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그 때도 맞고 지금도 맞는 여당,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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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입력 2020-11-0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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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내용보다는 제목 때문에 이따금 회자되는 영화가 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영화다. 이 영화 제목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로 패러디돼 다시 소환됐다.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비꼬기 위해 이 문구를 차용했다. 국민의힘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들 또한 자당 대통령 탄핵으로 벌어진 2017년 5월, 조기 대선에 후보를 낸 바 있다.

‘내로남불’이라는 점에서 두 당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 국민의힘이 제기하는 비판은 귓등으로 흘려도 무방하다. 하지만 국민여론, 구체적으로 청년세대는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는 건 중요하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올해 28세 청년 정치인이다. 그는 “‘후보를 공천해 심판 받는 게 책임 있는 공당(公黨)의 도리’라는 말은 해괴하다. 비겁한 결정을 당원 몫으로 남긴 민주당은 비겁하다”며 민주당 지도부와 이낙연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청년 정치인은 기성 정치인과 달리 정치를 대하는 정치 문법부터 다르다. 공정과 신의를 중요시한다. 그런데도 민주당 의원들은 투표를 전후해 ‘공당의 도리’ 운운하며 판에 박힌 궤변을 늘어놓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투표를 독려하며 SNS에 인증 샷을 올리는 볼썽사나운 의원도 적지 않았다. 최소한의 염치마저 내려놓은 그들만의 정신승리라는 점에서 민망했다.

전 당원 투표 결과는 이미 예상됐다. 적극적인 지지층을 상대로 묻는 투표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투표율을 따져보면 유추할 수 있다. 전체 당원 가운데 21만1804명이 참여해 투표율은 26.35%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86.64%가 찬성했다. 열렬 지지층만 참여했다는 뜻이다. 결국 당원 전체 당원 가운데 18만여 명의 찬성을 압도적인 지지라고 주장하니 민망하다. 보다 정확한 해석은 “당원들 뜻이 모아졌다고 해서 잘못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 대표의 말 속에 있을 것이다.

민주당을 곤혹스럽게 한 당헌 96조는 강제 조항이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새누리당 소속 기초단체장이 당선 무효형을 받아 재선거가 치러지자 “원인 제공자는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 이 조항은 민주당을 가두는 족쇄가 됐다.

보궐선거 두 곳은 모두 민주당 광역단체장의 ‘중대한 잘못’으로 치러지게 됐다. 민주당 입장에서 내년 보궐선거는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서울·부산은 전체 유권자의 30% 가까이 차지하고, 이어지는 대선을 고려할 때 승부처다. 민주당은 특히 서울시장이란 둑이 무너지면 대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들에게 재·보궐 승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 전제조건이다.

이 같은 인식 아래 추진한 전 당원 투표는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이다. 앞서 지난 3월에도 민주당은 이 카드를 활용해 궁지를 모면한 바 있다. 당시 민주당은 야당이 추진하는 위성 정당을 위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선거가 임박하자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택했다. 당시 투표 결과(74.1%)를 발판으로 ‘더불어시민당’이라는 비례정당을 창당했다. 전 당원 투표가 말 뒤집기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은 이래서 나온다.

여권 내부에서는 적어도 내년에는 후보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장사꾼도 신뢰가 중요하다”는 말로 무공천 소신을 밝혔다.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국회 운영위 국감에서 “권력형 성범죄는 중대한 사유”라며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극성 지지층에 파묻혀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시민혁명으로 탄생했다. 그러니 어떤 정당보다 도덕적 우위를 가져야 한다. 걸핏하면 “국민의힘도 그랬다”고 하면 구차하다. 국민의힘과 똑같은 행태를 반복할 것이라면 굳이 정권 교체가 필요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차피 공천을 결정했으니 국민 눈높이에 맞는 후보를 내놓는 데 온 힘을 쏟길 바란다. 그럴 때 공당(公黨)으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다.

덧붙여 빤한 궤변을 자제할 것을 주문한다. ‘공당으로서 도리’ 운운은 정치 혐오를 부를 뿐이다. 잘못은 잘못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진솔한 사과를 토대로 이해를 구하는 게 낫다. 보궐선거는 세금 838억원(서울 571억원, 부산 267억원)이 소요되니 그 책임은 작지 않다. 부질없는 바람이 됐지만 당헌 개정이 꼭 필요했다면 다음 선거 때부터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민주당은 자기 이익이 걸려 있을 때만 수모를 감수한다. 지금의 민주당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했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는 민주당을 기대하는 게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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