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호남정치'가 아니라 '호남정신' 복원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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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20-05-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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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논설위원]]

 


21대 총선 결과를 놓고 다양한 분석이 봇물을 이뤘다. 그중 하나가 지역대결 구도 부활이다. 호남 대 영남 구도다. 더불어민주당은 호남 28석 가운데 27석을 쓸어담았다. 반대로 통합당은 영남을 싹쓸이했다.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울산 65석 중 56석을 휩쓸었다. 의석 비율로 따지면 86.1%다. 호남에서 민주당 의석 점유율은 96.4%다. 둘 다 별반 다르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특정정당이 특정지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는 구도다. 민주당은 호남, 통합당은 영남이라는 지역구도로 해석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지역구도는 지역주의를 바탕에 둔다. 오랫동안 호남과 영남 정치인들은 지역주의를 자극함으로써 영향력 확대를 꾀해 왔다. 그러나 호남에서 21대 선거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해석이 가능하다. 지역주의에 근거를 둔 묻지 마 투표가 아니다. 수차례 당명을 바꾸고 이합집산을 거듭한 민생당에 대한 심판이 첫째다. 또 반성도 없고 희망도 보여주지 못하는 무능한 통합당에 대한 실망과 무관심이다. 민주당 또한 언제든지 외면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흐름은 20대 총선에서 이미 확인됐다. 4년 전 민주당은 호남에서 3석으로 참패했다. 반면 새누리당이 2석, 국민의당은 23석을 석권했다. ‘호남=민주당’이라는 지역주의에 근거한 투표였다면 있을 수 없는 결과다. 호남은 당시도 그랬지만 21대 총선에서도 무능하고 구태한 정치세력을 심판했을 뿐이다. 그래도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민주당은 영남에서 7석이라도 건졌지만 호남은 민주당 일색이라는 이유에서다. 거듭 말하지만 호남에서 통합당 궤멸은 시대흐름과 동떨어진 정치집단에 대한 심판이다.

민주당 또한 자신들이 잘해서라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상대가 무능했기 때문이다. 최근 호남지역 언론은 호남정치 복원을 자주 입에 올린다. 압도적인 지지를 발판으로 민주당 내에서 정치력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호남 대권론도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호남정신과 다소 결이 다르다. 오히려 호남정신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 그동안 유력 정치인들은 지역정서를 불쏘시개로 삼았다. 박지원, 정동영, 천정배 등이 선거 때마다 외친 호남정치 복원이 그 실체다. 호남정치 복원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수사다.

호남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이렇다. 오래된 부당한 차별을 바로잡아주고 대변해줄 것이라는 기대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런 지역정서를 왜곡해 사적으로 편취해 왔다. 그들은 호남정치 복원을 들먹이며 지역을 볼모로 삼았다. 호남인들이 정치적 판단을 할 때, 이념은 전부가 아니다. 진보나 보수를 뛰어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시대정신, 즉 호남정신이다. 부당한 권력, 불의한 시대와 맞선 저항정신이다. 동학농민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은 그런 토대 위에 있다.

호남은 20대 총선에선 민주당을 초토화시켰다. 그리고 21대 총선에서는 다시 품었다. 그래도 믿을 건 민주당이라는 정치적 효용감에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결과다. 호남은 특별한 대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부당한 차별, 불공정한 기회가 바로잡히길 기대한다. 현실적으로 호남 지지만으로 정권교체는 가능하지 않다. 거꾸로 호남이 지지하지 않는 정권교체 또한 요원하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출범은 호남정신이 발현된 결과다. 출신 지역이 아니라 누가 진보정권 창출에 적합한지가 기준이었다.

이런 점에서 호남정치 복원을 입에 올리는 건 조심스럽다. 자칫 지역주의로 회귀한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호남정치 복원은 몇몇 정치인들과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낸 정치적 구호다. 호남정치 복원이 아니라 호남정신 복원에 답이 있다. 시대 흐름에 부응하는 것이다. 21대 총선을 통해 호남은 세력교체와 세대교체를 동시에 이뤘다. 살아남은 현역은 5명(17%)뿐이다. 또 초선은 17명(61%)에 달한다. 지역민들이 바라는 호남정치 복원도 세력교체와 세대교체 사이 그 어디쯤에 있다. 당내 헤게모니 장악은 호남정치 복원이 아니다.

그러니 민주당 내 호남정치 위상 강화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접는 게 좋다. 그동안 민주당은 선거 때만 호남을 외치다 잊기를 반복해 왔다. 오히려 민주당 독점 체제가 가져올 부작용을 경계하는 게 현명하다. 민주당은 모든 호남지역 정치권력을 한 손에 쥐었다. 국회의원, 시·도지사, 시장·군수, 지방의회까지. 견제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은 필연적으로 절대 부패한다. 또 일당 독주는 지역여론을 왜곡할 개연성이 높다. 일탈과 파행, 오만을 경계하는 게 호남정신을 지키는 길이다. 민주당 또한 언제까지 호남을 텃밭이라고 여긴다면 오만하다.

호남정신 복원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그것만이 호남을 호남답게, 민주당을 민주당답게 지지하는 길이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고, 부당한 차별을 바로잡고, 약자를 배려하며,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는 일이다. 민주당의 오만을 경계하고 호남정신을 고양시키는 것, 호남지역 언론에 당부하고 싶다. 그럴 때 호남 대권론도 자연스럽게 공감을 얻는다. 호남에서 민주당 행보는 다음 대선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호남에서 민주당 실력을 확인하는 것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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