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민주·법치국가의 AS 격차…한·미 국회 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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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1-01-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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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 폭력 시위’ 탈탈 터는 미국 vs 유야무야 한국


AS, 애프터 서비스(After Service)는 영어가 아니다. 한국이 만들었고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영어, ‘콩글리시’다. 이윤기, 안정효 등 존경받는 영문번역가들이 콩글리시를 쓰지 말고 제대로 된 영어를 쓰자는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그런데 AS만큼은 좀 다르다. 창피하고 부끄러울 거 없는 자랑스러운 콩글리시다. 산업계 한류를 상징할 만한 단어다.

세계 어디에도 가전제품, 휴대전화 등을 대한민국처럼 AS해 주는 나라는 보지 못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들에게 한국의 AS를 길게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1년 정도의 품질 보증(워런티·warranty)만이 유일한 AS인, AS 후진국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매우 안타까운 점은 대한민국의 AS는 ‘제품’에만 해당한다는 거다.

뭐든 오작동을 수리해 다시 고장 나지 않게 오래 쓰도록 하는 게 AS다. 민주주의 국가, 법에 따라 나라를 운영하는 선진법치국가는 민주주의, 법치가 훼손되거나 고장 나면 AS를 반드시, 확실하게 한다. 소를 잃었더라도 끝내 소를 되찾아 와 외양간을 꼼꼼히 고친다. 하지만 한국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는커녕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죽은 뒤 약 처방)도 안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요즘 선명하게 대비되는 게 국회 폭력 시위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정반대 AS다. 우두머리의 ‘선동’ 연설, 난입 폭동은 비슷한 모양새지만 그 사후 처리는 완전히 다르다. 이게 미국 민주주의의 힘이다. 망가진 민주주의의 AS는 같은 잘못, 고장을 반복할 확률을 낮춘다.

미국 시간으로 지난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추종하는 극우주의자들이 미국 민주주의의 ‘심장’인 국회의사당에 난입했다. 시위가 아닌 폭력, 살인폭동이었다. 미 수사 당국은 내란음모 혐의까지 추가했다.

이날 시위 초반은 평소 워싱턴 DC 주변 극우파 시위와 별다르지 않았다. “싸우라”는 트럼프의 연설이 상황을 바꿨다. 트럼프는 대선 불복을 또 주장하며,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당선을 확정하기 위해 모인 상·하원 합동 회의가 열리는 의사당을 겨냥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저들을 중단시켜야 한다. 우리는 강하다. 죽을 때까지 싸우자(We fight like hell).” 의회로 몰려가 싸우라는 말을 대놓고 한 거다. 시위대가 폭도로 변했다.

의사당 난입 폭동 현장은 방송사 생중계로 전 세계에 널리 퍼졌다.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은 시위자들의 맨얼굴이 그대로 공개됐다. 시위자들은 “국회 주인은 우리다. 우리가 국회에 들어가는 게 뭐가 문제냐”라는 인터뷰를 공공연히 했다.

미국 민주주의의 심장이 유린된 이후 정치권과 사법당국은 그 사후처리, AS에 신속하고 전면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 정치권, 특히 공화당까지 나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 중이다. 검찰은 폭도는 물론 일부 경찰 병력의 수수방관 내지는 소극적 동조까지 수사하고 있다.

우리로 따지면 서울중앙지검장에 해당하는 마이클 셔윈 워싱턴 DC 연방검찰 검사장 대행이 기자회견을 열어 시위대에게 내란 음모 및 반란, 무단침입, 절도 등 15개 혐의를 적용할 거라고 밝혔다. 폭동을 선동한 트럼프 대통령의 범죄 혐의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연방수사국(FBI) 등 연방 사법기관들도 디지털 감식 전문가들을 총동원, 감시카메라 동영상을 분석하고 있다. FBI는 폭동 가담자를 현상수배하고 제보를 받고 있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얼굴사진을 공개하며 정보를 찾고 있다.
 

[미 의회 폭동 혐의자들을 현상 수배한 FBI 홈페이지 첫 화면]


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적극 나서고 있다. SNS에 시위 참가자들을 공개하는 등 이른바 ‘신상털기’를 통해 응징하고 있다. 일부 안면인식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이번 폭동사태 장면을 담은 소셜미디어 게시물 속 인물들의 얼굴을 골라내는 작업을 할 정도다.

고장난 민주주의를 고치기 위해 미국은 민·관 합동 AS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13개월 전 한국에도 비슷한 ‘국회 난입 폭동’이 있었다.

2019년 12월 16일 여의도 국회에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를 예고하자 ‘태극기 부대’가 작전을 짰다.

“지금 즉시 330만 당원들에게 문자와 성명을 발표해, 16일 8시에 국회의 각 정문을 포위하라고 지시하라.” 15일 오후 ‘태극기 카톡방’에 이런 글이 올라왔고, 실제로 다음날 태극기부대는 국회에서 난동을 부렸다. 시시각각 카톡방을 통해 숨가쁘게 지시사항을 전달했고,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집회시위가 금지된 국회 경내를 불법적으로 점거, 대한민국 입법부의 심장인 국회를 마비시켰다. 국회경비대(경찰)와 국회 사무처 직원, 일부 정당 당직자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태극기 깃대로 때리고 쓰레기를 던지고 침을 뱉었다. 여성에 대한 성추행도 서슴지 않았고 ‘바바리맨’이 나타났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연설은 트럼프의 그것과 다를 게 없었다. 국회 앞 마당을 점거한 불법 시위대들에게 황 대표는 “국회 주인이 누굽니까(참석자들 ‘우리요’ 함성). 국민이 국민의 집으로 들어가겠다는데 누가 막습니다. 이거 불법 아닙니까. 여러분 들어오신 거 이미 승리한 겁니다. 이긴 겁니다. 국민의 권리를 막은 자가 불법, 이런 게 적반하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9년 12월 16일 극우시위대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난입을 시도하고 있다. 방송사는 시위대 얼굴이 나오지 않게 화면을 흐리게 조정했다. 사진=sbs뉴스 캡처]


선동뿐 아니라 조직적 움직임을 지시한 사실도 있다.

심재철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현재 규탄대회 참석자를 국회 출입구 쪽에서 통제 중인 상황입니다. 의원님들께서는 지금 즉시 국회 출입구로 가셔서 지지자 및 참석자를 안내해서 모셔오도록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후 처리, AS는 어땠을까.

여당 의원들이 경찰청장을 만나 수사를 촉구하자, 당시 민갑룡 경찰청장은 “법에 따라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여의도 국회를 관할하는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불법행위를 수사할 전담팀을 꾸려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집회 주최자, 폭력 행위자 등을 가려내기 위해 현장 CCTV를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누가 검거됐고 사법 처리됐다는 말은 전혀 없다. 유야무야(有耶無耶), 없던 일이 돼버렸다.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쳤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도 할 말이 없다.

국회 난동 이제라도 AS하자. 공무집행방해죄 공소시효 5년 등 아직 한참 남았다. 전자제품 AS 선진국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와 법치 AS 선진국이 못 될, 안 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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