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법보다 더 법다운 시행령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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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아 기자
입력 2020-06-1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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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이 등장하기 전까진 모바일에선 문자 메시지로만 대화가 가능했다. 단체 공지를 문자로 보내려면 하나하나 상대방 전화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그나마도 백 명 이상의 사람에게 한꺼번에 같은 문자를 보내는 건 휴대전화에선 불가능했다. 카카오톡을 포함해 텔레그램과 왓츠앱 등 내로라하는 메신저 서비스들이 등장한 현재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불특정 다수의 대중과 연결해 소통할 수 있게 됐다. 

모바일 기반의 초연결 시대는 각종 부작용도 낳았다. 국내의 많은 이용자가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으로 '망명'하게 된 계기도 2014년 국정원이 카카오톡 대화를 감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였다. 당시 텔레그램은 강력한 보안성이라는 장점으로 주목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텔레그램의 장점은 최근 n번방 사태로 허위 사실과 불법 콘텐츠를 몰래 돌려보는 무법 공간으로 전락하게 된 기반이 됐다. 

n번방 사태 이후 국회는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아동과 청소년 음란물이나 몰카와 같은 불법 촬영물을 삭제하고 접속이 차단되도록 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일명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사업자들도 자신의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가 주고받는 콘텐츠에 대한 관리 감독 책임이 있다는 취지다.

일견 타당한 취지 같지만 실제 서비스를 두고 법을 어떻게 적용할지 상상해보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인터넷 사업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 정보의 범위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일반에 공개돼 유통되는 정보'다. 카카오톡의 1대1 채팅방은 일반에 공개된 것이 아니므로 여기서 제외된다. 하지만, 수백명이 함께 있는 단체채팅방은 일반에 공개된 정보일까? 아닐까?

만약 인터넷으로 드론촬영이 금지된 구역에서 찍은 영상을 공유했다고 가정하자. 불법으로 찍은 것이므로 이 또한 n번방 방지법에 따라 인터넷 사업자가 접속차단 같은 조치를 해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몰래 찍었다면, 객체가 동의하지 않은 촬영물인 몰카이므로 이 역시 인터넷 사업자의 조치 대상이다. 결국 인터넷 사업자가 일일이 콘텐츠를 보고 불법 소지가 있는지를 살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지난 20대 국회를 통과한 n번방 방지법은 시행령 제정 작업을 거치는 지금도 인터넷 업계를 중심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업계는 모법보다 현명한, 그러면서도 본래 법 취지를 지킬 수 있는 시행령을 만들어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만 인터넷이라는 가변적인 공간의 특성을 모두 포괄할 시행령이 과연 가능하냐는 의문은 남는다. 19일 오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n번방 방지법 대안을 주제로 열린 체감규제포럼에 참석한 한 참석자는 "지금은 비판보다 시행령으로 보완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미 법이 만들어진 상황에서 대안을 찾기가 마땅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차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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