개 현장에서도 수십개 도급계약이 이루어지며, 대형기업의 경우 100개 이상의 현장을 운영하고 있다. 정말 도급인의 경영책임자가 100개 이상의 현장에서 작업 중인 수백, 수천개 하도급 업체의 이름 모를 수만명 중 누군가의 과실로 인해 발생한 중대산업재해로 인해 1년 이상의 징역을 사는 것이 정말 합리적이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항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안전관리에는 지름길이 없다고 한다. 즉,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끊임없는 협업과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는 이해관계자들 간의 협업을 유도하고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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