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준의 취준생 P씨](5) 서울 거주가 스펙? '지방러'의 고군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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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 기자
입력 2020-05-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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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 스터디 인원 고작 2~3명, 계열 다른 어려움도

  • 지방 취준생 10명 중 8명, 취업 소외감 느껴

  • 전문가 "지방에 학원을 만드는 게 정답 아니야"

[편집자주] 올해 4월 기준 국내 취업준비생(취준생)은 약 117만명입니다. 누구나 이 신분을 피하진 못합니다. 준비 기간이 얼마나 길고 짧은지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취준생이라 해서 다 같은 꿈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각자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만 합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만은 같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취준생들에게 쉼터를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매주 취준생들을 만나 마음속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응원을 건네려고 합니다. 인터뷰에 응한 취준생은 합격(pass)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P씨로 칭하겠습니다.


다섯 번째 P씨(28)는 MD(merchandiser)가 목표인 취준생이다. MD의 주 업무는 제품을 어떻게 상품화할 것인지 연구하는 것이다. 상품에 관련된 전반적인 일을 모두 담당하다 보니 MD가 ‘뭐든지 다 한다’의 줄임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지난 21일 만난 P씨는 '지방러'다. 지방러란 '지방'에 행위자를 뜻하는 영어 'er'이 붙어 지방 출신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 P씨는 현재 서울에서 혼자 지내면서 취업을 준비 중이다. 생활비 마련을 위해 낮에는 아르바이트하고 밤에는 취업 공부를 하는 ‘주경야독’(晝耕夜讀) 생활을 1년째 이어오고 있다.

일과 공부를 같이 하는 게 힘들지만, 서울 생활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취업 스터디만 해도 지방보다는 서울에서 더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펙을 쌓기 위한 각종 자격증과 어학원도 서울에 많다. 인터넷 강의가 많다지만 강의 질과 집중력 등을 고려하면 현장 강의가 훨씬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채용박람회도 보통 코엑스, AT센터 등 서울 소재 대형 전시장 위주로 열린다. 원래라면 상반기 채용을 앞두고 많이 열렸어야 했지만 그마저 코로나19 여파로 다수가 취소됐다. P씨는 “‘서울에 사는 게 스펙이다’라는 말이 정말 현실을 반영하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방 스터디는 2~3명 모이는 게 전부...계열도 달라 어려움 많아"

P씨는 작년 2월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본가 근처에서 취업 준비를 하다 두 달 만에 서울로 올라왔다. 첫 상경이었다. P씨는 “지방에서는 스터디를 구한다 하더라도 사람이 적어서 2~3명 모이는 게 전부였다”며 “어렵게 모이더라도 취업 계열이 달라 교집합이 적다보니 공부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서울 거주지는 고시원이었다. 보증금이 필요 없고, 언제 취업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1년 넘는 계약 기간이 부담스러워 고시원을 선택했다. P씨는 “확실히 혼자 나와서 살다 보니 절박함이 커지는 것 같다”며 “(서울에 올라오니) 모집단이 많아서 스터디 구하기도 훨씬 쉽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평일 낮에는 일반 회사에서 사무 보조 아르바이트를 했다. 퇴근 후에는 운동하고 곧장 스터디카페로 가서 취업 공부를 하거나 스터디에 참석했다. 주말에도 공부를 이어가고 필요한 시험에 응시하거나 취업박람회를 다녔다. 이렇게 반년을 지냈다.

주경야독의 성과는 1년도 안 돼 나타났다. P씨는 가고 싶었던 회사의 최종면접까지 올라갔다. 관련 업종에서 일하는 지인들에게 정보도 얻고 준비도 잘 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최종 탈락이었다. 이후 심신 회복을 위해 고향에 내려가 취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시험과 스터디에 참여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오가다 보니 또다시 지방의 한계가 느껴졌다. 두 번째 상경을 결심한 이유다. 
 

P씨가 서울을 다녀가며 지난 길.  [사진=P씨 제공]



◆ 지방 취준생 10명 중 8명, 취업 소외감 느껴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취업준비생 503명을 대상으로 '지방에서 구직활동을 하며 취업 소외감을 느끼느냐'고 묻자 80.3%가 ‘그렇다’고 했다. 이유는 ‘채용 설명회, 면접 등 취업활동이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돼서’(65.8%, 복수응답), ‘면접을 보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해서'(54.2%) 등이 가장 많았다. 서울에 정보와 기회가 몰려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P씨는 서울에서의 생활에 만족하냐는 물음에 단번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P씨는 “채용설명회나 취업박람회도 지방에선 거점 위주로만 진행하는 반면 서울에서는 학교별로 해줄 정도로 차이가 있다”며 “서울에서 설명회에 참석하거나 입사 시험을 치르려면 지방러는 이동까지 하루 전체를 투자해야 하는데, 서울에서 지내면 반나절만 투자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스터디원 구하기도 수월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취준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커뮤니티에서 스터디를 구하는 글을 보면 신촌, 강남, 안암, 종각, 노량진 등 서울 주요 번화가가 절대다수였다. P씨는 “같은 문과라도 직렬이 다양한데, 비슷한 직렬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보 공유가 편하다”며 “자소서 피드백까지 효율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속담 중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낸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많고 번화한 서울이 좋은 학습 환경이므로 배울 게 많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전체 인구 5분의 1이 거주하는 서울과 그 주변인 수도권에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얘기다. 그렇다고 지방에서의 취업 준비가 무작정 어려운 것도 아니다. 

다만, 수도권과 지방의 정보 격차를 좁혀가야 할 필요가 있는 건 사실이다. 모든 취준생이 서울로 모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역 혁신도시 소재 공기업에서 채용시 30%는 의무적으로 지방 인재를 뽑고 있지만 (취준생들이) 지방에는 이를 준비하는 환경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노량진 등으로 모인다"며 "그렇다고 지방에 학원을 만드는 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시험 등 부담을 줄이게 조금씩 (채용 과정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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