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국민을 비참하게 하는 비루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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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20-04-2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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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논설위원]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논쟁을 지켜보노라면 한심하다. 각자 주장은 일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나친 공명심에서 비롯된 딴죽걸기나,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닌가 싶다. 핵심을 비켜간, 긴급재난지원금이 왜 필요한지조차 모르는 말들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은 나라님이 나눠주는 시혜가 아니다. 위기에 처한 국민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이자, 경제 회생을 위한 재난 구호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일부 공직자들은 “소신에 변함이 없다”는 볼멘소리로 정부 결정을 깎아내리고 있다. 또 통합당은 엉뚱한 반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정세균 총리는 “총리가 정부를 대표해 공식 입장을 냈는데도 일부 기획재정부 공직자가 뒷말을 하고 있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일부라고는 하지만 충정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넘기기엔 개운치 않다. 훗날 “우리는 이렇게 주장했다”는 기록이라도 남기겠다는 의도는 아닌가 싶다. 통합당 또한 말장난을 그만 두어야 한다. “신속하게 처리할 생각이 있다면 예산 총액 규모, 기부금 신청 및 공제 방식, 소득보장 효과를 24일 오전 10까지 보고하라”고 했다. 긴급한 상황임에도 정상적인 예산편성 절차를 고집하는 건, 주지 말자는 말이다.

말 그대로 긴급재난지원금이다. 미국, 독일, 캐나다는 1~2주 내에 신청, 지급까지 일사천리다. 독일은 신청서 작성 10분, 휴일 포함 3일 이내 지급하고 있다. 일본 또한 1인당 10만 엔(113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보다 많은 국민에게, 보다 신속히, 보다 넉넉히.” 이들 국가들이 재난지원금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지금과 같은 소모적 논쟁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을 비참하게 만든다. 마치 100만원에 목매는 것으로 취급당하는 모멸감을 안긴다. 주고도 욕먹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쓴다. 방역은 선진국인데, 정치는 왜 이러는지 화가 치민다.

마침 읽고 있는 책이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이다. 위기를 극복한 미국 대통령 4명에 대한 이야기다. 이 가운데 대 공황(Great Depression)을 이겨낸 프랭클린 루스벨트 사례가 유독 눈길을 끈다. 지금과 흡사해 공감이 간다. “경제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산업은 마비상태다. 4분의 1이 실업자고, 노동시간도 급격히 줄었다. 소기업은 줄지어 파산했다. 자본주의 미래, 민주주의 미래가 암울하다.” 1933년 3월 4일 취임식을 앞둔 루스벨트 앞에 놓인 현실이다. 우리가 마주한 코로나 경제위기와 다르지 않다.

루스벨트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민과 소통하고, 정치권은 하나가 됐다. 집권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은 정파를 초월했다. 입법부와 행정부도 부처 이기주의를 뛰어넘어 협력했다. 또 대통령은 라디오 노변담화를 통해 국민들과 소통했다. 그리고 무력감과 두려움을 이겨냈다. 루스벨트는 취임 이후 훗날 ‘100일(The Hundred Day)’로 알려진 이 기간 동안 이렇게 손을 잡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했다. 임시국회는 무려 100일 동안 열렸다. 국회는 정파적 이해를 뛰어넘어 입법으로 대통령과 정부 정책을 뒷받침했다.

대표적 법안은 ‘긴급 은행법’이다. 루스벨트는 붕괴된 금융시스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은행을 일괄 폐쇄한 뒤 단계적으로 정상화하기로 했다. 법안 상정에 앞서 건전화 방안을 마련하고 이해 관계자를 설득했다. 법안은 상원에서 찬성 73표, 반대 7표로 의결됐다. 임시회기가 열리고 9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처럼 신속히 처리한 적은 없었다. 루스벨트는 “하나가 되어 두려움을 떨쳐냅시다. 금융시스템을 재건하기 위한 조직이 마련됐습니다. 제대로 작동하느냐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며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긴장됐다. 은행이 문을 연 아침, 언론은 긴 줄을 앞 다퉈 전했다. 다행히 돈을 빼가려는 긴 줄이 아니었다. 국민들은 정부를 믿고 오히려 돈을 맡기기 위해 줄을 선 것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은행에 돈을 예치하려는 줄, 신뢰 회복의 증거”라고 보도했다. 대통령과 행정부, 입법부가 혼연일체 된 결과였다. 소통은 신뢰로, 위기극복으로 이어졌다. 코로나 경제 위기를 맞은 우리가 나가야할 방향도 분명하다. 정부 부처끼리 하나가 되고, 정치권은 정파를 초월해 협력하고, 정책이 결정되면 국민은 믿고 따르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성장률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로 발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4분기 –3.3%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코로나 불황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동안은 자영업자, 소상공인, 내수에 피해가 집중돼 왔다. 이제는 수출,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 분야로 확대될 게 분명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고 두려움을 떨쳐낼 책임이 있다. 일부에서는 공무원과 공기업 종사자는 재난지원금을 주지말자고 한다. 이 경우 고소득 전문직으로 확대돼 소모적 논쟁만 되풀이 될게 분명하다.

누구를 줄까 따지기보다 신속한 지급이 관건이다. 고소득자는 자발적으로 기부를 받자는 발상 또한 무책임하다. 캠페인으로 기부금을 모아 재정을 마련한다는 것인데 비현실적이다. 차라리 소비를 독려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최소화하는 게 현명하다. “나라를 협찬으로 운영하느냐”는 김재원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의 힐난도 한심하다. 루스벨트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했다.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게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이제 긴급재난지원금 논쟁은 끝내고 경제 위기 극복에 머리를 맞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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