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기업 대표 징역형은 너무합니다…사고예방이 더 중요"(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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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기자
입력 2020-12-2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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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8개단체 '입법 중단' 재차 호소

  • 4중 처벌 구조...선진국보다 더 강력

  • 원·하청 구조서 중소기업 피해 우려

2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중단을 위한 경제단체 기자회견'에서 반원익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왼쪽부터),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영윤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한국경영자총협회 제공]

"중대재해기업처벌 법안은 경영계가 생각하기에 매우 감당하기 힘든 과잉 입법이다. 산업재해 문제는 처벌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계도와 예방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 급선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등 8개 경제단체는 22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법 입법을 중단해 달라며 이같이 호소했다. 각 협회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강력하게 입법 제정 중단을 촉구한 것은 이례적이다.

최근 '기업규제 3법'(상법 일부개정법률안·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안), 노동조합법 개정안 등 반(反)기업 법안이 줄줄이 통과된 데 이어 중대재해법까지 국회 문턱을 넘을 위기에 처하자, 지난 16일에 이어 다시 한번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이다.

◆"산업재해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 맞춰야"

중대재해법은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며 올해 1월 16일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산안법)보다 처벌 수위를 높인 법이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씨 사건 여파로 산업재해에 대해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경영계는 산재사고는 안전시설 부족 등 사업주의 의지 문제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근로자의 부주의로도 발생하는 만큼 그 책임을 모두 경영자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다양한 원인에 맞게 '사고 예방'에 초점을 둔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영계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은 소중하며, 이를 위해 중대재해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는 데는 경영계도 깊이 공감한다"면서 "다만, 처벌 위주의 산업정책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8개 경제단체는 "중대재해법은 대표자 형사처벌, 법인 벌금,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 등 4중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며 "이미 시행 중인 산안법으로도 대표를 7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데, 이번에 발의된 법안들은 과실범임에도 불구하고 최소 2년에서 5년까지 징역 하한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6개월 이하 징역형인 미국·일본보다 높고, 특히 중대재해법의 모태인 영국 법인과실치사법에서 사업주 처벌이 아닌 법인 벌금형을 부과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도 너무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경영계는 이미 사업주에 부과된 의무가 많다고 봤다. 이들은 "현재 산안법상 사업주가 지켜야 하는 의무조항이 무려 1222개"라며 "여기에 더해 중대재해법까지 제정되면 기업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633만 중소기업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은 "원·하청구조 상황에서 결국 중소기업이 안전에 관한 1차적 책임을 지게 된다"며 "중소기업의 현실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산안법 효과 지켜봐야··· 선진국 대비 처벌 과도"

손경식 경총 회장은 이날 중대재해법 제정의 필요성 여부를 산안법의 효과를 평가한 후 중장기적으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손 회장은 "사업주 처벌을 강화한 개정 산안법이 시행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다"며 "사후처벌 중심의 정책으로는 사망사고를 효과적으로 감소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CJ그룹 회장이기도 한 손 회장은 최근 대한통운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를 예로 들며,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했다. 손 회장은 "2개월 전 대한통운에서 물류 작업을 하는데 사망사고가 있었다"며 "이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자동설비를 외국에서 더 도입했고, 작업인력을 늘려 노동자의 피로도를 줄이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총투자비용은 1800억원에 달했다"며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대표를 구속하게 돼 있는데, 대표가 구속된다면 이러한 예방활동이 쉽게 나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영주 무협 회장은 "최근 기술개발 속도를 보면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를 통해 안전사고를 사전에 감지하고 예방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며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현장에 보급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함께 노력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김영윤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은 "건설산업은 옥외에서의 작업이 빈번하고, 자연재해에 노출돼 있어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번 법안은 선진국에 비해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너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경총, 무협, 대한건설 협회 회장을 비롯해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반원익 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여당, 기업의견 듣지 않아"··· 답답함 호소 

경제단체들은 올해 들어 잇달아 정부에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지만, 거대 여당 체제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여당이 기업들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있다"는 탄식이 나올 정도다.

지난 7월에는 공정거래법 등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대한 경제계 공동 의견을 제출했고, 11월에는 32개 단체 및 협회가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국회에 냈다. 이달 들어서는 지난 16일 중대재해법 입법을 막기 위해 30개 경제단체와 협회가 공동건의에 나서기도 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입법예고 때부터 국무회의에서 통과될 때, 국회에 올라갈 때, 상임위원회를 거칠 때까지 계속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하나도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주요 산업계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22일 한국산업연합포럼이 개최한 '제7회 산업발전포럼'에서도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KIFA) 회장은 "대부분 업종별 단체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면서 "사고 발생과 경영자 책임 간 명확한 인과관계도 없는데 처벌하는 경우 억울한 사람이 나올 수 있고, 이러한 우려로 인해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는 점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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