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종전선언 추진', 北에 잘못된 시그널 보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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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 기자
입력 2020-09-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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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두현 아산硏 수석연구위원 보고서

  • "종전선언에 대한 과도한 기대 버려야"

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열린 제75차 유엔총회에서 영상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코로나19 이후의 유엔은 보건 협력,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경제협력,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전 지구적 난제 해결을 위해 인류 보편의 가치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청와대]


정부·여당인 정부가 종전선언을 추진 중인 가운데 이 같은 움직임이 북한에 그릇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북한이 최근 남북 관계를 일방적으로 단절하고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도발 행위를 지속하는데도 정부가 종전선언을 추진할 경우 북한의 무력 도발을 오히려 유도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북한으로의 잘못된 시그널은 북핵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30일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작성한 '종전선언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탈피해야 비핵화도 평화도 가능하다'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 정책에 대한 이 같은 우려가 담겼다.

차 위원은 해당 보고서에서 "종전선언은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으며, 평화체제 구축 여건이 성숙되었을 때에 효과가 발휘된다"며 "실질적인 평화 여건의 조성 없이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를 약속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는 이미 미국과 남북베트남 간의 '파리평화협정'에서 입증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8년 종전선언 논의가 다시 떠오른 이후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지지하는 유관국이 없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면서 "'정치적 선언에 그치는 종전선언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주변국들의 적극적 보장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29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대선후보 첫 TV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미국의 경우 내달 대선을 앞둬 비핵화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적극 추진하며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상황 관리'에 치중, 급격한 현상 변화를 회피하고 있다고 차 위원은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종전선언이 평화에 대한 한국 국내의 착시를 유발하고, 이는 한·미 동맹의 약화로 연결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차 위원은 또한 당초 종전선언이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현재 종전선언 자체가 목적인 '본말전도'가 일어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북한이 아직 구체적인 비핵화 대상이나 로드맵, 검증 방안 등에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종전선언’이 먼저 추진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며 "무엇보다 종전선언 자체가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는 점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발한다는 보장도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 상황에서 종전선언 추진은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 악용되어 북핵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살라미 전술이란 여러 현안을 부분별로 세분화해 각각에 대한 대가를 받아냄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술을 가리킨다.

차 위원은 "결국 종전선언이 북한의 조기 비핵화를 유도하기는커녕 북한의 비핵화를 더 지연시킬 수 있다"고 거듭 밝혔다.

동시에 "북한이 남북 간 합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하고 도발적 행위를 지속하며, 남북관계 단절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개성공단의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을 추진한다면 자신들이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는 의식을 더욱 굳힐 것"이라고 차 위원은 판단했다. 북한이 '나쁜 행동을 하면 보상이 온다'는 인식을 가지게 돼 도발을 선택하는 데에도 더욱 과감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차 위원은 끝으로 종전선언은 현재 한반도 상황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미·북 간의 종전선언은 양자 간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이루어질 때 추진될 것"이라며 "이를 한국이 먼저 제기할 이유가 없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더욱이 북한이 적극 요구하지도 않는 종전선언을 우리가 추진한다고 해서 북한의 태도가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없다"며 "상징적 종전선언에 집착하기보다는 조속한 북한 비핵화를 통해 평화 체제 수립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6·12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 직전인 같은 해 5월 22일 방미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싱가포르에서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하자"고 처음 제안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과 같은 해 10월 '스톡홀름 노딜'이 이어지며 북·미 간 비핵화 협상 타결은 물론 종전선언 역시 멀어지는 듯 보였다.

이 가운데 문 대통령은 지난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다시 언급, 국제사회를 향해 지지를 호소했다. 이어 27~30일 미국 출장을 떠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던 중 기자들에게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와 종전선언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 본부장과 비건 부장관은 28일(현지시간)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마친 뒤 현지 특파원들에게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에서의 외교 증진을 이어갈 건설적 방안들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특히 비건 부장관은 이번 협의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들이 거론됐다며 북한의 관여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최근 나눈 대화 중 제일 좋았다고 극찬했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비건 부장관이 언급한 '건설적 방안들'과 '창의적 아이디어들'에 종전선언이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보다 앞서 175석의 '거여(巨輿)'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 반대에도 지난 28일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상정할 것을 주장했고, 결의안은 논란 끝에 결국 안건조정위원회로 회부됐다. 조정위원회는 최대 90일간 결의안을 심의할 계획이다.

특히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이날 "지금이 종전선언을 추진하기 적기"라며 종전선언이 지난 2018년 이뤄졌다면 북한군의 남측 공무원 피격 사건도 없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눈길을 끌었다.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송영길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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