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라는 숫자에 갇힌 근로기준법, 21대 국회는 풀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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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종 인턴기자
입력 2020-09-2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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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로기준법 11조 적용범위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 조항 놓고 재계·노동계 이견

이른바 '전태일 3법'의 개정 작업이 본격화된다. 지난 22일 오전 기준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서 10만 명 동의를 얻으면서 국회에서 다뤄지게 된 것. '전태일 3법'은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말한다.

이 가운데 근로기준법에서는 '5'라는 숫자를 개정하는 문제가 핵심이다. 상시 근로자 5인 이상의 사업장에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도록 한 조항인데, 4인 이하 사업장에는 대통령령에 따라 근로기준법이 일부만 적용된다.

그렇기에 대부분 5명 미만 사업장이라면 야간수당도, 휴업수당도 없으며 해고에도 쉽게 노출된다. 5명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당 조항으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들도 속속히 나온다.

정의당과 민주노총은 오래 전부터 법 개정을 요구해 왔지만 매번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는 큰 타격이 올 것이라는 반발 때문에 좌절됐다. 

 
판례로 본 ‘5’를 피하기 위한 꼼수

A씨는 2014년 12월 B사에 입사했다가 B사와 같은 사무실을 쓰는 C사로 다음해 1월 이직했다. 형식상 B사와 C사는 다른 회사이지만 두 회사 모두 한 사람이 대표이사로 돼있고, 지분도 한 사람이 최대주주이며 업무도 유사한 사실상 같은 회사다.
A씨는 2017년 5월 해고되는 날짜 전날 바로 해고예고 통지서를 받는다. 이에 A씨는 지방·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고, 노동위는 구제신청을 인용했다.


하지만 C사는 이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C사 주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홍순욱 부장판사)는 B사와 C사를 사실상 같은 회사이기 때문에 C사가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주장을 받아드릴 수 없다며 해고조치는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A씨의 경우는 '5인 이하'는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라는 점을 악용한 고용주에게 피해를 입은 전형적인 사례다. 이뿐 만이 아니다.  '5인 이하' 기준을 악용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최근 일부 자영업자들은 5인이라는 적용범위 때문에 단기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것도 꺼리며, 편법을 쓰는 곳도 있다. 관련 제보자에 따르면 서울 한 번화가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업체에서는 상시근로자가 10명이 넘는다.

하지만 고용악화라는 이유로 밤 10시가 넘는 근무자에게 야간수당을 주지 않으며, 5인 여부가 적용되지 않는 주휴수당 역시 지급하지 않았다. 상시근로자가 10명이 넘더라도 정규직은 5명 미만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이유다. 사실상 5명이라는 기준을 악용한 것이다.

 
5명 미만 적용 여부, 반론도 만만치 않다...헌재 "사용자 부담 고려해야"

A씨는 4명 이하 상시 근무하는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일하다가 고용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에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11조에 따라 원고 패소 결정을 확정했다. 이에 A씨는 2019년 헌법소원 심판을 곧바로 청구했다.

하지만 헌재는 7(합헌) 대 2(위헌)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사용자 부담이 그다지 문제 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근로자 보호 필요성 측면에서 우선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근로기준법 범위를 선별 적용할 것을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근로기준법을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적용이 하지 않는 것은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해 왔다. 이 같은 취지의 헌법소원도 여러차례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헌재는 매번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계에서도 근로기준법 적용범위 확장을 놓고 반발이 거세다. 지난 6월 있었던 코로나19발 고용위기 대응을 위해 조성된 노사정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서 유연근로제를 비롯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이 주요 의제에서 배제됐다. 해당 의제 자체가 판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등 재계 입장에선 해당 내용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사용자 부담이 큰데 해당 내용은 더 큰 어려움이 있다는 주장이다.

 
전문가 "돈 안 드는 직장 내 괴롭힘 법 적용이 가장 우선"
근로기준법 범위를 놓고 이견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가장 쉬운 부분부터 접근하자는 의견이다. 윤지영 직장 갑질 119 변호사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된다면) 큰 변화 중 하나는 직장 내 괴롭힘 법 적용이다"라며 "실제 해고를 막거나 괴롭힘을 막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건 추가 비용이 드는 문제가 아니다"며 "오히려 적용된다면 효과는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사업주 입장에선 물론 경제적 이유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이해된다"면서 "근본적으로 현재 어려운 사업주 보다 더 어려운 노동자에게 위험이 전가되는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고했다. 그러면서 "이미 고용보험법 등으로 장려지원금 등 인건비가 사실상 안 들면서 채용이 가능하도록 제도가 마련된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도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 전면적으로 적용돼도 성실하게 법을 지킨 사업장은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며 "편법과 악용을 했던 사업장만 약간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도서관 옥상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 모습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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