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혼란 속에 남은 하나의 질문…나는 뭘까?"…영화 '사라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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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0-06-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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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 영화 '사라진 시간'

지난 18일 개봉한 정진영 감독 연출작 영화 '사라진 시간'[사진=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컷]

시골 마을의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수혁(배수빈 분)과 그의 아내 이영(차수연 분).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전원생활의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그러던 중 의문의 화재 사고로 갑작스레 죽음을 맞고 마을은 발칵 뒤집어진다.

사건을 수사하던 형구(조진웅 분)는 화재 사건에서 묘한 낌새를 눈치챈다. 비밀을 숨긴 해균(정해균 분)을 필두로 마을 사람들의 진술도 앞뒤가 맞지 않았기 때문. 형구는 적극적으로 수사망을 좁혀가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경계한다.

수사에 진척이 보일 무렵 형구는 마을 어른이 건넨 술 한잔에 정신을 잃는다. 그가 깨어난 곳은 화재 사건이 발생한 그 집. 놀랍게도 새까맣게 불탔던 집이 멀쩡해지고 마을 사람들은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집도, 가족도 심지어 직장까지 형구가 기억하는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증발해버린 상황. 형구는 마을 사람들의 기묘한 태도에 자신까지 의심하게 된다.

영화 '사라진 시간'은 '왕의 남자'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 '택시운전사'까지 4편의 천만영화부터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풀잎들' 등 다양성영화를 비롯해 드라마, 연극까지 전방위적 활약을 펼쳐온 연기 경력 33년 차 정진영이 오랜 기간 꿈꿔왔던 영화감독에 도전한 작품이다.

고교 시절부터 영화를 꿈꿨던 정진영은 긴 고민과 갈등 끝에 4년 전부터 '사라진 시간'을 준비했다.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제작사까지 차리는 남다른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기존의 어법이나 규칙을 모두 깨고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자유롭게 낯선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운을 뗀 작품인 만큼 시퀀스마다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사건과 전개 방식을 보이며 보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수혁과 이영 부부의 사연으로 시작해 주인공 형구의 이야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하지만 유연하게 규칙과 문법을 비켜나간다. 그 혼란을 느끼는 건 고스란히 관객 몫이다.

흥미로운 점은 보통의 영화적 문법을 여러 차례 뒤집는다는 점이다. 예측할 수 없는 상상력과 철학적 질문으로 가득하다. 또 극 중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나 상황을 어떤 설명이나 해석도 붙이지 않으려는 태도도 반갑다.

이처럼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혼란'한 감정은 연출을 맡은 정진영 감독의 의도다. "삶의 정체성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 의식을 미스터리 드라마 형식을 빌려 말하고 싶었다"라는 정 감독은 삶 전반에 걸쳐 자기 자신에게 물었던 '나는 뭘까?'라는 질문을 '사라진 시간'을 통해 전하고 있다.

그러나 '사라진 시간'이 혼란으로만 가득 찬 건 아니다. 곳곳에 심어놓은 질문과 힌트를 발견하는 재미들도 느낄 수 있다. 가령 뜨개질 수업에 열중하던 이영의 물건이 형구의 집안에서 발견되고 영화 초반 마을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수혁과 이영 부부의 비밀이 뜨개질 강사와 형구에게도 공통으로 나타나는 증세라는 점 등 예상치 못한 인물들 간의 연결고리와 자아를 찾아낼 수 있다. 형구의 또 다른 자아들을 유추하는 과정들도 새로운 재미를 안겨 줄 수 있다.

모든 규칙과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지만, 관객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미스터리 드라마·스릴러 장르를 기대했던 팬들이라면 철학적 질문만 늘어놓는 '사라진 시간'이 맥빠지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편집 등 기술적인 부분도 투박해 허술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조진웅을 비롯해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한데 모아놨지만, 여타 작품에서 본 연기와 크게 다를 건 없다. 18일 개봉. 15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1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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