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동학개미.로빈후드 게임하듯 주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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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0-06-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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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시대에 눈뜬 투자맛 세계2030, 株님을 외치다

  • 밀레니얼 세대의 증시 대반란

 

기지개 켜는 주식시장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9일 명동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가 표시돼 있다. 

뉴욕증권거래소 모습, 2020, 6월5일 (AP/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라는 초대형 위기를 맞은 지난 3월 주식 가격이 30% 넘게 폭락하자 저금리 시대에 은퇴 자금을 증시에 맡겼던 많은 고객들은 공포에 질려 보유주식을 팔아치우며 현금화하기 바빴다. 이런 폭락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겁없는 20·30대 개인 투자자들이 증시로 몰려왔다. 은행에 맡겨둔 뭉칫돈을 빼서 대형 기술주와  항공, 크루즈 등 낙폭 과대주까지 쓸어담는 주식사기 열풍은 과거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폭락했던 주가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가 코로나19 발병 이전 수준에 근접했거나 이미 넘어서면서 주식시장에서의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 '동학개미'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로빈후드 트레이더'를 비롯한 밀레니얼 세대들의 증시 대반란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1982~2000년생)는 그동안 투자자로서는 젬병이었다. 암호화폐나 마리화나 또는 변동성이 심한 비우량 주식 등에 무모하게 투자해 큰 손해를 보거나 아니면 너무도 보수적 성향이라 주식시장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마비되고 주식이 마구 곤두박질하자. 그들은 '이제 돈을 벌 때이다(It's time to do money)'라고 생각하며 주식을 마구 사들이며 공포에 떨던 미국 증시를 위쪽으로 끌어올렸다. 
2020년 상반기 세계 주식시장이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베어마켓(bear market)에 진입했다가 가장 빠른 기간에 V자형 회복을 보낸 모습도 특이한 모습이지만, 그동안 눈에 안 보이던 젊은 소액투자자들이 대량 유입되어 온라인 게임처럼 주식을 거래하면서 파워집단으로 커지는 모습은, 기존 월가의 베테랑 투자가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밀레니얼 세대들을 겨냥한 무료주식 거래엡인 '로빈후드'를 통해 금융 상품을 거래하는 개인 투자자를 '로빈후드 트레이더'라고 부른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블라디미르 테네프(Vladmir Tenev)와 바이주 바트(Baiju Bhatt)가 2013년 설립한 이 앱은 이용자수가 지난해 말 600만명에서 5월 말에는 1300만명으로 폭증했다. 이용자 평균연령은 31세로 매우 낮다. 이 앱은 월가의 기존 증권사들과 달리 소액의 개인투자자들도 쉽게 계좌를 만들 수 있고 주식과 ETF , 옵션과 금, 가상화폐를 거래할때 매매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으면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기관 투자가들이 경제 동향이나 기업과 시장의 광범위한 정보와 데이터 그리고 면밀한 가치 분석을 기준으로 거래를 하는 것과 달리, 로빈후드는 자신들의 직관에 따라 시장이나 종목의 흐름을 읽으며 재빠르게 움직이는 '데이 트레이더'가 많다. 15일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지난 3월의 시장 바닥은 소형주 중심의 러셀2000에 대한 로빈후드 포지션의 단계적인 확대시점과 일치했다. 이들이 보여준 급등 직전의 완벽한 매수 타이밍은 미 언론과 시장 전문가로부터 감탄을 자아냈다. 이들은 중소형 주식뿐 아니라 우량주 매입에도 적극적이다. 한국의 동학개미들이 삼성전자를 많이 사들였듯이 로빈후드는 애플이나 아마존 구글(알파벳) 테슬러 넷플릭스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형 우량 기술주를 많이 거래하면서 수익을 냈다. 일부 투자가들은 상식을 벗어난 all-or-nothing(전부냐 제로냐) 전략으로 시장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항공주와 여행주뿐 아니라 파산보호를 신청한 렌터카 회사 헤르츠나 백화점 체인 JC페니 등에 '묻지마 투자'에 나서면서 이들 주식의 고공행진을 이끌기도 했다. '오바마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지난달 초 항공주를 전량 매도했지만, 최근 주식은 급등세를 보이면서 그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지난달 헤르츠  주식 39%를 매도하여 17억 달러 손실을 본 월가의 유명 행동주의자 칼 아이컨도 어이가 없을 듯하다. 자신이 빠져 나간 뒤 주식이 5배 가까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밀레니얼 세대들은 젊은 만큼 위험선호 경향이 짙다. 겁먹은 보수적 성향의 기성세대 고객들이 시장을 빠져 나갈 때, 아니 월가의 베테랑 투자전략가들마저도 돈을 날릴까 전전긍긍하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이때다 하며 주식을 사들이는 베팅에 나선 것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2010년 이후 지속된 고수익의 장기간 상승장세에 올라탈 기회에서 소외되었던 세대이다. 그리하여 코로나19 위기가 펼쳐놓은 이번 장을 천금 같은 기회로 보고 너도나도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많은 경제 매체와 주식 전문가들이 현 장세를 2000년대 닷컴 버블과도 비유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파산 신청을 한 헤르츠가 폭등한 것을 '좀비 랠리'라고 비판했다. 투자 경험이 부족한 젊은층이 너도 나도 고위험 고수익 투자에 나서는 것을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에서 벌어지는 도박에 비교되기도 한다. 억만장자 투자가인 레온 쿠퍼먼은 15일 CNBC의 '하프타임 리포트'에 출연해 로빈후드를 겨냥해 "그들은 그저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결국 눈물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한 트레이더는 별다른 호재도 없이 비우량 주식이 급등하는 등 "최근 증시는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단기간에 한몫을 노리는 개미 투자자들의 과열로 주식 버블 붕괴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월가의 엘리트들이 개미 투자가들의 공격적인 베팅을 비난하고 나선 것은 개미들에 비해 자신들이 상대적 수익률이 저조한 데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아직 최후의 승자는 가려지지 않았지만 지난 몇 개월의 '비상식적'인 주가 랠리를 보면, 주식 매매를 반드시 자금력과 정보력이 뛰어난 시장 금융 전문가들에게 의존해야 성공을 한다는 법칙도 무너지는 모습이다. 소위 '펀드 매니저 사망론'까지 나오면서, 그동안 오랫동안 시장에서 을(乙)에 머물렀던 미국 개미들이 월가의 엘리트들을 궁지로 몰고 있는 증시의 패러다임 대(大)변화를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 포스트에 따르면 자산운용사 배스킨웰스메니지먼트의 CIO(최고투자책임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지난 3월 자신은 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져 주식을 당장 매도하려는 베이비부머 세대 고객들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또한 수년 동안 저축했던 은행예금을 모두 털어 주식에 올인 하려는 밀레니얼 고객들의 투자열기를 진정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밀레니얼 세대 고객들은 과거 통념과 달리 주식 투자에서 중요한 '예지력(foresight)'과 '인내심(patience)' 그리고 시장을 멀리내다보는 안목까지 갖춘 스마트한 투자자도 많다는 것을 인식하게된 것은 자신이 얻은 교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까지 코로나19 이후 상승장을 주도한 밀레니얼 세대의 반란이 먹혀들어간 첫번째 이유는 막대한 유동성이다. 그동안 유례없는 수준의 돈 플기에 힘입어 마켓랠리가 별다른 큰 조정 없이 지속되면서 보다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던 로빈후드 등 밀레니얼 세대를 환호하게 만들었다. 실물 경제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불과 몇달 전 폭삭 주저앉았던 세계 금융시장은 이전으로 거의 돌아온 상태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각국의 돈 플기로 촉발된 '유동성'이 괴력을 발휘한 덕분이다. 몇달 만에 전고점을 회복하는 이런 랠리는 세계의 내로라하는 증권 전문가들도 예견치 못했던 빠른 속도의 V자형 회복이다. 최근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나 뱅크오브아메리카의 투자 전략가들은 뉴욕증시의 계속되는 랠리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주가지수가 다시 조정을 받아 가파르게 하락할 것이라던 종전의 전망이 빗나가자 정부의 통화와 재정 부양책이 주가의 하락을 제한하고 있다며 슬그머니 지수의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미 경제가 봉쇄된 이후 미국 연준(Fed)은 제로금리와 더불어 회사채 매입과 무제한 돈풀기 등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훨씬 강도 높은 부양책을 내놓았다. 미 금융시장은 지금까지 미국 GDP의 15%에 해당하는 3조 달러가 풀리면서 유례없는 유동성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지난 5월부터는 코로나 봉쇄를 풀고 경제가 재개되면서 경기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특히 최근 발표된 고용과 소매판매 등 경제지표는 'V'자형 반등 시나리오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거기다가 개미들의 손엔 수천 달러의 재난 지원금 '공돈'까지 생기며,  이들 자금 중 상당액이 증시로 유입되고 있다. 미 연준은 지난주 공개한 점도표(dot plot)에서 오는 2022년까지 제로금리가 유지될 것임을 시사했다. 제로금리에 역사상 유례없는 유동성 장세는 자연스럽게 개인들을 주식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하고 있다. 거기다가 1987년 블랙 먼데이 이후 10년마다 경제위기를 경험했지만 위기 때마다 정부가 나서 주가를 부양했던 학습효과도 개미들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이들의 '월가진군'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궁극적으로 실물경제 회복과 기업실적개선과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은행은 지난 8일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2%로 급격히 떨어뜨렸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대유행이 예상보다 오래갈 경우 성장률을 -8.0%, 단기에 발병 억제책이 나올 경우 -4.0%로 예상한 두 가지 시나리오도 함께 제시했다. 세계경제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지만, 주식시장은 이미 3분기 반등을 선반영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에서도 기업의 실적과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유동성 장세에 힘입어 주가는 큰 탄력을 받았다. 기관과 외국인의 매도세에 불구하고 '동학개미운동'으로 몇달 만에 전고점을 회복하는 랠리를 보인 이후 불안한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주가는 경제의 전체적인 움직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금은 유동성 장세와 하반기 경기회복 기대감으로 주식시장 랠리가 펼쳐지고 있지만, 어느 순간 주식이 지나치게 올랐다 싶으면 자연스럽게 조정을 받는 것은 시장의 원리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우려는 코로나19의 재2확산 조짐이다. 증시 격언에 "황소와 곰은 돈을 벌지만 돼지는 죽음뿐이다"가 있다. 낙관론이든 비관론이든 분명한 투자 목표와 전략을 갖고 있으면 약세장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탐욕을 갖고 너무 크게 베팅하거나 위험한 투자를 오래하게 되면 투자에 실패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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