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정치권 논란에 통계도 오락가락 ‘5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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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기자
입력 2020-10-2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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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는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다.” 얼마 전 작고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이른바 ‘베이징 발언’이다.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든 기업가가 후진적인 정치 행태를 비판했다는 맥락에서 읽히지만, 사정을 좀더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당시를 기록한 한 언론보도를 보자. “대통령의 개혁의지에도 불구하고 행정규제와 권위의식이 없어지지 않는 한 21세기에 우리가 앞서 나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현재 위치를 지키는 것조차 어려울지도 몰라요. (중략)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반도체 공장 건설을 신청해도 허가가 나오질 않아요. 공장 건설하는데 도장이 1천개나 필요합니다. 첨단산업이라고 우대받는 반도체가 이 정도니 다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정부는 행정규제가 많이 완화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 정권 들어서고 나서도 크게 완화된 게 없습니다.” 1995년 발언이지만,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모양새다.

한국 정치의 후진적 행태는 그 이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발언 내용을 보고받은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격노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부산에서 있을 삼성승용차 공장 기공식에 정부측 인사가 불참하라는 지시도 떨어졌다. 이후 철회됐지만 정부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이 회장은 국내에 있기가 불편해 일본으로 떠나 있었다.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삼성의 노력이 4개월이나 지속됐다. YS 방미 때 한국전 참전 기념비 건립을 위해 500만 달러를 내고, 파격적인 중소기업 지원방안을 발표해야 했다. 그 이후에서야 관계가 회복됐다. 정치 권력이 기업을 옥죈 전형적 사례다.

지금은 나아졌을까. 최근 국정감사 과정에서 발생한 한 ‘통계’ 해프닝은 정치가 여전히 4류, 아니 5류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감정원과 KB국민은행의 부동산 통계 차이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자, 정권 눈치를 본 KB가 슬그머니 매매‧전세거래지수 통계를 중단했다가 부활시킨 사건이다.

야당은 이번 국감에서 KB지수를 인용,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호가를 기반으로 매주 나오는 KB지수는 시장 분위기나 동향을 신속하게 파악하는데 유리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KB국민은행 시세는 은행이 대출할 때 사용하는데, 대출을 많이 받게 하려고 될 수 있으면 시세를 높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현장에선 다양하게 KB시세를 사용하고 있는데 국토부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한국감정원 통계만 내세우고 있다”고 반박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눈치를 본 KB국민은행이 통계를 중단시켰다. 17년 3개월 간 매주 나오던 통계가 끊어진 것이다. 3일 만에 다시 게재되기로 했지만 정치권 논란에 KB가 알아서 길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건희 영결식1[사진=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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