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아방강역고-19] 한·미·중·일, 류큐 해양 공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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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2021-01-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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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구 지배 정당화하는 일본

  • '지정학적 특수성'···유구의 수난과 멸망

  • 해양영토 중요성 인식한 中···'유구 공정'에 나서다

  • 이어도 영유권 분쟁에 주는 시사점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중산세감(中山世鑑)』 등 한국과 유구 양국의 각종 사료를 살펴보면 임진왜란 직전까지 유구(류큐)와의 밀접한 관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구는 임진왜란 당시 전쟁 군량미를 분담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요구를 거부했고, 전후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알선 역할을 요구한 도쿠가와 막부에도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 모두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비무장-평화애호 정책으로 일관한 것이다. 

◆유구 지배 정당화하는 일본

유구의 독립왕국 지위가 흔들린 것은 도쿠가와 막부의 승인 아래 1609년에 이루어진 시마즈 다다스네의 침공이다. 이렇다 할 군대가 없었던 유구는 싱겁게 굴복하고 이후, ‘중국을 아버지의 나라, 일본을 어머니의 나라’로 섬기는 이중 종속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후 일본은 유구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하네지 조수(羽地朝秀,1617~1687년)를 비롯한 관변학자들에게 명령해 유구 국사 '중산세감'을 편찬하게 했다. '중산세감'은 유구가 일본과 고대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유구인은 일본인과 동일한 대화민족이라는 논조, 즉 일본과 유구는 조상이 같다는 '일유동조론(日琉同祖論)'에 근거하고 있다. 일유동조론은 훗날 1895년 갑오경장 이후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기 위한 이론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의 원형이 됐다.

유구 왕국은 청국과 일본의 이중속국의 애매한 위치에서 일본의 강압에 의한 병합으로 일본의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되었다. 유구와 조선은 400년에서 6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독립왕국에서 하루아침에 일본의 무력 앞에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 '지정학적 특수성'···유구의 수난과 멸망

유구왕국의 수난과 멸망의 역사는 지정학적 특수성 때문이다. 유구 제도는 중국을 가두는 포위망이 될 수도 있고, 광대한 해양수역을 확보할 수 있는 영토의 기점이자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출구가 된다.

이런 전략적 가치로 인해 유구제도는 중국·일본·미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게 뜨거운 지점인 것이다.

청 나라가 유구 왕국을 잃어버린 것은 통치자들이 해양의식과 지정학적 사고 능력, 국제법적 식견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홍장(李鴻章, 1823~1901년)은 태평양의 출구로서의 유구의 전략적 가치를 몰랐다. 종주국과 속국관계는 국제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었다. 조선이 청국에 조공을 하면서도 자주독립국이었듯, 유구 역시 형식상 청국의 책봉을 받고 조공을 바치는 관계이긴 했지만, 엄연한 독립국이었다. 당연히 국제법적으로 청 나라나 일본으로부터 자주권을 갖고 있었다.

유구를 독립국으로 유지함으로써 일본과 청 나라의 완충지대를 만들 수 있었던 기회는 두 번이나 더 있었다. 일본의 유구 병탄에 놀란 미국이 전 대통령 그랜트를 청 나라에 보내 유구 제도 전체를 3등분하여 일본, 유구, 청 나라의 3분안(分案) 통치를 중재했지만, 이홍장의 ‘무대응 지연책’으로 국제법상으로 ‘묵시적 승인’의 결과를 낳았다.

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막바지에 몰리던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수상, 중화민국 장세스 총통은 일본이 탈취 또는 점령하고 있던 영토와 도서의 원상 반환을 결정했다.

이 때 장제스는 만주, 대만, 펑후도의 반환과 한국의 독립을 포함하면서 유구제도는 반환 및 독립의 대상으로 명시하지 못했다.

유구제도 맨 남쪽에 있던 센카쿠(중국명·댜오위다오)의 영유권 분쟁의 씨앗이 여기서 싹텄다. 중국은 센카쿠가 대만의 부속도서로 당연히 전후 반환됐어야 할 고유영토라고 주장한다.

반면, 일본은 1879년 오키나와현으로 정식 편입된 이후 1972년 미국 관할 하에 있던 것을 되찾은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선다.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자고 일본이 큰소리치는 것도 법적 근거에서 밀리는 중국의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 해양영토 중요성 인식한 中···'유구 공정'에 나서다

역사적으로 여러 계기가 있었음에도 유구에 대한 영향력을 확실하게 유지하지 않던 중국은 1990년대 들어서부터 센카쿠와 유구제도에 대해 적극적 자세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해양 영토에 수반되는 해역의 전략적 가치를 재인식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육지와 대륙 중시 정책에서 해양중시 정책으로 전환시킨 사람은 중국 개혁개방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년)이다.

덩샤오핑은 청조 말엽 대만과 유구 제도를 일본에 할양해준 이홍장의 치명적 실책을 비판했다. 그는 1974년 북베트남의 서사(西沙, 파르셀)군도를 기습 점령하여 하이난다오(海南島)에 편입시켰다. 1988년에는 베트남의 남사(南沙, 스파틀리)군도 9개 섬을 습격, 강탈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티베트 점령에 이어 인도를 침공해 서쪽 공략에 힘을 쏟았다면, 덩샤오핑은 해양 영토 팽창의 전주곡을 울린 셈이다.

유구 왕국은 중국과 일본과는 다른 언어와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는 독립왕국이었다. 2005년 국립 류큐대학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75%의 유구인 응답자가 주민투표를 통한 유구 독립을, 25%는 독립에 반대하나 자치의 확대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로도 유구인들의 독립 요구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지만, 유구왕국의 부활이나 유구의 독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유구 군도의 해역이 일본 전체 해양 국토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넓고 해역이 품고 있는 지하자원의 가치가 무궁하다. 결코 이를 놓칠 일본이 아니다. 문제는 중국이 2006년 후진타오(胡錦濤)의 해양대국 선언 후 센카쿠 영유권 분쟁을 넘어 유구 제도 전체를 노리는 장기적인 ‘유구 공정’에 나섰다는 점이다.

“유구왕국은 원래 중국의 속국으로서 유구 군도 전부를 일본이 불법 점령한 것”이므로, “미국의 센카쿠를 포함한 오키나와 반환은 중국 영토에 대한 미일간의 불법적인 밀실 거래”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해상의 요충지 유구제도를 놓고 중국과 일본의 격돌을 예고한 셈이다.

이제 중국도 국제법적 논거에 눈을 떴다. 중국은 1946년 맥아더 성명에서 일본 정부의 행정구역에 유구를 명시하지 않았고, 유구를 미국이 신탁통치했던 점을 들어 일본과 분리된 지역으로 볼 수 있다는 논거를 주장한다.

물론 일본에 속하는 부속도서에 명시되지 않았다 하여 그 자체로 중국의 영토라고 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떻든 중국의 대 일본 공세의 초점이 유구제도 전체로 확대된 것은 틀림없다.

더구나 2010년부터 중국 해군에서 '중국-유구 관계 연구 총서'를 발행하는 등 중국과 유구 간의 역사 문화적 관계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는 영토의 편입이전에 역사 문화적 편입을 시도한 동북공정의 초기 단계를 닮았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 이어도 영유권 분쟁에 주는 시사점

센카쿠나 유구 제도의 영토분쟁이 중국과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동중국해에서의 해양주권의 분쟁은 중국의 해양대국화의 큰 추세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볼 때, 이어도 영유권 분쟁을 통해 한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중국이 항공모함 바랴크호를 취항하는 등 해양대국화하면서 서사군도 및 남사군도의 기습 점령과 같은 시나리오가 이어도에도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중국은 남사군도를 기습 점령한 후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부두시설과 헬리콥터 착륙장, 보급기지 등 시설물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해상 팽창주의의 일면이라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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