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감사 논란] '항명인가 소신인가'...최재형, 제2의 윤석열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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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 기자
입력 2020-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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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성 1호기 감사' 관련 의혹 보도 잇달아

  • 총선 전 '항의성 휴가' 떠났단 의혹 불거져

  • '文 지지율 폄훼' 의혹도...여권 본격 공세

  • 여권, 최재형 '미담 자판기'로 높이 평가

  • "입맛 안 맞으면 찍어내기...文정부 전략"

'미담 자판기'로 알려졌던 최재형 감사원장이 여권 내 '제2의 윤석열'로 전락했다. 최 원장은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한 감사로 청와대·여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감사원은 당초 지난해 12월 감사 결과를 발표했어야 하지만, 감사위원회의 거듭된 회의에도 최종 결론을 짓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감사원이 이미 내부적으로는 월성 1호기 경제성이 저평가됐다는 방향으로 감사 결과를 결론지었지만, 정부·여당의 외압에 공지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감사 결과 발표가 지연되면서 이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은 더욱 격화하는 모양새다. 여권은 특히 최 원장을 둘러싸고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여러 여권 인사는 최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한 최 원장의 소신 발언을 잇달아 폭로하고 있다. 여당에서는 최 원장이 정부에 이른바 '항명'을 한다고 보고 '찍어내기'에 돌입했다.

최 원장이 중심에 선 이번 감사는 결과가 공개될 때까지 정치권의 뜨거운 화두로 다뤄질 전망이다. 여야는 문재인 정부 핵심 공약인 탈(脫)원전 정책 평가에 직결되는 이번 감사 결과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웠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월성 1호기 감사' 의혹으로 갈등 최고조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해 9월 감사원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적절했는지, 또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 이사들의 배임 행위는 없었는지 등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월성 1호기는 당초 2022년에 설계수명이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2년 5925억원을 들여 설비를 보강해 수명이 10년 더 늘어났다.

이후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밀어붙였고, 한수원 이사회는 이듬해 6월 마침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이에 야당이 7000억여원을 들여 개보수한 원전을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쇄 결정을 내린 게 적절하냐고 반발하면서,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은 원칙상 같은 해 12월 말 결과를 발표했어야 하지만, 두 차례에 걸쳐 2개월씩 감사 기간을 연장했다. 이후 지난 4월 9, 10, 13일 감사위원회 회의를 진행했지만 아직까지 감사 결과를 공표하지 않았다.

이 가운데 최 원장이 4·15 국회의원 총선거(총선)를 하루 앞둔 14일 나흘간 휴가를 떠난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구설에 올랐다.

여당에 불리한 감사 결과 발표를 총선 이후로 미루기 위해 일부러 자리를 비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최 원장, 총선 앞두고 '항의성 휴가' 갔나

일각에선 최 원장이 감사에 개입하려는 정부·여당에 불만을 품고 '항의성 휴가'를 떠났다는 관측도 나왔다.

한 달여가 흐른 5월 8일엔 최 원장이 지지부진한 감사 상황에 대한 책임을 원전 감사 책임자인 이준재 공공기관감사국장에게 물어 임명 4개월 만에 산업금융감사국장으로 문책성 인사를 냈다는 의혹이 보도됐다.

최 원장은 같은 날 감사원 내부 실·국장 회의에서 "원장인 제가 사냥개처럼 달려들려 하고 여러분이 뒤에서 줄을 잡고 있는 모습이 돼서는 안 된다"며 "외부의 압력이나 회유에 순치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고 발언했다고도 알려졌다. 정치권 외압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역 없는 감사'를 하라고 주문한 셈이다.

또 감사원이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 감사를 네 차례나 진행했지만 매번 다른 감사 결과를 내놔 '정치감사', '코드감사' 비판을 받았던 사례를 언급하며 "월성1호기 감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4대강 감사 꼴이 날 수 있다"고 질책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6월 2일엔 감사원이 이미 월성 1호기 경제성이 저평가된 것을 확인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한수원의 자체 경제성 평가와 회계법인 경제성 평가 보고서, 제3기관에 이들 보고서에 대한 적정성 여부 관련 연구 용역을 의뢰해 받은 보고서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 월성 1호기 경제성이 저평가된 것을 확인했지만 사안이 민감해 발표를 미루고 있다는 취지의 보도였다.

이에 최 원장은 같은 달 5일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외압에 의해 또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감사 결과 발표를 미루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조사해 이른 시일 내에 월성 1호기 감사를 종결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 지지율 폄훼 의혹까지 터져

그럼에도 감사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고, 최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언급하면서 국정과제를 폄훼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 감사원장이 '대선에서 41%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 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대통령이 시킨다고 다 하느냐'고 발언해 국정 과제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내놨다고 주장하면서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까지 26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송 의원이 2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 원장이 감사원 감사위원회의 직권심리 중에 한 발언이라고 소개한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며 의혹에 힘을 실었다.

백 전 장관은 지난 4월 9일 진행된 감사원 감사위원회의 직권심리에 피감사인으로 출석했는데, 최 원장이 이 자리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이 같은 비난 발언을 쏟아냈다는 얘기다.

이를 계기로 그간 최 원장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온 여권이 본격 공격에 나섰다.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은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최 원장의 친인척이 한국원자력연구원 직원 또는 탈원전 정책을 적극 비판해온 언론사의 논설주간이라는 의혹을 제시하며 이에 대해 최 원장이 직접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민생당도 이날 성명을 내고 "최 원장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을 당선시킨 41% 지지율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며 감사원장직에서 즉각 물러날 것을 촉구했다.

최 원장이 감사위원 제청 문제로 청와대와 대립 구도를 형성했다는 보도는 여권의 '감사원장 때리기'에 기름을 부었다.

최 원장은 이준호 전 감사위원의 임기 만료로 지난 4월 공석이 된 감사위원 자리에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제청해 달라는 청와대 요구를 독립성 보장을 이유로 들며 두 차례 이상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최 원장은 판사 시절 같은 근무지에서 일한 판사 출신 A씨를 추천했지만, A씨가 청와대 인사 검증 과정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말을 아꼈다.
 
판사 시절 '미담 자판기'...소수자에 관심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기구인 건 맞지만 감사를 할 때 진영논리가 반영되면 곤란하다"며 "탈원전 정책의 찬성, 반대를 떠나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에 대한 감사이므로 (감사원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원장은 임명 당시 여권에서 훌륭한 성품과 강직한 소신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별명으로 '미담 자판기'라고 불릴 정도였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2월 장고 끝에 최 원장을 감사원장에 모셔왔다. 청와대는 당시 최 원장에 대해 "1986년 판사 임용 후 30여년간 민·형사·헌법 등 다양한 영역에서 법관으로서의 소신에 따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 보호,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온 법조인"이라면서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보여와 법원 내 미담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최 원장은 사법연수원에 다니던 시절 다리가 불편한 동료를 2년간 업어서 출퇴근시킨 일화로 유명하다. 신상털기식 인사청문회도 무탈히 통과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박근혜 정부 데자뷔"

감사원 내부에서도 최 원장은 '꼰대'스럽지 않은 성품으로 호평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 구내식당이 과거 간부식당과 직원식당으로 나뉘어 있던 때에 직원들이 추운 날씨에 식당 밖으로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목격한 최 원장이 두 식당을 합쳐버린 일화도 잘 알려졌다.

이처럼 취임 당시 칭찬 일색이었던 시절이 무색할 만큼 정부·여당은 최근 최 원장에게 매서운 칼날을 꺼내들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이 요즘 늘 시도하는 전략"이라면서 "임명 뒤에 정부의 경향성과 다르면 비판하고 찍어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여당 지지자까지 떼로 공격하는 게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서 "민주화, 기관의 독립성을 외쳐온 현 정부와 민주당이 정권이 교체된 후에 똑같은 일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이채익 미래통합당 의원도 이날 국회에서 통합당 탈원전대책특별위원회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고 "감사원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들기 위해 여권이 최 원장 찍어내기에 나섰다"며 "청와대가 최 원장이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할 적임자라고 밝혔던 점을 상기하라"고 지적했다.

설상가상으로 여권 내부자까지 쓴소리를 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와대와 민주대를 향해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박근혜 정부의 데자뷔'라며 인사개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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