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시진핑 권력블루스 ..내년 100주년 中 공산당의 앞날

박승준 논설고문입력 : 2020-12-30 20:35
시진핑의 장기집권 성공할까? 왕치산과의 관계는


 

[(상하이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11월 12일 상하이에서 열린 '푸둥(浦東) 개발·개방 30주년 축하 대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2021년 7월로 창당 100주년을 맞는다. 중국공산당은 1921년 7월 23일부터 31일까지 9일간 제1차 당 대회를 개최했다. 제1차 당 대회를 개최한 곳은 상하이(上海)의 프랑스 점령 조계(租界)지역이었다. 대회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있던 마당(馬當)로 골목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중국공산당 제1차 당 대회 개최 당시 당원숫자는 중국대륙 전역에 50명 정도였고, 참석한 각 지역 대표 숫자도 불과 13명이었다. 이 가운데 마오쩌둥(毛澤東)은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 대표로 참가했다. 회의는 30일 밤까지 계속됐으나 31일 새벽에는 “프랑스 경찰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첩보에 따라 급히 기차 편으로 저장(浙江)성 자싱(嘉興)현 난후(南湖)라는 호수로 옮겨 배 위에서 마지막 날 회의를 했다. 최초의 당서기로는, 회의에 불참했던 베이징(北京) 대표 천두슈(陳獨秀)가 선출됐다. 현재 중국공산당은 제1자 당 대회 개최지에 대규모 기념관을 건설해놓았다. 창당 기념일은 인민들의 기억 편의를 위해 7월 1일로 정해놓았다.

그로부터 100년, 중국공산당 당원 숫자는 2019년 말 현재 9191만4000명으로 집계돼 있다. 중국공산당은 창당 28년 만인 1949년 10월 1일 선포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수립을 주도했고, 그 결과 중국 헌법 전문(前文)에 “중국 각 민족들은 중국공산당의 영도 아래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鄧小平) 이론, ‘3개 대표 이론’, 과학적 발전관, 시진핑(習近平)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의 지도 아래…(중략)…아름다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한다”는 구절을 삽입하는 위치를 확보했다. 중국 헌법 전문에 나타난 것처럼 중국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마오쩌둥이 1949년부터 1976년까지 27년간, 덩샤오핑이 1978년부터 1989년까지 11년간, ‘3개 대표 이론’을 만든 장쩌민(江澤民)이 1989년부터 2002년까지 13년간, ‘과학적 발전관’을 만든 후진타오(胡錦濤)가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현재의 시진핑이 2012년부터 현재까지 8년째 최고지도자로 당을 이끌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헌법에 따라 당의 최고지도자인 당 총서기가 국가수반인 국가주석과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당과 정부의 중앙군사위 주석을 겸임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장쩌민이 만든 ‘3개 대표이론’을 바탕으로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와 신흥 부르주아(유산계급)를 포함한 ‘모든 인민’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 시절에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추구했으나,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전략이 채택된 이후에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해왔다. 문제는 2012년에 당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이 추구해온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가 과연 어떤 체제이며, 시진핑이 설정한 “아름다운 사회주의 강국”이 과연 어떤 나라이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꿈”이 구체적으로 과연 어떤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냐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2012년 5년 임기의 당 총서기로 선출된 이후 두 번의 총서기 임기를 마치게 될 2022년 개최 예정인 20차 당 대회 때 시진핑이 덩샤오핑 개혁개방시대의 관례를 깨고 세 번째 5년 임기의 당 총서기로 다시 선출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안팎의 관측 대상이 될 전망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시진핑은 지난 2017년 두 번째 5년 임기의 당 총서기로 선출된 직후 2018년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헌법에 명시된 국가주석의 3연임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중국 국내정치 최대의 사건을 빚어놓았다. 시진핑이 중국 헌법의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정치적 사건을 만들자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시진핑이 마오쩌둥의 뒤를 따르는 1인 독재체제를 구축했다”고 시끄러워졌다. 그러나 중국 국내정치 최고 권력은 의전상 국가수반인 국가주석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의 최고 지도자 직위인 당 총서기의 손에 있다. 당 총서기의 임기는 헌법이 아니라 당의 최고 규약인 당장(黨章)에 규정돼 있다. 당규약 제38조는 “당의 각급 간부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됐든, 영도기관에 의해 임명됐든, 직무를 종신(終身)으로 해서는 안 되며, 연령과 건강이 계속해서 공작을 담당할 수 없는 간부는 정부의 규정에 따라 물러나야(離休)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 규약의 이 조항은 시진핑이 헌법 전문을 고친 이후에도 개정되지 않고 있다. 당 규약이 규정한 ‘정부의 규정에 따라’라는 조항은 현재 장관급 이하는 60세, 장관급은 65세로 규정돼 있고, 덩샤오핑이 만든 내부 규정에 따라 장관급 이상의 당 간부는 67세 이하만 해당 직위에 취임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칠상팔하(七上八下)’라는 4자 성어로 알려져 있던 중국공산당 최고급 간부에 대한 연령규정에 따르면 시진핑은 1953년 6월생이므로 20차 당 대회가 열리는 2022년 가을에는 이미 만 69세를 넘어선 나이이므로, 세 번째의 당 총서기에 선출될 수 없다는 것이 당규약의 규정이다.

그러나 시진핑이 2018년 3월 헌법에서 국가주석의 3연임 금지조항을 삭제한 이후 중국 안팎에서는 “시진핑이 그런 내부 규정을 무너뜨리고 세 번째의 당 총서기로 선출될 것이다”, “당규약을 개정하고 마오의 뒤를 따라 중국공산당의 종신 지도자로 계속 권력을 쥐고 있을 것이다”라는 관측이 정설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앞날을 좌우할 시진핑의 당 총서기 3연임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중국공산당이 이렇다 할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기자 출신으로, 1989년 6월의 천안문(天安門) 학생시위 사태 직후 미국으로 망명해서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우궈광(吳國光)이 미 스탠퍼드 대학 후버연구소가 운영하는 온라인 중국전문 계간지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에 중국공산당 내부 움직임을 관찰하는 기준을 제시해서 주목받고 있다.

우궈광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내부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현 국가부주석 왕치산(王岐山)의 정치운명을 지켜보면 된다는 것이다. 왕치산은 시진핑보다 5세 위이지만 시진핑과 마찬가지로 1966년에 시작된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을 피해 중국 혁명의 본거지 옌안(延安)으로 스스로 하방(下放)을 자초해 내려간 이른바 ‘지청(知靑·지식청년) 출신이다. 왕치산은 장쩌민 총서기와 후진타오 총서기 시절에는 중국인민건설은행 행장과 수도 베이징(北京)시 당서기를 거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올림픽조직위원회 주석으로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공으로 부총리 직위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왕치산은 2012년 시진핑 당총서기 체제가 시작될 때 중국공산당 권력구조의 최고위에 해당하는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1인으로, 당 안팎의 부패 척결을 담당하는 당 기율검사위원회 주석을 맡았다. 왕치산은 이후 5년간 시진핑이 자신의 당내 권력 강화를 위한 부패척결 캠페인을 벌일 때 시진핑이 휘두르는 칼의 역할을 했다. 특히 2014년 시진핑이 전임 후진타오 총서기를 지탱하는 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저우융캉(周永康)을 부패혐의로 당적을 박탈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도록 할 때 왕치산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우궈광의 주장이다.
왕치산은 시진핑의 첫 5년 임기 당 총서기 때 시진핑을 도와서 부패척결 활동을 벌인 공로로 시진핑이 두 번째 임기 당 총서기에 선출된 이후 2018년에 70세의 나이로 국가부주석으로 추대됐다. 그랬던 왕치산인데 2020년 들어 왕치산의 측근들이 아이로니컬하게도 당의 기율위반 혐의로 감찰과 조사를 받아 직위가 박탈당하는 일이 속속 벌어져, “시진핑이 첫 당 총서기 임기 5년 동안 벌인 부패척결 활동의 사냥개로 활용했던 왕치산을 토사구팽(兎死狗烹)식으로 제거하려 한다”, 또는 “시진핑과 시진핑 체제 제2의 권력자 왕치산 간에 권력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이 우궈광의 관측이다. 실제로 왕치산의 베이징 시장, 당서기 시절의 최측근으로 베이징 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리웨이(李偉)가 지난 8월 당과 국가의 감찰을 받은 뒤 10월 15일 정협 부주석 직이 박탈됐다. 왕치산의 또 다른 측근으로 왕치산이 하이난(海南)성 당서기 시절 왕을 수행했고, 왕치산의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주임 시절 보좌했던 둥훙(董宏)이란 인물도 지난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기념일에 수사를 받게 됐다는 뉴스가 터져 나와 중국공산당 안팎을 흔들어놓았다.

우궈광에 따르면, 시진핑은 자신의 장기 집권 기반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당의 정법위원회와 행정부의 공안부 인적 구성을 자신의 인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시진핑 자신의 첫 5년 임기 동안 부패척결 작업을 주도했던 정법위와 공안부 인물들을 하나하나 토사구팽식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제 남은 일은 왕치산과의 마지막 한 판이라는 관측이다. 시진핑이 왕치산과의 마지막 한 판에서 승리할 경우 시진핑 자신이 지난 가을 제19기 5중전회에서 설정한 “2035년까지 아름다운 사회주의 강국 건설”과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수립 100주년까지 달성하기로 약속한 “중국의 꿈(中國夢)” 달성을 위해 달려갈 태세다. 그러나 1953년생인 시진핑으로서는 20차 당 대회가 열리는 2022년이면 69세, 21차 당 대회가 열리는 2027년이면 74세에 이르는데다가,
과체중에 통풍을 앓아, 가끔씩 외국 방문 때 의장대 사열을 하면서 부자연스럽게 걷는 모습을 대외에 보여주는 건강 문제가 중국공산당의 앞날에 후계 다툼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발생 가능성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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