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제주도 돌담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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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20-06-0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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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최근 감동적인 유튜브 하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네소타 주 방위군 작전 차장이 시위대와 나눈 2분짜리 동영상이다. 샘 앤드류스 중령은 “우리는 여러분들이 평화롭게 모여 수정 헌법 1조(언론자유)를 이야기할 자유를 존중한다. (조지 폴로이드를) 기념하고 추모할 수 있도록 물러나겠다”는 말과 함께 방위군을 뒤로 물린다. 영상이 화제가 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방위군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여서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도 강단 있는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군을 동원해서라도 시위를 진압하겠다는 트럼프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군 동원은 마지막 수단이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브리핑은 CNN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에스퍼는 ‘충성파’로 알려진 인물이다. 언론은 경질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쉽게 말하면 둘 다 군 통수권자인 트럼프에게 대놓고 항명한 셈이다.

이게 자유로운 미국적 사고 때문에만 가능한 일일까. 그렇지만 않다는 생각이다. 그들이라고 명령 체계를 어겼을 때 돌아올 불이익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경질, 파면은 물론이고 심지어 인신 구속까지 각오해야 한다. 그들이 소신을 지킨 이유는 헌법적 가치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군 통수권자 명령보다는 법과 소신을 따른 것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만연된 일사분란함과 대비되는 부러운 장면들이다.

국회의원이 표결을 했는데, 당론과 다르다는 이유로 징계한다면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금태섭 전 의원에 대한 징계는 우리사회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 민주당이 표결을 이유로 징계한 것은 정치권에서조차 이례적으로 받아들인다. 금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 법안에 표결에서 기권표를 던졌다. 민주당은 강제 당론을 어겼기에 징계는 합당하며, 경고는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일반적인 시각은 부적절하다는 게 중론이다.

먼저 헌법과 국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 헌법(46조 2)은 ‘국회의원은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국회법(114조 2)은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규정돼 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강제 당론은 무조건 따라야 하며, 어긴 것은 해당 행위이기에 징계는 합당하다고 한다. 강제 당론이 그나마 당위성을 가지려면 치열한 반대 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데 당시는 반대 토론이 활발하지 못했다. 대통령 핵심 공약이라는 이유로 짙은 침묵이 지배했다.

반대 목소리가 거세된 집단사고는 참사를 부른다.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고 원인을 집단사고에서 찾고 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표결마저 당론 안에 가둬야 하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특정 정당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당이 정하면 무조건 따르라는 것은 전체주의 사고다.

국회에서 법안 표결을 100% 공개하는 이유가 있다. 책임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소신껏 표결하되 책임도 지라는 뜻이다. 그래서 표결을 마치면 회의장 전광판에 찬성, 반대, 기권이 표기된다. 누가 어떻게 표를 행사했는지 알 수 있다. 덧붙여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그것은 정당이 아닌 유권자, 즉 국민에게 권한이 있다. 금 전 의원은 21대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소신을 지킨 대가로 이미 유권자들로부터 정치적 판단을 받았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이중징계는 지나치다는 말이 나왔다. 이 때문에 징계 의도를 의심하는 눈길이 적지 않다. 괘씸죄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평소 금 전 의원은 김해영, 박용진, 조응천 의원과 함께 당내 소신파로 지목됐다. 금 전 의원은 조국 전 장관 인사청문회 때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지지층은 그를 거칠게 성토했다. 그래서 경직된 징계는 ‘민주 없는 민주당’이란 비판을 떠올리게 한다.

내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조직은 무너진다. 말할 수 있는 자유, 비판할 수 있는 권리. 지난 세월, 민주당이 추구해온 가치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민주당은 당내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 강제 당론과 진영논리만 득세하고 있다. 험난했던 민주주의 여정을 돌아볼 때, 지금 민주당을 지배하는 교조주의는 위험하다. 민주당은 얼마 전, 임미리 교수를 고발하기도 했다. 금 전 의원 징계 또한 비판에는 귀를 닫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말과 글을 묶는 건 민주당 DNA가 아니다. 계속되는 경직된 대응은 우려스럽다. 미국이 강대국인 이유는 소신을 존중하고 비판을 허용하는 사회적 시스템에 있다. 제주도 돌담은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꽉 막힌 콘크리트 담장과 달리 바람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내부 비판이 자유로울 때 민주당은 건강하다. 지난해 7월, 북한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찬성은 99.98%였다. 엊그제 홍콩보안법도 중국 전인대에서 찬성 99.7%로 통과됐다. 설마 민주당이 요구하는 일사분란함이 이런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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