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점 드러난 ‘수사심의위’...이대로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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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주 기자
입력 2020-07-0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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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 충분히 이해하고 결정했는지 의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기소하고 수사를 중단하라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판단이 나오는 과정에서 수사심의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동시에 수사심의위의 제도적 허점도 드러났다.

5일 검찰 안팎에서 제기된 비판들을 살펴보면, 심의대상 사건 기준의 모호성, 공정성 검증절차 부재 등이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 사건은 수사심의위의 판단을 받기에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검찰청예규인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 제3조는 “위원회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하여 수사 계속 여부, 공소 제기 여부 등의 사항을 심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라는 이유로 수사심의위의 판단을 받았다. 하지만 수사심의위 도입을 권고한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박준영 변호사도 이런 상황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박 변호사는 지난 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대상 사건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전문적인 사건”이라며 “전혀 예상 못 했다. 사실관계를 일반인들이 봤을 때도 좀 판단할 수 있는 사건들, 이런 사건들을 생각했지, 아주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건들은 생각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혐의는 자본시장법·외부감사법 위반 등이다. 검찰 수사도 1년 8개월 걸릴 만큼 난해하고 사실관계도 복잡하다고 한다. 그런데 종교인, 초등학교 교사도 위원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수사심의위가 10시간만에 결론을 내린 것이다.

박 변호사도 “수사심의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법률전문가도 들어 있지만 학계, 시민단체, 문화예술계, 종교계 이런 각계 전문가들이 들어간다. 법률전문가들도 자본시장법 잘 모른다. 나도 잘 모르겠다”며 “법리가 이렇게 어려운 사건 그리고 수사기록이 20만 장이 된다고 하는데, 이런 복잡한 사건들을 그런 분들한테 맡겨서 처리를 하게끔 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사실관계나 법리 파악이 까다로운 사건의 경우에는 ‘건전한 상식’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대한변호사협회 감사인 홍성훈 변호사는 “위원들이 단 하루 만에 사건의 본질적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불기소 결정을 했는지 의문”이라며 “어떤 내용의 사건을 심의대상으로 할지 구체적인 기준 없이 심의대상 사건을 모호하게 규정했다. 향후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위원들의 공정성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양창수 심의위원장이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과 고등학교 동창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양 위원장 스스로 직무수행을 회피하기로 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언론의 문제제기가 없었다면 어찌 됐을까 싶다.

수사심의위 표결 이후에는 “삼성바이오 회계 처리에 불법요소가 없다”며 검찰 수사를 비판한 김병연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여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또한번 논란에 휩싸였다.

박영준 변호사도 인터뷰에서 “자본시장법을 전공하신 교수분이 한 분 들어가서 또 회의의 논의를 주도해 갔다는 것도 이것도 굉장히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분이 어떤 목적 없이 객관성 있고 공정하게 논의를 진행하게끔 도와줬다면 문제가 안 되는데, 그분에게 어떤 결론, 어떤 목적이 있는 상태에서 그런 식으로 논의를 전개, 진행했다면 이거는 사실상 논의 과정이 오염됐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심의는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실제 심의 과정이 어땠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언론에 수차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불법은 없다”거나 “검찰의 수사가 무리하다”고 입장을 밝힌 인물이 심의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제도의 권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 제11조에 따라 검찰과 신청인이 ‘기피 신청’을 할 수 있지만 회의 당일에 명단을 받고, 통상 당일에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위원들의 적절성을 살펴보기가 어렵다.

홍성훈 변호사는 “위원들이 로비 대상이 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가 이번 사건에서는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켰다”며 “운영지침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으로 수사심의위가 부각되면서 향후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채널A 기자가 현직 검사장과 유착해 압력성 취재를 했다는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과 관련해서도 수사심의위가 열리게 됐다. 이번 사건을 지켜본 임은정 부산지검 부장검사도 페이스북에 자신의 사건도 수사심의위를 요청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로펌들도 관련 문의가 늘고 있다고 한다.

홍 변호사는 “좋은 취지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제도가 도입된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문제점이 개선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수사심의위원회 참석하는 양창수 전 대법관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위원장인 양창수 전 대법관이 26일 오전 회의 참석을 위해 대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양 위원장은 최지성 전 삼성 미전실장과의 친분을 이유로 위원장 직무를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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