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귀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는 무대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20-05-29 09:2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임병식]

최근  ‘챈스 일병의 귀환(Taking Chance)’이란 영화를 봤다. 전사자 유해를 고향집까지 운구하는 여정을 그린 실화다. 해병대 중령이 주인공이다. 그는 이라크 전쟁에서 숨진 챈스 일병을 운구한다. 숨질 당시 챈스는 19살. 중령은 자신과 출신지가 같은, 나이어린 챈스가 전사한 것에 자괴감을 느껴 자원한다. 델라웨어 도버 공군기지에서 와이오밍까지 가는 먼 거리다. 비행기만 두 번 갈아타야한다. 여정 중 운구를 만난 시민들은 정중하게 예를 표시한다. 항공기 기장과 승무원, 승객들이 보여준 행동은 절제된 감동을 준다.

미국인들은 현역은 물론 퇴역 군인, 전사자를 끔찍이 예우한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겐 조건이 없다. 영화에서도 시민들은 깍듯한 예의를 갖춘다. 또 다른 영화 ‘라이언 일병’도 비슷하다. 낙오된 병사 한명을 구하기 위해 소대 병력이 나선다. 이렇듯 국가는 마지막 한명까지 온힘을 다한다. 군인들은 자신들 뒤에 국가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희생을 망설이지 않는다. 걸핏하면 손가락질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 군은 최근 사기가 밑바닥이다. 잦은 사고 탓도 있지만 과장된 비난과 매도 때문이다.

육군이 뮤지컬 '귀환'을 무대에 올린다. 지난해 초연에서 대박을 친 작품이다.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다. 육군이 재연을 결정한 이유다. 1950년 6·25전쟁에서 70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아직 수습하지 못한 유해는 13만3000위에 달한다. 주인공은 참전 용사다. 그는 유해를 찾아 산을 헤맨다. ‘다시 찾으러 오마’ 다짐했던 전우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부제가 ‘그날의 약속’이다. 초연 당시 54회 전석이 매진됐고 5만 관객을 동원했다.

출연진에는 현역 장병 30여명도 포함돼 있다. 치열한 오디션을 통과했다. 이들은 두 달여 동안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혼신을 쏟았다. 70년 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이 어떤 방식으로 소환될지 기대된다. 결과물은 6월 4일부터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다. 그러나 1주일 뒤로 미뤄졌다. 부천과 고양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코로나 여파 때문이다. 공연을 망설였던 육군 지휘부는 고민을 덜었다. 일부에서는 코로나19를 이유로 공연 자체를 시비한다.

이런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는 이달 초부터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했다. 또 단계적으로 개학 일정을 늘려가고 있다. 재난지원금에 힘입어 경제도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디지만 하나씩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공연 중인 상업 뮤지컬은 대략 10개다. 대부분 6월부터 막을 올리지만 드라큘라는 2월, 유령은 3월부터 공연 중이다. 코로나19가 문제라면 이들도 중단되어야 맞다. 그런데 유독 육군이 주관하는 '귀환'에만 딴죽을 걸고 있으니 의도가 불순하다.

일반 공연도 6월부터 속속 막을 올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엊그제부터 ‘힘나는 예술여행’을 시작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대구지역도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시작됐다. 물론 2주 연장 지침 때문에 일시 중단은 불가피하게 됐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헌신과 희생, 국가란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뮤지컬 '귀환'은 되새기고 공감하는 무대다. 그러니 국민들 앞에 당당해도 좋다. 사소한 시비 때문에 머뭇거린다면 그들을 욕보이는 짓이다.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관람하도록 알릴 필요가 있다. 일부 부정적인 여론에 좌고우면한다면 한심한 일이다. 다행히 시간을 벌었으니 좀 더 촘촘한 방역에도 신경써야 한다.

'챈스 일병의 귀환'에서 중령이 운구한 병사는 일병이다. 계급을 따지지 않은 이유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한 인간에 대한 예의였다. 항공기 기장은 운구에 동참하게 돼 자랑스럽다고 방송을 한다. 승무원들은 중령이 가장 먼저 내릴 수 있도록 배려한다. 승객들 또한 누구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성숙한 시민 의식이란 이런 것이다. '귀환'은 군인들을 강제 동원해 관람시키는 공연이 아니다. 맹목적 애국심을 조장하는 ‘국뽕’도 아니다. 6·25전쟁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한편으론 극한 속에서 예술은 위안이 된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손꼽는 장면도 예술의 힘이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마지막까지 연주를 하는 장면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코로나19도 조만간 종식될 것이다. '귀환'이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고, 국방의무를 다하는 군을 돌아보는 무대가 되길 기대한다. 덧붙여 바닥에 떨어진 군의 사기를 높이고 예우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한다.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라에는 미래는 없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