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재계의 달라진 풍경 ..'죄'벌 잡는 한국 vs 찰떡 政經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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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니엘 아시아리스크모니터(주) 대표
입력 2020-06-24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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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니엘]

[노다니엘의 일본 풍경화] 일본의 재계

‘워싱턴 한복판에서 돌을 던지면 머리에 맞을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은 변호사’라는 정치 농담이 있다. 연방정부의 수많은 부서를 상대로 로비활동을 하는 변호사들이 몰려 있는 까닭이다. 이 농담은 한국이나 일본에 어울리지 않는다. 두 나라에서 정치권력과 경제이익이 조정되는 메커니즘이 영미권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이나 일본에서 정치와 경제가 만나는 곳이 있다면 어디일까? 재계단체라고 할 수 있다.

재계(財界)라는 말은 전전 시기부터 일본에서 통용되는 말로 한국에서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재계는 모든 기업인을 포함하는 막연한 개념이 아니라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조직된 단체들을 가리킨다. 일본의 경우,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일본상공회의소(닛쇼), 경제동우회(도유카이)라는 세 조직이 대표적이다.

 

[노다니엘]


이 시스템은 거의 그대로 복사되어 한국에 재현되었다. 전후에 경제기적을 이룬 ‘일본주식회사’(Japan, Inc.)에 이어 등장한 것이 한국주식회사(Korea, Inc.)였다. 인간의 자유가 최대로 보장되는 자유방임주의가 구현되는 것이 시장이라고 믿는 미국 등에서, 일본과 한국에서는 재계가 강력한 정부와 함께 국가경제를 하나의 ‘주식회사’와 같이 기능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여기서 ‘주식회사’라는 말이 쓰이는 것은 정권, 관료, 그리고 재계가 이익의 다양성보다는 공통의 목적을 추구하는 삼자연합(triumvirate coalition)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 커다란 맥락 속에서, 전후 한국재계의 중심이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게이단렌을 모델로 만든 한국경제인협회가 1968년에 전경련으로 확대개편한 것이다. 한일경제의 쌍둥이 단체라고 할 수 있는 게이단렌과 전경련은 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져 왔다.

이 재계단체들이 무엇을 하기에 미국의 로비회사에 비견되는가? 일본의 재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대개 다음과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시장질서의 유지, 국가의 대외경제 주도, 정부나 사회를 상대로 하는 압력단체, 산업사회에 대한 정보제공, 기업사회 역할의 조정, 시장경제 속에서의 이데올로기 창출 등이다. 실로 막강한 기능이다. 이러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대표적인 사회조직이 재계이고, 특히 대기업의 이익을 대표하는 모델이 일본의 게이단렌이다. 따라서 일본 정치경제의 또 하나의 특징인 ‘정경유착’의 핵심은 집권당과 게이단렌의 유착으로 귀결된다.


삼위일체의 정경유착

전쟁에 패한 일본이 폐허가 된 국토에서 불과 20년 만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두고 수많은 설명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보수정당인 자민당과 국가고시를 패스한 우수한 관료들, 그리고 개인의 부의 극대화보다는 회사와 사회의 발전을 도모한 재계의 연합이라는 설명이다. 이 삼자연합 중에서 국내외의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을 아우른 대표적인 존재가 게이단렌이다.

게이단렌의 뿌리는 1922년에 설립된 일본경제연맹회이다. 이 단체가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1946년에 경제단체연합회가 되고 1961년에 현재의 사단법인 형태를 갖춘다. 현재 게이단렌에는 1400개 이상의 대기업과 200개 이상의 산업 및 지방별 단체가 가입되어 있다. 이러한 거대성에 비추어 게이단렌을 일본재계의 총본산이라고 하며, 그 회장을 ‘재계의 총리’라고 하기도 한다.

일본 정치경제에서 정계와 재계의 유착관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모델 케이스는 이케다 수상과 재계의 ‘4천왕’의 관계일 것이다. 전후 일본의 재계가 가장 강성하던 시기에 ‘재계4천왕’(財界四天王)이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전후 부흥을 주도한 정치인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1899~1965)를 재계에서 떠받친 네명의 인사들이었다. 고바야시 아타루(小林中) (일본개발은행 총재), 미즈노 시게오(水野成夫) (경제동우회 간사), 나가노 시게오(永野重雄) (일본상공회의소 회두), 사쿠라다 다케시(櫻田武) (일본경제연맹 회장)의 네 사람이다.

이케다는 교토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국가고시를 통하여 공무원이 되어 대장성에서 근무하다가 1949년에 정치에 입문하여 대장대신, 통상산업대신, 경제심의청장관으로서 전후 일본경제회복의 주역으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총리로서 그야말로 전후 일본의 경제성장을 주도한다. 그가 전후 부흥의 초석을 놓는 데는 4천왕이 이끄는 재계의 협조가 결정적이었다. 말을 바꾼다면, 일본 정치경제의 핵심적인 요소의 하나였던 정경유착의 모델이 이때 꽃피웠다고 할 수 있다.

이 재계의 4천왕을 이케다에게 소개한 사람이 소위 재계사천왕의 스승으로 불리던 미야지마 세이지로(宮島清次郎)라는 사람이었다. 전후 일본정치와 외교의 큰 줄기를 만든 정치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동경대 동급생이었던 미야지마는 일본공업구락부(日本工業倶楽部)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재계를 리드하였고, 나중에 이케다를 대장대신에 추천한 재계의 거물이었다.


아베신조와 재계

그러면 일본의 정경유착은 지금도 지속되는가? 당연하다. 규제완화, 민영화, 국제화 등 일본 정치경제의 변천을 설명하는 개념들이 많지만,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긴밀하게 의견을 조율하고 협조하는 현상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오히려 아베 시대에 들어 더 강화되어,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특별히 조사한 자료를 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남짓한 시기에 총리 아베를 면담한 재계인 톱5를 보면 다음과 같다(당시의 직책).

가사이 요시유키 (JR동해 명예회장) 41회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게이단렌 회장) 23회
미타라이 후지오 (게이단렌 명예회장) 19회
고모리 시게타카 (후지필름 회장) 18회
이마이 타카시 (게이단렌 명예회장) 18회

이 다섯 사람의 기록만을 보면 한 사람이 5년간에 평균 24회, 즉 1년에 5회 정도 만난 것이 된다. 한국의 대통령이 재계인사들을 청와대에서 한 사람당 1년에 5회 독대를 했다면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보도될 것이다. 그만큼 일본에서는 정치지도자와 재계 리더가 만나서 의사소통하는 관례가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이 5년간 41회 독대를 한 가사이라는 인물이다. 일년에 8번 아베와 독대를 한 것이다. 1941년에 태어난 가사이는 1963년에 동경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일본국유철도회사(나중에 민영화 후 JR)에 취직한다. 그때부터 2020년에 현직을 물러나 명예회장이 될 때까지 60년 가까이 철도맨으로 근무하였다. 평생 철도맨이었지만, 가사이는 우익적인 사상을 견지한 사람으로, 한국에도 알려진 우익단체인 ‘일본회의’의 간부일 뿐 아니라, 아베가 추구하던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회의’라거나 ‘교육재생회의’의 핵심멤버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정치사상 최장기 총리에 머물고 있는 아베에게 다양한 조언을 하였다. 예를 들어, 아베와 오랜 기간 불편한 관계에 있던 NHK의 신임회장으로 마에다 아키노무라는 금융인을 추천한 것도, 코로나사태에 직면하여 ‘리먼쇼크의 대응을 넘는 규모의 대책’을 진언한 것도 가사이라고 전해진다. 정치가 아베에게 가사이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베정권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조언과 지지를 보내온 가사이를 일본의 평론가들은 ‘아베의 후견인’이라고 부른다.


일본과 한국의 달라지는 그림들

그러나 긴 시각으로 보면 일본재계를 대표하는 조직은 역시 게이단렌이다. 현재 1619사를 회원으로 가지고 있는 게이단렌의 회장단을 보면 회장 나카니시 히로아키(히타치제작소 회장) 이하, 대성건설, 일본제철, 미쓰비시전기, 도요타자동차, 동일본철도, 전일본항공, 스미토모상사, 미쓰비시UFJ금융그룹, 제일생명, NTT, 미즈호금융그룹, 미쓰이스미토모금융그룹, 미쓰이물산 등의 최고책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경제가 부상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던 1960년대부터 수십년의 기간에, 일본 게이단렌이 가졌던 위상을 한국의 전경련도 가지고 있었다. 두 나라의 산업발전방식이나 정치경제 관계가 같은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었고, 그 맥락 속에서 한국재계의 꽃은 전경련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게이단렌이 지금도 꽃을 피우고 있는 반면에, 한국의 전경련은 시들어가고 있다.

과거 동일했던 일본과 한국의 정치경제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변화의 시발점은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었다. 2017년 4월 14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전경련 시대가 지나갔다"고 선언하며 "정경유착과 특권경제가 만든 불평등경제를 바로잡을 때가 왔다"고 하였다. 전경련은 2016년의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정부나 여당 주최 행사 등에서 경제 5단체에서 사실상 제외되고, 전경련의 대표가 대통령과 마주앉는 일은 없었다.

근래에 전경련이 집권여당 사람들과 만난 것은 2019년 9월 15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전경련을 찾아 경제활성화 방안을 논의한 것이 유일한 예외이다. 그리고 2개월 후인 2019년 11월 15일에, 마치 까마귀날자 배가 떨어지는 형태로, 전경련은 게이단렌과 오랜만에 한일재계회의를 열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때 두 단체는 “어떠한 정치·외교관계 하에서도 민간교류를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말은 희망에 불과할지 모른다. 2016년 말에 600여개 회원사를 가지고 있던 전경련은 지금 회원기업을 발표하지도 않는다. 초대회장 이병철 이래, 이정림, 김용완, 정주영, 구자경, 최종현, 김우중, 손길승 등 한국경제의 기둥이었던 스타들이 회장을 역임한 전경련. 그러나 그 이름은 지금 신문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그 자리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채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시로 재계의 리더들을 만나 의견을 듣는 일본통치자의 행동을 요약하는 개념이 효율성이라면, 재계의 리더들을 죄악시하는 듯한 한국통치자의 행동을 요약하는 개념은 정의감인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인 정의를 논할 때, ‘질서있는 시장’(orderly market)이라는 용어가 종종 사용된다. 인간의 욕망이 분출되어 각축하는 시장에는 그 사회구성원이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모종의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서는 특정한 정치권력이 정하는 것이 아니고 무수한 사회구성원의 자연적인 행동과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얻은 경험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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