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문학] 바비인형이 올라온다고? 바비산맥이 올라오는 중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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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20-08-2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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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호태풍 '바비' 명칭의 비밀

미국에서 탄생한 바비인형(Barbie Doll)은 1945년 장난감회사 마텔의 설립자인 루스(Ruth)의 딸 바바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바비를 만들고 이름을 지은 사람은 마텔의 아내인 엘리엇 핸들러(Elliot Handler)였다.

핸들러는 여자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 인형으로 어른 행세를 하며 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남편과 독일 여행을 할 때 독일배우 마를렌 디트리히를 닮은 '빌트 릴리'를 보게 됐는데, 이것을 모방해 바비를 만든다. 문제는 빌트 릴리가 육감적인 여배우의 몸매를 표현하고 있었고, 이 물건이 어린이 장난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독일 배우 마를렌 디트리히]



마를린 디트리히를 묘사한 문장 중에서 최고는 이게 아닐까 싶다.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저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는 차가우면서도 투명한 얼굴이었다. 비어있는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해 어떤 표정으로도 변할 수 있는 그런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서 사람들은 무엇이든 꿈꿀 수 있었다. 그가 본 얼굴은 마치 융단과 그림액자를 기다리는 아름답지만 텅 빈 집과도 같았다.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집. 궁전이 될 수도 있고 매음굴이 될 수도 있는. 안을 누가 채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빈 것과 완성된 것은 어떻게 다른가. 완성된 것은 한계가 너무 많다." 레마르크의 '마를렌 디트리히에 관하여' 중에서

궁전과 매음굴이 동시에 존재하는 집. 고귀하고 요염한 디트리히를 닮은 어린이용 인형. 강조된 가슴과 엉덩이, 잘쏙한 허리의 바비는 놀랍게도 여자 아이들로부터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이 인형은 백인 우월주의와 선정적인 표현, 그리고 최근에는 성평등과 관련된 남성적 시선의 억압, 다이어트의 강요 같은 점들이 지적되면서 자주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바비인형 같다는 말의 뉘앙스에는 물론 예쁘고 몸매가 좋다는 의미가 들어있지만, 머리가 '공허'하다는 비웃음이 살짝 들어가 있다. 이 인형이 주창하는 "예쁘고 날씬함'이란 이데아에 대한 비판의 한 자락일 것이다.

이번에 올라오는 8호 태풍 바비는 베트남에서 제출한 이름이다. 영어로는 BAVI라고 쓰니, 바비인형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 말로는 그게 먼저 연상되니, "제발 바비인형처럼 예쁘고 날씬하게 지나가라"는 네티즌 글들이 올라온다.

베트남의 바비산맥은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맥은 아니지만, 베트남의 '소울'로 여겨지는 산이며, '산의 지배자(누이쭈어)'라고 불린다. 베트남 신화에 의하면 바비산맥의 딴비엔봉에 선띤이라는 산신령이 산다. 중국 옛시에도 '유선명산(有仙名山,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다)'이라 하였으니, 바비산맥은 이 나라의 명산이라 할 만 하다. 산꼭대기에는 호치민 사당이 있기도 하다. 산맥의 서쪽에는 강이 있고 동쪽에는 인공호수가 있어 생물다양성의 천국이라 불린다.

마를렌 디트리히가 올라와 애교만 떨고 갈 줄 알았던 사람들이라면, 이번에 올라오는 것이 베트남 산신령이 사는 산맥이 통째로 올라온다는 점을 감안하여 경계를 늦추지 말기를.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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