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혁명가들] "도로 위 지휘자" 최초의 교통예보관 남궁성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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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 기자
입력 2020-06-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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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절 수백만대의 차량과 심리게임 밀당하는 남자

  • 틀려야 맞는 교통예보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개척

  • 10시간 넘긴 서울~부산 이동시간 절반으로 '싹둑'

<편집자 주>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통·모빌리티, 네트워크, 물류유통 등이 유망 산업군으로 주목받으면서 미래 교통의 개발과 상용화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본지는 한국 항만, 도로·철도 등 교통산업의 기반을 닦은 사람들, 현재를 살며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안을 모색하는 '교통혁명가들(Transportation-frontier)' 기획을 총 9회에 걸쳐 보도한다.

꽉 막힌 명절 고속도로를 뚫기 위해 지휘봉을 든 남자. 수백만대의 차량과 밀당하는 남자. 국내 최초의 교통예보관 남궁성 한국도로공사 ICT융합연구실장(현)은 자신의 임무를 위해 10여년간 명절에 가족과 함께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10시간을 넘겼던 서울~부산 이동시간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됐다. 예보는 필연적으로 틀릴 수밖에 없다. 막힌다는 정보가 차를 분산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교통예보'는 누구도 선뜻 시도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지난 18일 경기도 화성시 도로교통연구원에서 만난 남궁성 도로공사 교통연구실장. [사진 = 김재환 기자 ]


"오후 4시에 경부고속도로가 막힌다고 예보하는 건, 그 시간에 그곳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거예요. 즉, 사람들이 몰리지 않게 해서 미래를 바꾸는 거죠."

"흥미롭게도 모든 사람이 우리가 준 정보를 믿고 당초의 결정을 바꿔서는 안 됩니다. 연구 결과 10명 중 3명 정도가 예보를 듣고 의사결정을 바꾸면 교통예보의 효과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나요."

교통예보가 '심리게임'이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만약 영동대교가 꽉 막힌다는 정보에 모두가 잠실대교로 간다면 두 곳의 교통이 원활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로를 지휘하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단순히 미래의 상황을 전달하는 예보와 어떻게 해야 한다고 권고까지 주는 방식이다.

"그동안 축적한 통계를 보면 설과 추석에는 언제 어디가 막히는지 한 달 전부터 알 수 있어요. 문제는 이 정보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전해주는지에 달려 있죠."

"종일 막히는 날에는 현상만 전달해요. 나만 겪는 정체가 아니라 모두가 같다는 사실을 알려줬을 때, 언제 떠나도 똑같다는 걸 알면 운전자들의 마음이 좀 더 편안하거든요."

"행동을 유도할 때엔 도로 상황을 주시하면서 정보 수용성에 따라 메시지를 다르게 보내요. 어디가 막히니까 어디로 가세요, 어디는 극심한 정체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요."

어떻게 보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 보이지 않는 남궁성 실장의 손에 맞춰 고속도로 위 차량은 이리저리 제 갈 길을 바꿔온 셈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교통예보가 성공적인 시도였지만, 첫 시작은 각종 난관과 우려가 뒤따랐다. 틀릴 수밖에 없는 예보를 누군가는 책임져야 했고, 관련 개념을 이해하는 일도 난해했기 때문이다.

때는 2007년 추석인 9월 25일로 돌아간다. 최악의 교통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경부고속도로 청원휴게소 전경을 역사에 남기고, 서울에서 부산 간 예상 이동시간이 11시간을 넘겼던 날이다.

 

2007년 9월 25일 청원휴게소 출구 전경. [사진 = 도로공사]


이를 계기로 도로공사는 단순한 교통정보 전달을 넘어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넛지(Nudge)'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듬해 설부터 교통예보를 시작했다.

"당시에도 교통예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는 건 알았어요. 다만 틀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았다는 게 걸림돌이었죠."

"제가 그 책임을 맡은 건 대단한 사명감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연구자적 호기심이 가장 컸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데, 과연 효과가 있을 것인가 궁금했던 거예요."

공무원이 아닌 연구원 신분의 남궁성 실장을 도로 위 지휘자로 발탁한 데에는 숨은 공신이 있다. 당시 배영석 도로공사 교통처장과 현 김동인 처장, 봉영채 처장이다.

남궁성 실장은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김준현 과장과 오재환 과장을 꼽았다. 십수년간 교통센터에서 명절에 동고동락한 이들이다.

"스물네 번의 명절을 홀로 보낸 아내와 그동안 함께 교통센터에서 자리를 지켜준 김 과장과 오 과장에게 이 기회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지금까지는 도로 위 시간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도로 위 시간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어떻게 도로 위 시간을 가치 있게 할 것인가 연구하고 있어요."

"자율주행차가 보급되면 차 안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고속도로 휴게소를 어떻게 하면 더 풍성하게 할까, IC 인근 맛집 정보를 어떻게 제공할까 등등 무궁무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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