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2020 개천절 홍해인간(弘害人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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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0-09-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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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익인간 망치는 바이러스는 대체 누구

  • '쌍팔년도 시대'보다 못한 때로 돌아가려는 이들



매년 10월 3일은 하늘이 열린 날, 개천절(開天節)이다. 기원전 2333년(무진년·戊辰年) 우리 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건국을 온 나라가 축하하는 국경일이다. 서기(서양력 기준) 2020년 올해 개천절은 2333+2020, 그래서 단기(단군력 기준) 4353년이 된다. 단기는 요즘 잘 안 쓰지만 옛날에는 자주 썼다. 오래전 달력에는 항상 단기 년도를 함께 적었다.

요즘에는 “라테(나 때)는 말이야”라고 꼰대질을 시작하지만 과거에는 “쌍팔년도에는 말이야”라고 했다. 쌍팔년도는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이 아니라 단기 4288년(서기 1955년)을 말한다. ‘라테’는 귀여운 구석이라도 있는 표현이지만 ‘쌍팔년’은 한국전쟁 직후 무자비하고 엄혹한 군대식 강요, 비합리·몰이성·전근대적인 독재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쌍팔년도에서 무려 65년이 지난 2020년 개천절,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 광화문에 쌍팔년도 시대보다 더 모질고 사나운 때로 돌아가려는 무리들이 등장할 태세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서울 종로구·중구·영등포구·서초구 등 도심권에서 개천절에 9개 단체가 총 32건의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다. 이들이 바로 '신(新) 쌍팔년' 패거리다.

과거 이승만 독재정권은 무고한 시민들이 숨지자 정권을 내놓고 망명이라도 했지만, 이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에 관심이 없다. 코로나19로 국민의 생명권이 위협받고 있는데도, 한 줌도 안 되는 일부 극우 보수세력은 개천절 광화문 집회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괴물들이다.

국민 대다수가 우려하고, 심지어 보수 야당조차 "제발 열지 말라"고 뜯어 말리는데도 그렇다. 서울시와 경찰이 집회 금지를 통보했음에도 막무가내다. 법원도 지난 8·15 집회 허가 과정에서 이들에게 ‘당했던’ 걸 생각하면 당연히 집회 금지 결정을 내릴 전망이다. 하지만 이 괴물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전광훈씨를 지지하는 ‘8·15 집회 참가자 국민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10월 3일 개천절 집회와 관련, “집회 방침을 세워 발표하겠다. 쫄지 말고 한치도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다. 개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거다.
 

[사진=SNS 캡처]


일부 극우 세력은 더 나아가 법원의 집회 금지 여부와 무관하게 “무조건 개최”를 부르짖고 있다. 최근 몇몇 극우 단체는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SNS로 포스터를 뿌리고 있다. 이 포스터에는 10월 3일 오후 2시 집회를 예고하며 ‘Again(어게인) 10·3 14:00 자유 우파 집결’이라고 적혀 있다. ‘어게인 10·3’은 2019년 개천절 집회를 염두에 둔 듯하다. 당시 일부 개신교 단체와 극우 세력, 보수 야당이 합작해 합법적으로 연 집회에는 수만명이 참가했다. 1부 개신교 기도회, 2부 국민대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이번 집회는 법 무시를 예고하고 있다.

'연단 없는 여행용 캐리어 앰프, 팀별로 연사 준비'라는 말은 집회 불허에 대비해 '게릴라식 집회'를 곳곳에서 하겠다는 뜻이다.

포스터에 ‘핸드폰 off’라고 명시해 공권력을 무력화하는 방법까지 적어놨다. 지난 8·15 집회 이후 방역 당국이 집회 후 역학조사를 위해 참가자들의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조사한 걸 미리 차단하려는 계산이다. 불법 집회보다 더 악랄한 불법인 역학조사 방해(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의도가 분명하다. 공권력을 상대로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치상·치사 등 중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개천절 집회에 근무했던 경찰이 만약 코로나19에 전염돼 사망하면 그 전파자는 최고 무기징역이다. 

이 무리는 지난번 광복절 때와 마찬가지로 법원에 옥외집회금지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낼 것이다. 법원은 집회를 강행하려는 시도를 당연히 막아야 한다. 이미 광복절 집회를 통해 대대적으로 감염이 확대됐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법원은 광복절 집회의 전철을 다시 밟아서는 안 된다.

정부와 여당, 특히 경찰은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9일 개천절 집회 강행 움직임과 관련, “참으로 개탄스럽다”면서 “방역을 방해하고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공권력을 주저 없이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경찰청도  "만약 집회가 강행되면 인원 집결 단계부터 차단하고 신속히 해산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원의 결정과 무관하게 집회가 강행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경찰은 단순히 집회 해산뿐 아니라 각종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증거 수집을 철저히 해야 한다. 지난 광복절 광화문 서울 도심 집회에 동원됐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경찰관은 8명에 달한다.

개천절 집회에서 이런 일이 재발할 가능성을 대비해야 한다. 사진 채증 등의 방식을 통해 경찰에게 전염시킨 이들을 샅샅이 가려내 공무집행방해를 포함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들은 불법 시위에 참가하려는 자들을 실어나를 전세버스 업체들을 제재하는 방안을 마련해 미리 예고할 필요가 있다. 충북, 부산, 경남 등 일부 지역 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이 개천절 광화문 집회 운행 거부를 선언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단군 사상의 핵심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초등학생도 안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사람을 널리 해롭게 하는 홍해(弘害)인간은 되지 말아야 한다. 개천절 집회에 나가 가족과 지인, 전국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리려는 이들이 바로 홍해인간이다. 

*이 칼럼은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매주 화요일 방송되는 '아주3D', 매주 1회 팟빵에 공개되는 ‘닥치고 3D’와 함께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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