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중국 학부모는 왜 줄넘기에 목맬까

베이징=이재호 특파원입력 : 2020-11-12 06:00
직장인 월급 절반 줄넘기 수업료로 체력검사 기준 높아 사교육에 의존 진학·입시에 중요, 학부모 경쟁치열 코로나19로 각종대회 취소, 더 집착 사회적 양극화·위화감 심화 우려도

중국 주요 도시에서는 줄넘기 성적이 학교 진학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하다. [사진=신화통신]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望京)의 한 실내 체육관. 한쪽에서 10여명의 초등학생이 줄넘기 삼매경에 빠져 있다.

아이들을 지도하던 강사에게 수업료가 얼마인지 물었다. 2년 전 베이징체대를 졸업했다는 그는 "50분에 300위안인데 일주일에 사흘씩 한 달간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언뜻 계산해 보니 한 달에 3600위안(약 61만원)을 지불하는 셈이다. 체육관에서 동료들과 배드민턴을 즐기다가 이 얘기를 함께 들은 궈(郭)씨는 "줄넘기가 돈 내고 훈련해야 하는 운동이냐"며 깜짝 놀랐다.

줄넘기 수업을 받는 아이의 학부모는 "지난 9월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처음에는 1분에 14~15개 정도밖에 못했는데 지금은 120개 이상을 한다"며 효과를 강조했다. 강사도 "가격은 시장 수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퉁명스럽게 거들었다.

학부모에게 아이가 줄넘기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건지 되묻자 "진학과 입시 때문에 시키는 것"이라며 한숨을 쉰다.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대도시 곳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거리와 골목마다 시간까지 재 가며 줄넘기 연습에 매진하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강사들은 학원은 물론 아파트 단지까지 출장 와 학생들을 가르친다. 최근 수년 새 줄넘기가 우수·모범 학생을 선별하는 중요한 척도로 자리매김한 탓이다.

이에 대한 여론은 극명하게 갈린다. 아이들의 야외 활동 빈도를 높이고 체력 증진도 이룰 수 있다는 긍정론과 지나친 사교육 열풍을 경계하는 비판적 시각이 공존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평등 교육 원칙이 훼손되고 빈부 격차에 따른 사회적 위화감이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와중에 선택의 기로에 선 중국 학부모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 [사진=신화통신]



◆1학년이 1분에 100개 넘겨야 만점

줄넘기는 중국의 체육 교과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신중국 수립 직후인 1950년대 국가 건설과 방위를 위한 체육 장려 정책 '라오둥웨이궈(勞動衛國) 체육 제도'를 시작으로 1970~80년대 '국가 청소년 단련 표준', 2000년대 '학생 체질 건강 표준' 등에 이르기까지 줄넘기가 빠짐 없이 포함돼 왔다.

장소·장비에 구애받지 않고 어린이와 청소년 체력 증진을 도모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각광을 받았다.

특히 2014년 줄넘기가 학생 체력 검사의 필수 항목이 되면서 중요성이 커졌다.

초등학생의 경우 100점 만점으로 진행되는 체력 검사에서 1~4학년은 줄넘기 배점이 20점, 5~6학년은 10점이다.

또 50m 달리기와 제자리 멀리뛰기 등 다른 항목과 달리 줄넘기는 만점 기준을 넘기고도 계속 하면 총 20점의 가점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만점 기준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의 경우 1분에 109개, 여학생은 117개를 해야 만점을 받는다.

6학년이 되면 남학생은 157개, 여학생은 166개로 늘어난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한 학부모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 줄넘기도 잘할 것으로 생각했다"며 "막상 입학하고 시켜 보니 만점 기준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야오강(韓耀剛) 상하이체육학원 교수는 "가점은커녕 만점을 포기하더라도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1분에 80개를 넘겨야 '합격', 90개를 넘겨야 '양호' 등급을 받을 수 있다"며 "결코 쉬운 기준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이 돈을 주고서라도 줄넘기를 가르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수이쥔(鐘水軍) 상하이줄넘기협회 부주석은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인 데다 줄넘기를 잘 못하는 학부모도 태반"이라며 "전문 강사의 도움을 받으면 단기간 내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모범생 되려면 줄넘기 잘해야

학부모들이 사교육까지 마다하지 않는 게 단순히 자녀의 줄넘기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아니다.

체력 검사 점수가 향후 진학과 입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국은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지덕체(智德體)를 갖춘 모범 학생을 선정하는 '싼하오(三好) 학생' 제도가 있다.

각 학교에서 우선 선발하고 교육당국의 심사를 통과하면 시·성 단위로 싼하오 학생 표창을 준다.

베이징의 경우 체력 검사에서 '우수' 등급을 받아야 싼하오 학생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싼하오 학생으로 선발되면 상급학교 진학과 대학 입시 과정에서 훨씬 유리해진다.

중국 소년선봉대(소선대) 간부 선발 때도 체력검사 성적을 중요하게 반영한다. 소선대는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의 지도·감독을 받는 소년 조직으로, 공산당원이 되기 위한 첫 관문이다.

학급과 학교별로 소대장·중대장·대대장 등의 간부를 뽑는데, 체력 검사 성적이 낮으면 후보에 낄 수도 없다.

한 학부모는 "소선대 간부가 된다는 건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위한 첫발을 잘 내디뎠다는 의미"라며 "당연히 경쟁도 치열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각종 경시·시상대회가 취소되거나 연기된 상황"이라며 "싼하오 학생이나 소선대 간부 선발에 더 목을 맬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황야링(黃亞玲) 베이징체대 교수는 "체력 검사 항목 중 전문가에게 기술을 배워 실력을 늘릴 수 있는 건 줄넘기가 거의 유일하다"며 "줄넘기 실력이 진학 및 입시에 도움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베이징만 유난스러운 건 아니다. 상하이·톈진·칭다오 등 다른 대도시도 마찬가지다.

상하이는 고교 입학 시험에서 체육 교과 배점 30점 중 6점을 줄넘기에 할애한다. 지난해 새로 시행된 제도다.

톈진도 고교 입학 시험 과목 중 줄넘기를 선택 과목에 포함시켰는데, 다른 선택 과목과 비교해 줄넘기가 만점을 받기에 가장 용이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나친 사교육, 사회갈등 조장 비판도

베이징 시청구에 거주하는 무(穆)씨는 5살 난 딸을 데리고 차로 한 시간을 운전해 줄넘기 수업을 받으러 다닌다.

무씨는 "유치원에서 줄넘기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줄넘기) 기준이 훨씬 엄격해진다"며 "압박감이 상당해 결국 사교육을 택했다"고 말했다.

무씨의 딸이 수업을 받는 학원은 상하이와 광저우 등에 걸쳐 10여개의 분점이 있다. 그는 "한 시간에 200위안으로 이 정도면 친서민적인 가격"이라며 "1대1로 가르치며 2000위안(약 34만원)을 받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베이징의 직장인 평균 월급이 1만 위안에 못 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

베이징의 한 생활정보 사이트에 접속해 '줄넘기'를 키워드로 검색해 보니 832건의 업체 정보가 화면을 빼곡하게 채웠다. 중국의 국민 스포츠로 불리는 탁구(668건)보다도 많았다.

"이렇게 간단한 운동에 이렇게 황당한 가격이"라는 댓글이 보였고, 그 밑에는 "시장은 정직하다. 수요가 반영된 가격"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중수이쥔 부주석은 "가정과 학교에서 수요가 충족되지 않으니 학교 밖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일 뿐"이라며 "입시를 위한 사교육이 꼭 나쁜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반면 황 교수는 "입시 지향적인 수업은 학생들의 피로감과 거부감을 높일 수 있다"며 "학부모와 학생이 받는 스트레스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교육 붐을 억제할 수 있는 교육 정책 수정과 더불어 공공서비스 영역에서의 해법 마련을 촉구했다.

특정 분야의 수요가 많다면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관련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아이들이 광장에서 한 시간에 수백 위안씩 내고 줄넘기나 스케이트보드 등을 배우는 동안 근처에서 수십명의 배달원이 6위안(약 1200원)짜리 전병으로 끼니를 때우며 호출을 기다리는 광경이 흔하다"며 "양극화 심화에 따른 사회적 불만 고조가 우려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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