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주의 지구본色]1990년 기자 존슨, 2020년 총리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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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주 기자
입력 2020-10-2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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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직격탄 맞은 英경제...브렉시트에 추가 하방 우려

  • 존슨, 브뤼셀 거주 경험 많아...EU 회의론 담긴 기사 작성도

  • 브렉시트는 존슨의 정치적 산물? 추후 브렉시트 향방 주목

영국 정부가 코로나19 대응 2단계를 적용한 첫 날인 지난 17일(현지시간) 런던 소호지구에 '일시 제한' 표지가 놓여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영국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영국의 10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2.3를 나타냈다. 통상 PMI는 50을 기준으로 경기 확장과 위축을 나눈다. 전월(56.1)에 비해 뚝 떨어지면서 지난 6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서비스업은 영국 경제의 80%를 떠받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부분적 봉쇄 조치가 이뤄지면서 제조·서비스 분야에 직격탄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강행했지만 이탈 절차 등 후속 협상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어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런던 시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거론될 때부터 줄곧 브렉시트를 지지해왔다.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과 적지 않은 인연을 가진 존슨 총리의 행보를 두고 BBC 등 현지 언론은 '애증 관계'로 표현하고 있다. 

◆EU 역사 지켜본 '브뤼셀 베이비', 기자 존슨 

지난해 집권 보수당 대표 겸 총리를 선출한 직후 영국 정치 일번지인 웨스트민스터(의사당) 안팎에서는 존슨 총리가 갖고 있는 '브뤼셀에서의 경험'에 관심을 보였다. 소년 존슨은 10살이던 1973년 아버지를 따라 벨기에로 떠났다. 1973년은 영국이 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한 해다. 존슨의 아버지는 영국 최초의 유럽의회 의원(MEP)이었다.

존슨 총리는 1987년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기자로 입사하면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벨기에 특파원으로 발령 받아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다시 한 번 브뤼셀에 머물렀다. EU의 태동을 지켜보는 계기가 됐던 시기다. EC는 1993년 '하나의 유럽'을 기치로 조약을 체결, EU로 덩치를 키웠다. 벨기에엔 EU 본부도 두었다. 이후 30여년 간 회원국은 28개국으로 늘어났다. 단독 연합체로서 경제력도 대폭 성장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레딩 지역에 있는 로열버스셔병원에서 일일 식당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EU 회원국들이 통합을 위해 애쓰고 있을 때 기자 존슨은 유독 EU에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EU 차원의 규제가 늘면서 영국의 자치권이 위협받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정립한 EU에 대한 회의론을 바탕으로 EU 체제에 반대하며 썼던 기사들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당시 EU 집행위원회(EC) 대변인이던 윌리 헬린은 지난해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유럽 전역의 의료 기관에서 콘돔의 안전성을 점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검토에 들어갔을 때 존슨이 'EU가 콘돔 사이즈를 통일하려 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썼다"며 "자극적인 쪽으로 관심사가 옮겨가면서 곤욕을 치렀다"고 전했다.

존슨의 기사에는 왜곡과 과장이 많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새로운 각도의 기사를 내놔 눈길을 끈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인용문을 조작한 기사가 발각되면서 5년 만에 해고된다. 이후 텔레그래프 등 다른 언론사로 이직했지만 특유의 필력엔 호불호가 갈렸다. 이후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며 불안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여러번 이직해야 했던 기자시절과 달리 정치인으로서의 삶은 승승장구였다. 정계엔 하원의원에 당선된 2001년에 입문했다. 2008년에는 런던시장에 당선됐고 2012년 재선에 성공했다. 테리사 메이 전 총리 내각에서는 외무장관에 임명됐다. 당시 언론들은 어린시절과 청년 시절을 브뤼셀에서 보낸 만큼 존슨 전 장관의 역량이 EU와의 관계 설정에 유리할 수 있다고 보기도 했다. 그러나 EU에 대한 존슨의 평가는 기자시절과 다르지 않았다. 노딜 브렉시트(영국이 EU와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탈퇴하는 것)도 불사하겠다며 연일 강경한 행보를 보였다. 

◆코로나19 변수에 사면초가 신세, 총리 존슨

존슨 총리는 지난해 12월 12일 치러진 제58회 영국 총선을 앞두고 'Get Brexit Done; Unleash Britain's Potential(브렉시트를 완수하고 영국의 잠재력을 일깨우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후 한 달여만인 지난 1월 31일에는 끝내 브렉시트를 단행했다. 최근에는 '국내시장법'을 내놨다. 영국과 EU가 합의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실제로 들여다보면 아일랜드와 붙어 있지만 영국 땅인 북아일랜드를 지렛대 삼아 EU와의 교역을 계속 한다는 게 골자다. EU와의 합의를 바탕으로 만들었던 기존 합의안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주요 쟁점 중 하나인 아일랜드 국경 지대 외에도 어업권 문제 등 영국과 EU 간 대립은 첨예한 상태다. 그동안 EU는 EU 역내 공동시장을 해치는 조건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사실상 영국에 유리한 '국내시장법'을 두고 약속과 다르다며 반발하는 이유다. 존슨 총리의 일방적인 행보에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의 유럽판 등 현지 언론은 기자 시절 작성했던 기사까지 거론하면서 조롱하고 나섰다.
 

영국 총선을 하루 앞둔 2019년 12월 11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집권 보수당 지지자들과 함께 '브렉시트를 완수하라(Get Brexit Done)'라는 내용이 담긴 표지판을 들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도 존슨 총리가 무리한 브렉시트를 시도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평판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런던 시장 시절 EU 탈퇴를 지지한 것도 차기 총리직을 겨냥하려는 계산이 깔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EU와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와 상관 없이 '브렉시트를 잘 완성했다'라는 평가를 받는 게 유일한 목표로 남았다는 것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유리한 브렉시트를 완수하려 했던 존슨 총리에게 변수가 생겼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다. 27일 기준 영국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91만7575명으로, 사망자만 4만5365명에 달한다. 영국 정부는 펍과 바 영업을 잠정 중단했다. 실업률 상승 등이 불가피하다. 통제가 어려운 보건 문제가 발생하면서 영국 경제는 다른 주요 7개국(G7) 국가보다 더 위축됐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평가했다. 

진정한 브렉시트가 실현되는 2021년 1월 1일을 70여일 남긴 상황에서 어떤 것도 결정난 것이 없다. 영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못박은 EU와의 협상 시한(10월 15일)도 넘긴 지 오래다. 브렉시트를 제대로 이뤄냈고 약속도 지켰다는 점을 국민에게 호소해야 하는 존슨 총리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영국 하원을 통과한 국내시장법의 추후 절차 등을 고려하면 EU와의 협상은 늦어도 11월 초까지 정리돼야 한다. 역시 코로나19의 타격을 받은 EU가 영국을 어떻게 압박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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