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그곳에 국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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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20-05-08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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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논설위원]]

 

군율을 말할 때 인용하는 고사가 있다. 춘추전국시대 궁녀들을 훈련시킨 일화다. 사기(史記)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오나라 왕 합려(闔閭)는 '손자병법'이 실전에도 적용 가능한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궁녀들로 열병(閱兵)을 해보이라며 손무(孫武)에게 주문했다. 손무가 명령을 내렸지만 궁녀들은 코웃음을 치며 무시했다. 그러자 손무는 책임자급 후궁을 지목해 목을 베었다. 이후 모든 궁녀들이 일사불란하게 따랐음은 물론이다.

강한 군대는 기강이 반듯하다. 반면 기강이 무너진 패잔병은 무기력하다. 남성들이 군복무 중 가장 많이 듣는 말도 ‘군기’다. “군기가 빠졌다”는 말 뒤에는 으레 강한 체벌이 뒤따랐다. 군율과 기강은 군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시대변화에 따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춘추전국시대처럼 목을 벨 수는 없다. 욕설과 체벌도 안 된다. 자율과 창의성을 존중하면서 기강을 세우는 게 AI시대 상식이다.

체벌을 통한 ‘군기 잡기’는 군사문화 잔재다. 체벌과 욕설은 두려움과 공포감을 조장함으로써 인간성을 파괴한다. 군내 사고는 대부분 이런 악습에서 비롯됐다. 우리 군은 꾸준히 병영 문화를 개선해 왔다. 체벌금지와 휴대전화 지급은 일부분이다. 이를 두고 군이 나약해졌다는 사람도 있지만, 일선 지휘관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우애와 전투력은 배가됐다고 한다. 극소수 일탈을 과장하고 확대하는 보도행태가 문제일 뿐이다.

앞서 오나라 궁녀들이 명령을 따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공포 때문이다. 그런 군대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진나라 멸망에 불씨를 댕긴 ‘진승의 난’은 좋은 예다. 당시 징발된 부대는 정해진 기한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참형에 처해졌다. 홍수 때문에 기한을 넘기게 된 이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지나친 군율이 오히려 국가 패망을 부른 것이다. AI시대에 걸맞은 자율과 소통만이 국민의 군대를 만든다.

이런 점에서 최근 잇따르는 군 관련 보도는 우려된다. 일부 일탈을 군 전체 기강해이로 확대하기 때문이다. 사고를 기강해이나 전투력 저하로 돌리는 건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나아가 과장·왜곡된 보도는 군에 악영향을 끼친다. 군은 사기를 먹고 사는 조직이다. 무조건 칭찬하자는 게 아니다. 군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고, 또 사고와 기강해이를 구분하자는 것이다. 합당한 비판과 진정 어린 지적이 핵심이다.

우리 군은 생각보다 잘하고 있다. 기본적인 국방의무는 물론 각종 재난 현장에서 묵묵히 소임을 감당하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 당시 군은 살 처분에까지 동원됐다. 행정 공무원들마저 기피하는 바람에 장병들 몫으로 돌아온 것이다. 논란 끝에 중단됐지만 험악한 일은 이렇듯 군 차지였다. 엊그제 고성 산불을 진화하는 데도 역할을 했다. 22사단 전차대대 지휘관들은 밤새 탄약고를 지켰고, 1800여 장병은 불길을 잡는 데 투입됐다.

코로나19 현장에서 보여준 헌신은 놀랍다. 연인원으로 군의관 7127명, 간호장교 2만513명, 지원 병력 13만6754명이 검역과 방역, 의료지원에 동원됐다. 전체 인력 가운데 3분의1은 최일선을 지켰다. 이뿐 아니다. 헌혈, 마스크 제작과 수송, 지역경제 살리기, 외국어 지원까지 가용한 모든 병력을 동원했다. 피가 모자란다는 소식에는 장병 3만8167명이 팔을 걷었다. 이 결과 1526만㎖의 피가 모였다. 단일 기관, 최단 시간, 최다 헌혈 기록이다.

또 임관식이 끝나자마자 대구로 달려간 국군간호사관학교 졸업생, 의료봉사를 자원한 입영 예정 군의관, 전역을 미루고 환자를 돌본 장병들까지 군은 국민과 손을 잡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 지난 석 달여 군과 국민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함께한 전우인 셈이다. 군율과 기강이 서지 않다면 이 같은 헌신과 희생은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군은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다. 헌신은 당연하고, 작은 일탈조차 인내하지 못한 나머지 자극적인 때리기에 혈안이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한 일선 지휘관은 "처우는 부실한데 감당해야 할 책임은 턱없이 높다"고 하소연했다. 열악한 처우, 그러면서도 매도와 부풀리기 비판은 감내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명예를 먹고사는 군에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다. 학군, 학사장교와 부사관 지원율이 낮은 이유도 그렇다. 사명감도, 보람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병역 이행은 의무가 아닌 기꺼운 마음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여건을 만드는 건 국민들 몫이다. 합당한 비판과 지지다.

위나라 장군 오기(吳起)와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오기는 손무만큼 군율을 중요시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군을 이끌었다. 지극한 애정과 관심으로 결속력을 높였다. 심지어 부상한 병사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 치료하기까지 했다. 위나라 군대가 싸움마다 승리한 것은 당연했다. 강군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오기 장군이 그랬듯이 군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헌신을 기억하자. 군에 보낸 아들, 오빠, 남동생에게 안부 전화하는 것에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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