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기회다-⑦한화] ‘M&A 승부사’ 김승연 회장, 신용·의리 경영으로 잡음 없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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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기자
입력 2020-06-0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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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9년간 전방위적 사업 다각화로 재계 7위 올라

  • ‘M&A 백미’ 대한생명 인수 6년만에 흑자전환 시켜

  • 새로운 10년 준비...2020년 ‘디지털 혁신’ 강조

“이런 때일수록 알짜 석유화학 기업을 싸게 사들일 수 있다.”

1982년 한양화학·한국다우케미칼(현 한화솔루션/케미칼) 인수전을 두고 한화그룹 내부는 요동쳤지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당시 한양화학은 80억원, 한국다우케미칼은 43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부실 위험이 큰 기업의 인수·합병(M&A)에 대해 한화 임원들은 강하게 반대했지만, 서른살의 김 회장은 타고난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이 M&A는 한화그룹 성장사의 시발점이자, 10대 그룹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2018년 12월 6일 베트남 하노이 인근 화락 하이테크 단지(Hoa Lac Hi-Tech Park)에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공기 엔진부품 신공장 준공식 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앞줄 오른쪽 세번째)와 베트남 쯔엉화빙 수석 부총리(앞줄 오른쪽 두번째)가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한화 제공]


1952년생인 김 회장은 충남 천안에서 창업주 현암 김종희 한화(구 한국화약) 선대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해 6·25 전쟁 당시 김 선대회장은 ‘사업보국’을 내세우며 한국화약을 설립, 전후시대 경제개발5개년 계획 등과 맞물려 회사를 성장시켰다. 그러다 1981년 7월 창업회장이 갑자기 타계하면서 29세의 젊은 나이로 김 회장이 2대 회장직에 올랐다. 1981년 당시 한국화약은 19개 계열사를 보유, 임직원만 1만1600여명에 달했다. 매출액은 1조1079억원, 총자산은 7548억원, 당기순이익 61억원이었다.

김 회장은 경영을 맡은 지난 39년간 사업 다각화와 성장위주 경영전략을 통해 한화그룹을 무섭도록 빠르게 키워냈다. 2015년 3월 ‘포브스’에 따르면 재계 2~3세의 승계 이후 자산증가율에서 이건희 회장 재임기 삼성에 이어 김승연 회장 재임기의 한화는 2위를 기록했다. 한화그룹은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집단 기준 자산총액은 65조6000억원으로, GS그룹을 제치고 재계 7위로 올라섰다.

 

[아주경제 그래픽팀]



◆한화그룹 성장 역사는 곧 ‘M&A의 역사’

김 회장이 취임한 이후 한화그룹의 M&A 속도와 범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첫 M&A 성사 건인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현 한화솔루션/케미칼) 인수를 계기로 1980년 7300억 규모이던 한화그룹 매출은 1984년 2조1500억원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지금도 이 회사는 한화그룹의 주요한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하고 있다.

이후에도 정아그룹(1985년·현 한화H&R), 한양유통(1986년·현 한화갤러리아), 골든벨상사(1995년·현 ㈜한화무역)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2000년대에도 M&A 행보는 계속됐다. 동양백화점(2000년·현 한화타임월드)과 대우전자 방산부문(2001년·현 ㈜한화 구미공장), 신동아화재해상보험(2002년·현 한화손해보험) 등의 경영권을 차례로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특히 2002년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인수는 김승연 회장의 뚝심이 제대로 빛을 발한 M&A의 백미로 꼽힌다. 당시 대한생명은 IMF 외환위기 여파로 누적 손실이 2조3000억원에 달해 공적자금을 받던 신세였다. 김 회장은 “대한생명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무보수 근무”를 선언하며 배수진을 쳤다. 기존 인력의 반대를 차단하기 위해 직원 고용보장과 급여 및 복리후생을 유지시켰다. 이후 한화생명은 인수 6년 만인 2008년 흑자 전환됐다. 총 자산이 100조원을 돌파했고, 2018년 영업이익은 6501억원에 달했다.

이외에도 2002년 63시티(한화 63시티) 인수, 2007년 미국 자동차 부품·소재기업인 아즈델(AZDEL)을 품에 넣으며 자동차 부품·소재를 전세계 자동차업체에 공급하는 네트워크를 갖췄다.
 

2017년 12월 11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오른쪽에서 세번째)이 중국 장쑤성 난퉁시 한화큐셀 치둥 공장을 방문해 태양광 모듈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한화 제공]


2008년에는 제일화재해상보험(한화손해보험)과 새누리상호저축은행(한화저축은행)을 잇따라 인수했고 2010년에는 푸르덴셜투자증권(한화투자증권과 합병)과 솔라원파워홀딩스(한화솔라원)도 품었다.

2012년에는 당시 파산기업이던 독일의 큐셀(현 한화큐셀)을 인수하며 태양광 투자를 본격화했다. 태양광사업은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을 필두로 역점을 두고 있는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부상했다. 한화큐셀은 2015년 한화솔라원과 통합해 글로벌 태양광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김 회장의 과감한 M&A로 한화그룹은 석유화학과 금융, 레저 및 유통, 건설, 태양광에 이르는 수많은 사업을 거느리게 된다.

특히 2015년 삼성과의 방산·화학 ‘빅딜’은 김 회장이 보유한 M&A 내공의 결정체로 평가받는다. 당시 그는 2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삼성종합화학(현 한화종합화학)과 삼성토탈(현 한화토탈),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까지 인수하는 뚝심을 또 한번 발휘한다. 상대적으로 그동안 삼성에서 홀대받던 이들 회사는 한화그룹에서는 일약 주력사로 부상하게 된다.

실제로 한화토탈은 한화로 명패를 바꾼 이후 2016년부터 3년 연속 영업이익 1조원의 신화를 기록한다. 그룹 내 지주사를 제외하고 영업익 1조를 내는 계열사는 한화토탈이 유일하다. 한화종합화학도 인수 이후 호조의 실적을 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항공기부품제조업체인 P&W와1조9000억원 규모 공급계약을 따내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시스템, 한화테크윈, 한화지상방산 등을 계열사로 거느리며 사실상 방산사업 지주회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12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가운데 하얀옷)이 이라크 신도시 건설 현장을 방문해 현지 직원들을 격려했다. [사진=한화 제공]


◆‘신의 경영’ 덕에 M&A 잡음 없애...임직원 만족도↑

“장수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지만, 기업은 신용을 걸어야 한다. 이익을 남기기에 앞서 고객과의 의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2018년 김승연 회장 신년사)

한화그룹의 수많은 M&A 성공은 김 회장의 승부사 기질에 더해 창업주 때부터 강조해온 ‘신의 경영’이 한몫을 했다. 한화로 편입된 기업 중에서 임직원들이 M&A에 반발하는 등 잡음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 회장은 인수합병 이후에도 고용승계를 보장했고 이전 못잖게 복리후생을 챙겨준 덕분이다.

한화의 모태인 한국화약은 화약사업이다. 사람의 생명을 가르는 위험한 영역이다 보니 선대회장은 안전 확보 차원에서 사람 간의 신용과 의리를 공석이든 사석에서든 항상 강조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신의를 지키는 것이 ‘정도 경영’인 것이다.

신의 경영은 M&A과정에서 인수되는 기업 임직원들 사이에서 “이왕이면 한화에 팔리면 좋겠다”는 말로 대변됐다. 2015년 한화가 삼성그룹 방위사업·석유화학 부문을 인수하면서 삼성 직원들을 100% 고용승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통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처우와 복리도 삼성에서 받던 수준을 그대로 유지했다.

김 회장은 기존 계열사를 매각할 때도 ‘신의 경영’을 실천했다. 종업원의 고용승계 보장을 우선 협상과제로 뒀다. 1998년 외환위기 속 한화에너지 정유부문을 현대정유에 매각할 당시, 김 회장이 “20억~30억원 손해를 볼 테니 인수 과정에서 단 한명도 해고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해 고용승계가 이행됐다.

2010년 서울 플라자호텔 리모델링으로 문을 닫게 된 기간 모든 직원들에게 유급휴가도 줬다. 2014년 한화건설 이라크 공사현장 방문 당시, ‘회를 먹고 싶다’는 현지 직원들의 바람을 듣고 광어회 600인분을 비행기로 공수해 제공한 사건은 타사도 부러워한 유명한 일화다.

사업 외적으로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사례도 있다. 2005년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김인식 감독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당시 구단 안팎에서는 감독 교체 요구가 제기됐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자신의 경영철학인 ‘신용과 의리’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다. 건강을 회복한 김 감독은 그해 팀을 3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김 회장은 “기업의 자부심은 단지 매출이나 이익과 같은 숫자만이 아닌, 주주와 고객을 비롯한 사회의 신뢰를 얻는 데 있다”면서 “제가 그동안 강조해온 ‘정도 경영’이 제 신념을 넘어 한화인 모두의 확고한 신념으로 뿌리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한화생명 등이 입점해 있는 여의도 랜드마크 '한화63시티' [사진=한화생명 제공]



◆“2020년, 디지털 혁신으로 새로운 10년 준비”

김 회장은 2010년 검찰 수사 이후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2015년 삼성 계열사 인수전 등을 비롯해 그룹의 중대기로에서는 막후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김 회장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을 그룹 임직원들은 ‘절대 신뢰’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때문에 매년 김 회장이 밝히는 새해 비전은 한화그룹의 이정표가 된다. 

김 회장은 올해 새로운 경영 화두로 ‘디지털 혁신(Digital Transformation : DX)’을 꼽았다. 김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올 한해는 일류 한화의 선도 지위와 미래 가치를 확보해 새로운 10년의 도약을 준비하는 한 해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는 한화가 2010년 선포했던 '질적 성장 2020'(Quality Growth 2020) 비전의 마지막 해로, 이제 또 다른 10년의 질적 성장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그는 “핵심 사업은 글로벌 리더 수준으로 격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면서 “적어도 10년 후 한화가 미래 전략사업 분야에서 '대체불가한 세계적 선도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달성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올해 1월 2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신년하례회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화 제공]



김 회장은 특히 “디지털 기술이 경영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면서 “올해가 그룹 디지털 혁신의 원년이라는 각오로, 각사에 맞는 디지털 변혁을 추진해 기회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한 모방과 추종을 넘어 세상에 없던 가치를 창조하는 혁신”도 강조했다.

그는 또 “각 사업군별로 시장 선도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경영활동에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사업 비중을 확대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사업가치와 성장성이 높아지는 회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지속가능한 기업’도 다짐했다. 그는 “안전과 컴플라이언스(준법)가 한화를 영속적 미래로 나아가게 할 든든한 두 바퀴”라며 “이 두 가지를 완벽히 실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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